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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Aug 12. 2023

돈이 다가 아니었던 기억

식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I hope everybody could get rich and famous and will have everything they ever dreamed of, so they will know that it's not the answer."
- JIM CARREY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꿈꿔왔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그것이 답이 아닌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돈을 위해서 일을 한다. 야근을 하느라 지쳤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다음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회사에 간다.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고, 돈을 벌기 위해 그럼에도 싫은 내색 한 번을 편히 못다. 돈을 벌기 위해 몸에 적신호가 왔는데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병원 방문을 미루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버틴다. 주말이 온다. 월요일이면 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주어진 주말엔 만사가 귀찮다. 그렇게 장기하의 'TV를 봤네'의 가사처럼 (명곡이다) 의미 없이 TV만 보고 시간을 허투루 쓰며 주말을 보낸다. 월요일이 오면 또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선다.


대부분 이렇게 산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위해서 일을 한다.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가끔 헷갈리는 삶을 산다.


이런 내게 돈이 다가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을 경험으로 느끼게 한 계기가 있다.




얼마 전, 연봉이 올랐다. 회사 사정으로 인해 직책을 맡게 되면서이기도 하지만, 인재들이 대거 경쟁사로 이직하는 일이 생기면서 회사 차원에서도 연봉 대폭 인상이라는 이례적인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내 연봉은 첫 입사 연봉 대비 3배가 되었다.


"그렇다고 통장에 월급이 입금될 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잖아? 돈이 들어오는 건데."


연봉 인상 전, 월급이 적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월급날 하루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에 다니며 주말 근무 없이 매일 칼퇴를 하고 아이를 하원시키는 일상이, 피곤하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올해 회사 실적이 좋아 전 직원 대상 성과급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알림이 왔다. 드디어 성과급이 입금되었구나! 우리 회사는 성과급이 정형화된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그런데 금액이 조금 이상했다. 예상했던 금액 대비 터무니없이 적다. 아니나 다를까, 육아휴직 기간 동안만큼은 제외되었단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임신 기간에도 잔꾀 한번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나였기에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기수들에 비해 적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쳐도, 8년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갓 입사한 신입들보다 적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회사에 헌신하니 헌신짝이 되었다는 얼마 전 퇴사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돈이 들어와도 기분이 나쁠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은 이랬다.

일은 많고, 인력은 달리는 부서로 인사이동 후 매일 야근을 했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많은 일들을 해치우기 위해 강제로 할 수밖에 없는 야근이었다. 엄마 회사 가지 말라는 아이를 뒤로하고,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업무를 익혀나가던 어느 월급날이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야근과 주말 수당을 더해서 내가 이제껏 받았던 월급보다 컸다. 평소였다면 하루종일, 아니, 이 금액이라면 최소 1주일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OO 씨,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소리를 듣고 다닐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겁지가 않았다.


물론 나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의아했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들였던 노력 대비 만족할 수가 없어서였다. 여기서 노력이란, 내가 내 꿈을 위해 숭고하게 달려가는 그런 노력이 아닌,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포기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예를 들면,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이 중요한 아이의 성장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뒤로하고, 그리고 몸이 안 좋아 병원 검진을 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매일을 살다시피 하며 몸을 혹사시키며 회사를 위해 업무에 올인했던 시간. 늘 가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완벽주의자 성격에 주어진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해내려고 발버둥 쳤던, 그 시간에 대한 한탄과 허탈함이었다. 통장에 찍힌 월급과 그 시간을 맞바꾸라고 하면 언제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이후로 한동안 현타가 와서 일태기와 매너리즘에 시달렸었다.




반대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통장에 5,900원이 찍혔다. 뭘까 하고 은행 어플을 열어봤더니, 작년에 공저로 출간한 책에 대한 첫 인세가 들어온 것이었다. 커피값도 6,000원 하는 요즘 5,9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월급에 비해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지만 사람들 말마따나 '작고 소중'했다. 너무 귀여운 금액이었지만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글쓰기는 내가 늘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아이 핑계로 미뤄두고만 있다 작년에 복직을 하며 용기를 내어 도전했던 일이었다. 문득 지난번 월급을 받았을 때의 일이 교차되며, 정말 돈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어느 정도의 행복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먹을 음식이 없고 입을 옷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그러나 이는 한계치가 있다고 한다. 그 특정 시점을 넘어서면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행복 지수가 낮아진다고 한다. 물론 그러려면 아주 많은 돈이 있어야겠지만.


그렇지만 우리가 그 정도의 돈을 못 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연연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된다. 나에게 야근을 요구하는 직장이 없다면, 아이도 있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내가 과연 5,900원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감히 해볼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적고 보니 조금 슬프기도 하다.)

내 생활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들보다는 긍정적인 점들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마인드 미니멀리즘'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는 붙이지 않더라도, 이런 태도로 지내면 조금이나마 '복세편살'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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