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난다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불공평한 현실이었다.
노력과 성실이 정직하게 보상받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무력함을 배웠다.
직장은 사회의 축소판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기대보다 냉혹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곳은 정의보다는 관계가,
실력보다는 분위기가 더 큰 힘을 가졌다.
누군가는 근거 없는 칭찬을 받고,
누군가는 이유 없는 질투를 받았다.
그 기준은 실적이 아니라 ‘누구와 가까운가’였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잘못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과 대신 웃음을 택했고,
반성 대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들이 더 오래 남았다.
한편, 상처받은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진심으로 일하던 사람이 먼저 지쳐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실감했다.
가해자는 늘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그들의 세계에는 양심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도 죄책감이 없었다.
그런 현실을 보며 나 역시 변했다.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냉정한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그 말은 마음 한구석을 오래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옳고 싶었다.
하지만 ‘옳음’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직장이었다.
그 모순이 나를 가장 지치게 했다.
회사는 성과보다 관계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이유가 되고,
누군가를 감싸는 말 한마디가 방패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진심은 늘 뒤처졌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인정받기보다 이용당했다.
결국 성실함이 약점이 되는 현실이었다.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침묵했다.
‘괜히 휘말리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 침묵이 결국 가해자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 침묵 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무섭고, 피하고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비겁했지만,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직장에서 정의를 외치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내는 사람은
대체로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불공평한 현실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그 불공평에 동조하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행동의 방향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가 남는 이유는 그들이 뻔뻔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런 사람을 불편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떠나는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감당할 만큼 섬세하고, 정직하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은 그런 사람을 품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르게 버틴다.
불공평한 구조 안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내가 떠나야 할 때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가해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기록뿐이다.
직장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는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오늘도 버티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