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는 광고인의 잘못이라기 보다 광고 대상의 상품이 너무나 답이 없어서 광고에 실패하는 경우의 얘기를 꺼내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품은 멀쩡한데 사람, 즉 의뢰인 자체가 문제인 경우를 한번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답이 없는 제품을 내놓는다는게 의뢰인의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상품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경우, 의뢰인의 행동 때문에 광고에 실패하는 사례를 들고자 한다.
의뢰인이 문제일 경우에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갈린다. 물론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여러가지의 문제가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때 모든 문제는 크게 이 두가지 중 하나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너무 없거나, 관심이 너무 많거나.
오늘은 이중에서 관심이 없는 케이스를 다뤄보고자 한다.
우리는 영상제작업체다. 저번에도 얘기한적이 있지만, SNS나 유튜브에서 가볍게 보고 넘기는 영상부터 IPTV와 지상파 송출용 광고같은 무거운 영상까지 다룬다. 영상제작이라는 일종의 용역서비스는 다른 서비스도 비슷하겠지만 "비대면"으로 진행되면 나중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특히나 높다. 왜냐면 영상이라는 것이 (특히 광고는) 단순한 유선상 통화만 통해서는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림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상황이 허락한다면 반드시 대면 미팅을 진행하여 의뢰인과 상호간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의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암튼 대면미팅이란 것을 가게되면 첫 소개팅 자리에서 슬쩍슬쩍 호구조사를 들어가듯이, 우리도 의뢰인의 호구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호구조사라 해서 나쁜 의도는 아니고 주력상품이 무엇인지, 주 소비자층이 어떻게 되는지, 기존의 광고집행은 어떻게 했는 지 등을 확인하여 새로운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아가게 된다. 보통의 의뢰인들은 이 호구조사에 순순히 응해주는 편이지만 세상엔 어디를 가나 빌런이 있는 법. 여러가지 질문에 다짜고짜 이렇게 대답하시는 비범한 의뢰인들이 있다.
"전문가시니까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간혹 광고제작에 있어 업체를 너무 신뢰하는(?) 것인지 이렇게 말을 던지는 의뢰인이 간혹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울감과 암울함에 압도된 나머지 길가던 택시를 잡아타곤 "아무데나 갑시다" 하는 손님처럼, 사람과의 대화가 능숙하지 않은 극한의 내성적인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겨우 입을 여는 것처럼 말하니 우리는 찜찜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맘대로 하라 그랬으니 좋은거 아니냐 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택시를 타고나서 아무데나 갑시다, 혹은 미용실에서 알아서 해달라는 멘트의 폐혜는 사실 '개인'의 피해에 국한되는 일이다. 하지만 회사를 상대로 정말 아무렇게나 작업했다가는 회사의 구성원, 즉 수많은 가장과 개인,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증명이 날라오는 등의 '나'를 비롯한 우리 구성원에도 피해가 갈 소지가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우리도 입장이 난처해진다는 말이다.
아무튼,
기껏 비싼 돈 주고 맡기면서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심리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걸까?
대부분의 경우 의뢰인이 업체를 너무 신뢰해서라기 보다는 "자기도 생각하기 귀찮아서"라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광고영상에는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다. 주 수요층, 그리고 이 영상을 보여줄 타겟층, 영상의 컨셉, 키워드, 매체의 종류 등등 작정하고 살펴보면 셀 수 조차 불가능한 요소들이 산재한다. 대부분의 성실한 의뢰인(대부분의 경우 이 프로젝트를 떠맡게 된 불쌍한 담당자) 은 적지 않은 금액을 주고 제작하는, 혹은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하는 광고영상인 만큼 선술한 요소들에 대해 업체와 함께 고민하고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 하게 된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종료될 즈음에는 뭔가 이 힘든걸 함께 해냈다는 동질감이랄까? 여느 직장동료보다 더욱 가까운 '전우' 같은 개념의 사이로 발전해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가끔가다 일에 의욕이 없는 의뢰인(월급루팡이거나, 마케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부서 소속의 직원이거나, 어디에선가 영상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대표님들 등)과 마주치게 된 경우가 문제가 된다. 그냥 제품 상세페이지 링크를 슥 건네주고는 알아서 만들어달란다. 따로 생각해본 컨셉이 있느냐, 아니면 어떤 스타일로 제작하길 희망하시냐는 물음에 쿨하게 "그런거 없다"는 답변을 날린다. 하.. 잠깐만, 눈에 흐르는 땀좀 닦고..
좋다. 영상에 감이 없는게 죄는 아니니까. 영상을 어떤 스타일, 어떤 컨셉으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충분히 우리의 몫이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뢰인이 제시해주면 좀더 수월한 뿐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계인 판매 데이터를 물어보는 순간 점입가경이 된다.
'제품의 주 구매층이 어떻게 되나요? 이번 프로젝트의 타겟층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본 질문에 난데없이 질타가 쏟아진다.
"그런거는 전문가가 더 잘 아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맙소사. 그걸 우리가 맞출 수준이 되면 그냥 점집을 차렸겠지. 아니면 로또를 사거나.
물론 추측은 해 볼 수 있다. 만약 립밤을 인터넷 등지에서 어리고 어린 아이돌을 모델로 삼아 개당 3000원에 판매하고 있다면, 이건 분명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을 타겟으로 삼고있다는 것 정도로 추측을 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내용과 진실은 조금이라도 괴리가 있을 수 있는 법. 명확한 데이터는 언제나 디지털 상의 숫자가 이를 입증해줄 뿐이다.
