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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 Jun 14. 2024

생리통이 한 여성을 망가뜨리는 과정

배 아파 죽겠다 그만 좀 괴롭혀라

1. 첫 고통 18주년을 맞는 글

이 모든 고통은 2006년 독일 월드컵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수많은 월드컵과 올림픽을 지나는 동안 나는 매달 정직하게 아팠다. 생리 주기는 꽤나 정확한 덕이다. 어느 어플을 이용해 체크해도 생리 예정일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편이며 이 점에는 불만 없이 감사하다.

불행한 점은 생리통이 꽤, 아주 심한 편이라는 거다. 약 5일 중 통증이 가장 심한 둘째 날에는 강한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를 못 본다. 누군가 내 아랫배를 양손으로 잡고 힘껏 비틀어 짜는 고통을 하루종일 느낀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2. 생리통을 없애기 위해 해 온 노력

효과가 좋다는 진통제를 여러 개 먹어봤다. 생리 시작 즈음이나 끝나가는 순간에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약을 먹으면 한 시간 내로 아랫배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본래의 배가 찢어질 것 같던 통증이 조금 잡힌다. 문제는 생리 2~3일 찬데, 이렇게 무효할 바에 속만 안 좋게 왜 약을 먹는지 위가 아까울 지경이다.

약국 약으로 해결이 안 되니 산부인과에 가 봤다. 이런저런 정밀검사를 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과는 '자궁에는 이상이 없음‘이었다. 자궁에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아플 수도 있지만, 어떤 문제없이 깨끗해도 미친 듯 아플 수 있다는 거였다. 그저 체질에 따라, 스트레스에 따라.


3. 아픈 것 외에 거슬리는 점

한 달에 생리대 및 탐폰 구매로 기본 2만 원의 고정 지출을 하게 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생리를 맞는다면 편의점에서 급히 써야 하는 돈도 약 1만 원이다. 생활필수품의 영역이라 생리대의 가격을 쪼잔하게 따져본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쪼잔하고 꼼꼼하게 따져대야 하는 영역이라는 걸 알았다. 이것도 쌓이다 보면 정말로 귀찮고도 아깝다.

생리통이 심해지는 원인이 생리대에 들어있는 화학원료 때문이라며, 좋은 품질의 유기농 생리대를 사야 할 것 같은 흐름도 있었다. 그게 문제라면 모든 생리대 제조업체에서 사람 몸이 덜 아픈 방향으로 개발하도록 할 일이지, 내가 비싼 것을 골라서 소비해야 하다니.

학창 시절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는 부모님이 나트라케어 생리대를 박스째로 사 두셨으며 그게 아마 몇 십만 원은 되었다. 기본적인 복지의 개념으로 지원받아 사용해도 불편할 것을 내 돈 주고 사서 쟁이고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농락당하는 기분이 든다.


4. 아픈데 병가도 못 쓰고

마음 편히 누워 잠드는 것도 조마조마한 날이 있다. 실수했다간 속옷과 잠옷, 이불을 삶아야 하는 귀찮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알아서 이 불편을 없애주는 기계가 나와야 할 거 아냐.) 그럼에도 생리 중에는 늘어져 휴식을 취하는 것만이 답이다. 그런데 생리 첫날이 월요일이라면?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라면?

우리 회사 직원들은 보건휴가(생리휴가)를 월에 1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생리휴가 사용을 위해 복무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잘 안 쓰이는 휴가이니 웬만하면 연차를 사용하시라'는 답변을 들었다. 어이가 없어서 회사 안팎 여기저기에 소문내는 중이다. 법과 규정을 운운하는 공공기관의 복무 담당자라는 사람이 '웬만하면'이라는 납득도 안 되는 모호한 단어를 쓰다니, 근거도 부족하고 개념도 부족하다.


오늘 같은 날엔 내가 월경의 고통을 앓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고 원망스러워서, 이 고통을 깡그리 없애줄 명약을 서둘러 개발해 무료 배포하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내 결정도 없이 나를 임신준비생으로 설정해 태어나게 한 랜덤한 창조주에게도 힘껏 따져 묻고 싶다. 이렇게 된 데에 그냥은 없다. 나는 아파서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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