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말라카 여행 - (3)

존커 스트리트 야시장

by 요미
너무 더운데,
너무 재밌다

크루즈에서 내리니 어느새 해는 거의 다 떨어지고 짙은 노을빛만 남았다. 하늘 아래에 일부만 남은 해는 마지막 힘을 다해 붉은색을 내뿜고, 위로는 점점 어둠이 내려오고 있어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지나가던 한국인 가족이 하늘을 보며 ‘코타키나발루 노을만큼 예쁘다’고 했다. 코타키나발루가 노을 맛집이라던데 이런 느낌이구나.

네덜란드 광장 쪽으로 다시 걸어가는데 어느새 크루즈 선착장 근처부터 야시장이 열려있다. 드디어!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말라카 일정을 넣게 되면서 금토일에만 열리는 야시장 날짜를 맞추기 위해 출국 날짜도 조정을 했던 터였다. 계획대로 오늘 금요일 밤, 야시장이 열렸다.

네덜란드 광장은 조명 덕분에 어둡지 않았고,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낮에 봤던 인력거들은 번쩍번쩍 요란한 조명을 밝히며 돌아다니고, 그 옆으론 투명 풍선에 작은 조명을 매달아 팔고 있었다. 이 풍선은 경주 여행 때, 동궁과 월지 입구에서 팔던 것과 똑같다.


“엄마, 나 풍선...”

이럴 줄 알았다.


“이거 사면 내일 버스 타야 해서 오늘만 즐기고 바람 빼야 해. 그래도 갖고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역시도 예상했다. 애들 눈엔 저게 매번 특별해 보일 것이다. 결국 하룻밤뿐인 풍선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얼마 안 하는 가격이라 흔쾌히 사준 것도 있다) 아까 수박 주스를 먹었던 가게로 다시 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가게가 원래 첸돌이 유명한 곳이라 한다.

첸돌은 토핑에 따라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얹어져 있는 걸 시켰다. 첸돌이 뭔가 했더니, 우리나라 팥빙수랑 유사하다. 단지 메인 건더기(?)가 생소한 초록색이라 처음엔 살짝 거부감을 줬다. 판단 잎으로 만든 젤리라는데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내가 아는 젤리만큼 쫄깃하진 않으나 먹을만하다.


첸돌까지 먹고 아까 낮에 건너온 다리를 다시 건너갔다. 이곳이 진짜 야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야시장 입구엔 공중에 빨갛고 금빛이 나는 기다란 용이 떠 있어서 중국 문화를 연상케 한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야시장 구경을 본격적으로 했는데, 생각보다 살만한 것은 없었다. 그저 많은 인파에 휩쓸려 부대끼며 구경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골목 양쪽에 기념숍들이 많이 열려있어 더울 때마다 인파에서 빠져나와 상점 구경을 했다.


참고;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인터넷이 정말 안 터진다. 그리고 아이와 갈만한 식당이 웨이팅이 길거나 일찍 문 닫는 곳이 많으니 저녁에 갈 식당을 미리 몇 군데, 위치까지 알아두길 추천!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 배가 너무 고픈데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구글맵이 겨우 열려서 가 보면 대부분의 유명 맛집들은 웨이팅이 가득하거나 라스트 오더가 끝난 시간이었다. 뚜도 허기져하는 게 느껴져서 근처에 보이는 아무 페라나칸 식당엘 들어갔다. 페라나칸이란 간단하게 중국과 말레이가 합쳐진 요리라 생각하면 된다.

가게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락사와 첸돌을 먹고 있었다. 우린 뇨냐 락사(12.9링깃)와 pai tee(9.9링깃)라고 하는 컵모양 튀김 같은 걸 시켰는데, 잘 알아보고 시킬 걸 그랬다. 뚜가 입맛에 하나도 맞지 않아 도저히 못 먹겠다는 것이다. 사실 웬만하면 현지 음식은 다 잘 먹는 나도 pai tee가 너무 느끼해 두 개 이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락사는 그나마 얼큰하게 먹을 수 있었지만 빈 속에 이것만 들이키려니 조금 힘들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반 정도를 남겼다. 메뉴 대 실패...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떤 상점가를 들어갔는데 안쪽에 전통옷을 빌리거나 살 수 있는 상점이 있었다. 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까 바바뇨냐 하우스 투어 때 이모들이 전통옷을 입고 사진 찍는 걸 눈여겨보았던 터였다. 가격을 보니 우리 돈 4만 원 정도. 잠깐 고민했지만 사실 나 또한 이런 걸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결국 위아래 한 벌을 골라 구매했다. (맞다, 결국 뚜는 날 닮은 것이다) 거기에 야시장 길목 어딘가에서 우산까지 사서 풀세트를 완성시켰다. 참고로 우린 여행 내내 ‘언제 또 와보겠어’하는 류의 지출이 잦았고, 이걸 막아주는 남편이 옆에 없었기에 충동구매가 폭주하여 예상 경비보다 더 들고 말았다...