그래. 만약 신제품이라면 아직 그런 데이터가 없는 무주공산의 상황일 수 있다. 이제 막 런칭한 따끈따근한 신제품이라 구체적인 판매 관련 데이터가 존재할 수 없을 경우에, 대략적인 방향을 가늠해 의뢰인에게 조언해 주는 것도 우리 몫일 수 있다. 침착하자. 다음 질문을 이어나간다.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매체는 어디로 진행할 생각이실까요? 사람별에서 하시나요? 아님 너튜브?"
"잘나가는 걸로 해주세요"
혹은 비슷한 확률로
"다 할꺼에요"
(.....)
사실 사람이 나쁜것은 아니다. 자기가 맡은 업무도 아닌, 다른 일로 바빠 죽겠는데 대표가 불러내서 '영상하나 뽑아와 봐'라고 했다거나, 별다른 홍보 없이도 잘 팔리는 물건인데 "그래도 요즘같은 때에 제품영상 하나정도는 있어야지"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심드렁하게 영상 하나 만드려는 대표님 중 한사람일 뿐일 수도 있다. 이쯤되면 난처해지는건 언제나 업체측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업체가 있다면 정말 둘 중 하나다.
용한 점쟁이가 점집 때려치우고 영상을 만들거나, 사기꾼이거나.
업체마다 의견은 분명 다르겠지만, 영상제작에 있어 의뢰인의 핵심적인 역할은 '전반적인 방향의 제시' 와, '현황의 공유'다.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지금 부산에 가야해요.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라고 미팅때 의뢰인이 얘기했다 치자. 이걸 들은 우리는 이 미팅을 통해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니 비용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하므로 열차나 개인차량 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라는 조언과 결론, 그리고 그에대한 근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가장 먼저 확인되어야 하는 상황은 선술한 "전반적인 방향의 제시"다. 즉 어디로 갈 건지 정도는 말해줘야 우리도 감을 잡고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의 예시에서는 "부산에 가야 한다" 라는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되었다. 이 방향이야말로 영상제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핵심이 된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영상을 만들어야 할 지, 특정 제품에 대한 판촉을 위한 영상을 만들어야 할 지, 아니면 신제품 런칭에 대한 홍보영상을 만들어야 할 지 등등의 기본적 영상의 뼈대를 잡아가게 된다.
그 다음은 상황의 공유, 즉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현황이다. 이를 통해 우리도 비용과 시간 사이에서 시간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비행기를 타고 가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즉 제품 판촉을 위한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 판매 데이터를 확인하여 이걸 B2B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할 지, B2C를 염두에 둘 지, 40대 누님들의 지갑을 열도록 만들 지, 등등 영상을 제작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방안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예시가 간단해서 그걸 쉽게 제시 하지 못할까 싶지만 저 방향과 현황을 명확하게 구체화 하는 작업은 제법 어려운 일이다. 타겟층을 여성으로 잡아야 할지, 남성으로 잡아야 할지 감을 못잡고 되려 "어떻해야 하죠?" 라고 우리에게 되묻는 것은 예사요, 작년에 진행한 모 업체는 자기네 신규서비스 홍보를 위한 영상을 제작한다고 미팅에 부르고는 이걸 거래처에만 보여줄지,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줘야 할지 전무파와 상무파로 나뉘어 눈앞에서 살벌하게 내전을 벌이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정식으로 브리프(의뢰인이 업체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제작요청서, 여기에 제작의 목적과 달성시의 효과 등 의뢰인이 원하는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다.)를 전달하고선, 미팅 자리에서 B2B로 제작하느니, B2C로 제작하느니 피터지게 파트장끼리 싸우는 무려 "대기업"도 있었다.
암튼 이렇게 방향과 현황을 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에라 모르겠다, 늬들이 알아서 좀 해라' 라는 포지션으로 일관하는 의뢰인이 분명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흔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가능한 최대로 정보를 수집해서 기획-제작하는 단계에서 일일이 의뢰인과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겨둔다. 마음대로 하라는 카톡 대화를 미리 캡쳐하거나 녹음해 두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앞 편에서도 서술했지만 우리도 우리의 광고가 최대한으로 효율을 발휘하도록 노력하고 고민해서 제작에 들어간다. 그래야 상품이 잘 팔려서 다시 우리에게 광고를 의뢰할 테니까. 즉 맘대로 만들라고 해서 헛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가슴아프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안 될라 치면 끝까지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맘대로 만들라고 하는게 가장 큰 문제인 이유가 뭐냐면 대부분의 경우, 결과물을 보여주면 이런 말이 돌아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래요?
(그래.. 이렇게 만들라고는 한 적 없지..)
항상 예상처럼 이렇게 치고 들어오기에, 우리도 보험삼아 준비한 대화내용 캡쳐본 등을 제시하지만 들려오는 답변은 똑같다. "저는 그걸 의미한게 아니고요..." 라고. 우리가 어떤 노력을 했든 광고주가 맘에 들지 않으므로, 아니면 제대로 효율을 내지 못해서 실패한 광고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이렇게 왕왕 있다.
억울하다 싶지만 사업이라는게 세상살이의 종합 이바구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가장 보람찰 때는 위 상황처럼 다투다가 헤어지고 나서 자기들끼리 광고 돌려보니 또 은근 효율적이라는 결과를 얻자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시 우리에게 찾아 올 때다. 이때만큼은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므로 세상 뿌듯하기가 이를 데 없어진다.
종종 주위사람들에게 얘기하는 바이지만, 영상제작과 인테리어는 비슷한 점이 많다. 견적을 내는것도 그렇고, 진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의뢰인이 적당한 관심을 가지고 영상 제작에 있어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한다면, 그 영상은 정말 '제대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자.
다음편에서는 반대로 관심이 너무나 많아질 경우의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