아이와 말라카 여행 - (2)

네덜란드광장, 리버크루즈

by 요미
딱 하루에 이런 행운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자세히 봤다. 무언가를 들고 모여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악기였다. 서로 상의하며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을 보니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행사인 걸까?

총을 든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동선을 체크하고 있고 저 멀리엔 기마병도 보였다. 오, 높으신 누가 오나 보다. 일단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우리는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네덜란드 광장을 즐겼다. 이곳은 예전 식민지 시절 지어진 곳이다. 말라카가 지리적으로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아왔기에 동서양의 문화가 모두 섞여있다. 빨간 건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그 앞에서 전통옷을 입고 춤을 추는 어린이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이 모이니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천천히 둘러보는데 드디어 뚜가 하고 싶었던 체험이 눈앞에 보였다. 바로 인력거 투어! 인력거는 특색에 맞게 여러 장식들이 있는데 뚜는 피카츄 인력거를 골랐다. 가서 인사를 하니 기사님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 하니, 옆에 인력거 아저씨가 ‘안녕하세요!’ 하고 서툴지만 정감 있게 인사해 주셨다. 20링깃을 내고 타니 한국인이라고 우리나라 아이돌 노래를 틀어주신다.


인력거는 네덜란드광장을 떠나 파모사 요새까지 갔다. 무언가 설명도 해주셨지만 영알못인 나는 슬프게도 많이 알아듣지는 못했다. 기사님은 전문가답게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는지 아셨다. 여러 포즈로 롱다리처럼 나오게 찍어주시고 다시 돌아오는 길, 날은 매우 덥고 우리가 꽤 무거울 텐데 열심히 태워주는 기사님이 참 고마웠다. 뚜도 대만족.




네덜란드 광장의 메인 다리 근처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하나 있다. 여긴 큰 박스 안에 멜론만 한 수박들을 가득 넣어놓고 주문과 동시에 수박을 갈아 수박 주스를 만들어준다. 현란한 제조 솜씨를 멍하니 구경하던 뚜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자기도 먹고 싶었나 보다.

수박은 많이 달지는 않았지만 시원해서 더위를 가시기엔 충분했다. 주스 덕분에 가게에 잠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일까, 오늘이 행사가 있어서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뚜가 리버크루즈를 물어왔다.

맞다, 우리가 원래는 싱가포르에서 크루즈를 탈까 고민했었다. 그러다 말라카에서 탈 생각에 싱가포르는 패스했더랬다. 오늘 저녁에 타자 생각하고 매표소를 찾아보니 이 가게 근처였다. 매표소에 가서 설명을 들어보니 표는 거기서 사는 게 맞고, 타는 곳은 저쪽으로 좀 걸어가야 한댔다. 설명을 듣다가 문득 아까부터 너무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오늘 여기 행사가 있나요?”

그랬더니 직원들 모두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아공, 아공!‘하며 얘기를 쏟아내셨다. 아공? 내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바로 인터넷을 켜서 아공을 검색해 보니, 어머나, 말레이시아의 왕을 뜻하는 말이었다!

세상에, 말레이시아 왕이라니... 이곳에 왔을 때부터 봐온 엄청난 인력들이 이해가 됐다. 딱 하루 들르는 일정인데 이렇게 큰 행사가 있다니 이런 행운이!


원래는 핑크모스크를 보러 가려고 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 여기가 더 특별할 것 같으니까. 사람들이 점점 분주해지기에 행사가 임박한 듯하여 우리도 매표소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경호원들이 사람들 이동을 통제하고 무전기로 신호를 보내더니 잠시 후 차 여러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멈춰 선 차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사람들 환호 속에서 이동을 했는데 나도 뚜도 신기해서 눈에 열심히 담았다. 짧은 행사가 끝나고 차가 되돌아갈 때, 창문을 열고 인사를 해주셨는데 우리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모든 인력들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네덜란드 광장은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을 때였다.

“엄마, 지금 가자!”

“어딜?”

“배 타러.”

원래 저녁에 탈까 했는데, 뚜의 요청으로 들뜬 분위기를 뒤로한 채 선착장을 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뚜 말을 듣길 정말 잘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계속 생각이 날 정도.

20여 분을 선착장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가 드디어 배를 타고 출발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배가 멈춰 섰다. 정확히는 물길 옆으로 배가 비켜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고개를 빼고 앞을 내다보니, 저 멀리 어떤 배 무리가 한가득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까 그 높은 분들이 지나가나? “


점점 다가오는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하얀 천사 같달까. 혼자만 빛이 나는, 사람인지 천사인지 구분 안 되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 배가 우리 옆으로 지나가면서 손을 흔드는데, 우리 모두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 저, 저 사람은?

그녀를 보고 놀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앞에 앉았던 중국인 가족들도 인터넷으로 이름을 검색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나도 인터넷에 키워드를 쳤다.

‘판빙빙 말라카’

신기하게도 판빙빙이 말라카 홍보대사인데, 오늘 홍보 일정을 온 것이었다. 연예인을 보면 후광이 비친다는 게 뭔지 몰랐는데 이번에 깨달았다. 나 또한 앞의 가족과 다름없이 상기된 얼굴로 뚜한테 빠르게 설명을 해줬다. 한참을 내 호들갑을 듣던 뚜가 뿌듯하게 한마디 했다.

“거봐, 내가 지금 타자고 하길 잘했지?”

“그래! 뚜 덕분에 우리가 탄 배만 판빙빙 이모를 만났어!”


그 많은 날 중 딱 하루, 오늘 머무르는 말라카에서 이렇게 연달아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부푼 마음으로 감상을 해서 그런지 리버크루즈는 운행 내내 벅찰 만큼 아름다웠다.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한 시간이라 배가 나아가면서 점점 건물 사이로 떨어지는 해가 매우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크루즈만 생각했던지라 이런 주홍 필터가 씌워진 풍경을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 말라카에 온다면 꼭 노을 시간에 리버크루즈를 타라고 추천하고 싶다.


말라카의 매력에 푹 빠진 채 배에서 내렸는데, 일행들을 하나하나 붙잡는 직원들. 출발 전에 급히 사진을 찍어줬는데, 어느새 예쁘게 인화해서 기념상품을 팔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과 유사한 이 느낌. 하지만 이미 우리는 동물원에서도 샀던 사람들이다. 뚜와 나 모두 ‘이건 기념이지’ 하고 또 액자를 충동구매 했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장에 세워져 있는데, 볼 때마다 (이 날 내가 정말 피곤했구나 알 수 있는 우중충한 얼굴이지만) 그때의 그 공기 냄새와 벅찬 마음이 생생히 떠오른다. 이 또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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