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해를 끼치지 않게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모든 관계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이익만을 계산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처음엔 그 온도차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나의 착각이겠거니,
혹은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진짜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겉으로는 웃으며 도와주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험담을 일삼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힘들 때는 모른 척하면서,
자신이 필요할 때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관계는 결국 내 에너지를 서서히 갉아먹는 독이었다.
한동안은 그들의 태도를 참아보려 했다.
‘사람이 다 완벽할 순 없지’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버텼다.
그러나 그 인내가 결국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굳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곁에 둘 이유가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건 냉정한 결단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였다.
해로운 관계의 특징은 반복된다는 점이다.
같은 패턴으로 다가와,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남긴다.
그 흐름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거리두기’였다.
처음에는 그 거리두기가 서툴렀다.
괜히 마음이 불편했고,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미안함 뒤에는 늘 후회가 따라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건강한 나’로 살기로 말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관계의 기술은 결국 ‘선 긋기’의 기술이다.
아무리 친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아무리 예의가 중요해도 지켜야 할 내 마음의 영역이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보다 내 감정을 우선시한다.
내가 불편하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거리를 둘 자격이 있다.
그게 자존감 있는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밀어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은 오히려 더 가까이 두고 싶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이라면,
조용히 멀어지는 게 현명하다.
이제 나는 관계를 맺을 때 에너지를 계산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평안을 주는가,
아니면 피로를 주는가를 따진다.
그 단순한 기준이 내 삶을 훨씬 가볍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손절’이라는 말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성숙한 분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건강한 삶을 위해선 건강한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과 멀어지는 일은
결국 나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선언이다.
그건 타인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매일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관계를 통제할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바로 ‘이성적인 거리두기’이다.
이제는 모든 부탁에 “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 일정과 마음이 허락할 때만 “예”라고 답한다.
거절은 무례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표현이다.
누군가를 멀리한다고 해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선택이 관계를 더 오래 유지하게 만들 때도 있다.
적당한 거리는 서로를 존중하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단지 인생의 일부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나는 이제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조용히 멀어지고, 그 자리에서 나의 평화를 지킨다.
인생은 짧고, 마음의 평화는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내 인생에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거리를 둘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