뚜가 학교에 전통옷을 입고 가겠다는 걸 말리며 숙소로 들어와 다시 누룽지를 끓였다. 휴대용 포트가 살짝 무거워서 이걸 꼭 가져가야 하나 싶었는데 싱가포르에서부터 이거 없었으면 뚜가 자주 굶을 뻔했다. 생각보다 어린이 입맛에 맞는 음식 찾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체크인 때 받은 쿠폰으로 커피와 주스를 받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5~6시쯤,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공사장 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 우당탕 의자가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30여분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니 무섭기도 하고 소리의 원인을 너무 알고 싶어서 혼자 복도에 나와봤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서성이는데 직원 한 분이 지나가길래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 물어봤다. 하지만, 직원은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단다. 몇 번을 같은 질문과 같은 답이 오가고,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이슬람 기도 소리가 아니었나 예상만 갈 뿐 아직도 그 소리가 뭐였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깬 이후 거의 뜬 눈으로 누워있다가 날이 밝았다. 가볍게 먹을만하니 괜찮았던 조식 후, 짐을 미리 싸놨다.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버스는 낮 2:30.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전을 그냥 보내기엔 아깝길래 근처 라면 만들기 체험을 하기로 했다. 미리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카운터 옆에 맡긴 채 밖을 나섰다.


Mamee Jonker House

46 & 48, Jalan Hang Jebat, 75200 Melaka, 말레이시아


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이다. 라면 캐릭터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고, 가게 안 쪽에서는 컵라면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먼저 컵라면 맛을 고르고 결제를 한 후, 컵을 받아 안에 책상에 앉아서 컵의 겉종이를 사인펜으로 꾸민다.


다 꾸민 컵을 들고 뒤로 들어가면 마치 공장 한켠을 떼 온 것과 같은 곳이 있다. 면 위에 컵을 올리면 레일이 돌아가며 이동하고, 직원들이 토핑을 넣어 밀봉한 후 상자에 담아준다. 토핑은 취향껏 고를 수 있다.


컵라면 박스를 들고 라면 가게에서 나와 점심을 미리 먹으러 갔다. 버스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가기까지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급히 구글맵 검색으로 근처에 카페 겸 식당을 갔는데, 제대로 찾아왔나 보다. 웨이팅이다. 특히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인지 온갖 꼬부랑 언어들 속에서 30분 넘게 대기 후 들어갈 수 있었다.



The Daily Fix Cafe

55, Jalan Hang Jebat, 75200 Melaka, 말레이시아

브런치를 먹기 괜찮은 곳이다. 서양인들이 특히 많고,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단, 사람이 많아 다소 번잡하다. 음료와 버거를 먹었는데 무난한 맛이었다.



속까지 채우고 나니 어느새 버스를 타러 갈 시간. 버스는 말라카 센트럴 버스 터미널에 가서 타야 한다. 짐을 가지러 숙소 앞을 갔는데, 웬걸, 또 어제처럼 어수선한 상황이 우리 숙소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호텔 대문을 아예 닫아두고 지키고 있고, 앞에 카메라를 든 사람도 서 있는 것을 보니 또 누가 오나 보다. 카메라맨 옆에 서서 고민하다가 파파고를 눌러 숙소 대문을 지키고 있는 분께 갔다. 못 들어가게 할까 봐 잠시 떨렸지만 내 짐 보관증과 폰에 적혀있는 문장을 보시곤 친절히 문을 열어주셨다. 안을 들어가 보니 1층 조식당에서 엄청난 수의 경찰들이 점심을 드시고 계신다. 숙소 내부에서 무슨 행사가 있긴 한 모양이다. 옆에 우리 짐 가방을 찾아 얼른 밖으로 나왔다.


이제 여행 오기 전부터 살짝 떨렸던 시간이 왔다. 처음으로 그랩을 사용할 시간인 것이다. 이곳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할 수단이 택시가 최선이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본 대로 그랩을 켜서 택시를 잡는데, 큰일이다. 근처에 택시가 없다. 한참을 기다려 요금을 따따블까지 올려 겨우 잡힌 택시는 이제 버스터미널에서 우리 숙소로 출발했다. 뭐든 항상 시간 여유를 두고 움직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시간이 지체될 줄 몰랐다. 게다가 숙소 앞 도로는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곳인 데다 숙소 이벤트 덕분에 복잡해진 덕에 골목 어귀에 다다른 택시가 우리 앞까지 들어오기까지 한참 걸렸다.


땡볕에 서서 20분 넘게 발만 동동 구르다 택시 기사님이 우리 앞에 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급히 짐을 넣고 앉아 출발했다. 현재 시각 2:00. 겉으론 내색 안 했지만 속으로 정말 맘 졸인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님의 현란한 운전 솜씨 덕분에 다행히 출발 6분 전 터미널에 도착!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랩에 팁주기가 열렸을 때 제일 높은 걸 눌렀다. 짐을 내리자마자 한 손엔 뚜 손을, 다른 한 손엔 대충 쌓은 캐리어를 잡고 마구 달렸다. TV에서 봤던 그 카운터에 가서 버스 티켓을 받고 반대편 출구로 나가니 마침 바로 앞에 우리 버스가 짐을 싣고 있었다. 버스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리도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다. 휴, 살았다.


30분 출발 버스는 32분이 되자 바로 문을 닫고 출발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못 탈 뻔했다. 온몸은 이미 땀범벅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 한 시간여의 긴박한 시간 동안 잘 따라와 준 뚜에게 새삼 미안하고 고마웠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뚜를 보니 입이 삐죽 나와있다.


“뚜야, 엄마가 버스 못 탈까 봐 마음이 너무 급했어. 제대로 신경 못써줘서 미안해. 혹시 엄마한테 서운한 거 있었어? “

”그게 아니라 아까 터미널 안에 인형 뽑기 기계가 있었는데 제대로 못 봤어! “


아... 쿠알라룸푸르에 가면 인형 뽑기부터 해줘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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