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폭설이 되어 온 세상을 덮은 아침이었다. 11월 폭설은 17년 만이라고 제아무리 떠들어도 K-직장인, K-학생들은 출근, 등교 미션을 해내야 한다. 미션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전직 스키선수가 스키를 타고 출근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는 서글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교통 대란에 몸과 마음이 지친 아침이기에 하얀 세상의 낭만은 머리를 스칠 수조차 없다. 저마다 험난한 길을 뚫고 출근, 등교 전쟁을 치열하게 치렀다. 출근길 무용담을 떠드느라 온통 시끌벅적하다. 시끌벅적한 세상 한쪽에 오랜만에 듣는 해맑은 웃음소리. 온통 하얀 세상에 아이들은 해맑다. 조회가 끝나자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서로 눈싸움을 하고, 장갑도 안 낀 손으로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든다. 걱정 없이 환하고,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 걱정 없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 점점 교실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다. 한참을 서서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반갑게 또 애달프게 바라봤다. 28년 넘게 교직에 있었지만 점점 학교가, 교직이 버거워진다.
별이 된 아이가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아니 1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무방비로 접한 슬픔이었기에 누구 하고도 슬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아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슬픔을 회피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슬픔을 나누지 못한 채 우리는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숨겼다. 누구의 죽음이 예상되고, 가늠이 되겠는가? 가늠되는 죽음이, 예상되는 죽음이 덜 서글픈 것도 아닐텐데 별이 된 아이는 문득문득 소환되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이누이트족은 내면에서 걱정과 분노가 밀려오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화가 난 마음에 집중하기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무작정 걷다 기분이 풀리면 그 지점을 나무 막대기로 표시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오며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다시 마음이 요동칠 때 전에 걸었던 길을 걸으며 이전에 표시해 둔 막대기를 발견하며 자신의 감정 농도를 측정한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 충실한 이누이트족의 지혜롭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회피한 나는 별이 된 아이가 아직도 먹먹하게 후회와 눈물로 남는다.
“선생님, 오늘 수업 모둠 교실에서 하지요? 학급 아이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선생님, 반 아이들 미리 조별로 앉혀 놓을까요?”
“선생님, 캠페인 문구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학급 반장인 아이는 모범적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예쁜 학생이었다. 항상 눈을 반짝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맞추던 아이였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아이의 최선이 애씀으로 느껴졌다. 그 애씀이 안쓰러워 손을 잡아주거나 꼭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착각일 수 있는 생각에 오지랖을 부리기 쉽지 않았다. 아니면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아는 것이 무서워 비겁하게 도망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조그만 몸으로 활기차게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씩씩하게 보였던 아이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하늘을 날아 별이 되었다. 아이의 영정 사진을 접하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가 쌓였다. 만약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면.... 아이를 따뜻하게 한 번만이라도 안아 주었다면.... 아이는 하얀 눈 속의 저 아이들처럼 지금도 해맑게 웃고 있지 않았을까? 17살의 어린아이가 힘든 세상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다고, 자신을 탓하는 한숨 섞인 글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선택은 하지 않지 않았을까? 어디까지 어리석을지 모르는 나는 이렇게 뒤늦은 후회만 하고 있다.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꾸 스러지고 있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고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어도 멈추지 못하고 달리고만 있다. 멈추고 싶지만, 멈추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 때문에, 우리 사회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잠깐의 멈춤 대신 영원한 안식을 택하고 있다. 스스로 채찍질하는 아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나조차도 아이들을 채찍질하는 일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하는 아이는 낙오자가 되고, 절망이 된다. 경쟁으로 꿈조차 꿀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의 굴레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약육강식의 세계를 맛보게 하기보다 꿈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실패가 성공의 반대말이 아닌 실패를 통해 경험을 배울 수 있는,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더 이상 뒤늦은 후회로 마음이 아려오는 그런 일은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하얀 세상 앞에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에 숨긴 아이를 떠 올려 본다. 별이 된 아이가 하늘에서만이라도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