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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민낯 - 조직의 침묵

잘못된 구조가 낳는 피해자들

by 노멀휴먼

조직에는 언제나 말하지 않는 공기가 흐른다.


누가 봐도 잘못된 일인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침묵은 묘하게 익숙하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된다.


나 역시 그 공기 속에서 오래 버텼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순간,

불편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가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었다.


회의 시간에 누군가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모두는 시선을 피했다.

눈을 마주치면 나까지 연루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건 겁이 아니라, 체득된 생존 방식이었다.


조직의 침묵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그건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이다.

말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않는다.


한 번은 상사가 명백한 실수를 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 그 잘못은 팀원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그때 나는 ‘진실은 조직에서 종종 사라진다’는 걸 배웠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결과, 침묵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린다.


그 침묵의 문화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점점 생각이 굳어지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결국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조직의 침묵은 단지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건 ‘양심을 잠재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사람의 감정은 무뎌진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겪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괜히 나섰다가 나만 손해 보지.”

그 말은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건 사실상 가해 구조의 일부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그 잘못에 동조하게 된다.


나는 그런 조직에서 오래 일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도 정의감에 불타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나서,

나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 침묵이 나를 지켜줬지만, 동시에 나를 무너뜨렸다.

내가 옳다고 믿던 가치들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타협이 일상이 되었다.


결국 누군가 떠나던 날,

조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다.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했고,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침묵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병이라는 걸.


조직은 효율을 중시하지만,

효율이 인간성을 지배하면 균열이 생긴다.

성과와 순응이 기준이 되면, 옳고 그름은 사라진다.

그렇게 조직은 스스로의 도덕적 기반을 갉아먹는다.


한번 굳어진 침묵의 구조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새로 들어온 사람도 곧 그 공기에 익숙해진다.

결국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조직의 침묵은 단순한 방관이 아니다.

그건 불합리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더 깊어진다.


리더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의 무관심은 가장 큰 폭력이다.

조직의 분위기는 결국 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제 ‘조용한 직장’을 더 이상 안정적인 곳으로 보지 않는다.

조용하다는 건 평화가 아니라, 억압일 때가 많다.

말이 사라진 조직은 결국 신뢰도 함께 잃게 된다.


건강한 조직은 침묵이 아닌 대화로 유지된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진짜 리더십이다.

그 용기가 없으면,

조직은 서서히 병들어간다.


이제 나는 침묵이 아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누군가에게 불편하더라도,

결국 옳은 일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침묵이 만들어낸 피해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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