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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넌 어디쯤 가고 있을까?

-제1부 오늘-

by 휘리

종로가 좋다. 우리가 즐겨봤던 영화관이 사라지고, 가판대 길게 늘어선 로또줄이 통행을 방해해도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 숨 쉬는 종로가 좋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을 보고 약속 장소인 종로 3가까지 걸었다. 검은 구름 사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 사이를 뚫고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그 옛날엔 네가 나의 어깨를 감싸 우산을 씌어주었는데.... 비 예보에도 우산을 챙기지 않은 미련한 사람은 추억을 온전히 맞을 수밖에.

“첫눈이 오면 항상 네가 생각 나. 우리 집 앞에서 하얀 함박눈을 온전히 맞으며 기다리고 있던 너. 그날 눈보다 더 하얀 네가 네 마음을 온통 차지했어.”

뒤늦게 알았다. 그 시절 내가 너의 마음을 차지했다는 것을.

우리는 비보다 눈을 더 좋아했다. 거리는 한없이 차가워도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고 있었기에 이 습한 더위보다 차가운 추위가 좋았다. 추억을 몰고 온 빗줄기는 다행히 굵어지지 않고 금방 그쳤다. 한적하게 길을 걷고 싶었으나 거리의 반이 공사 중인 도로는 보행을 방해했다. 천천히 걸었어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거울을 꺼내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고 열이 살짝 올라 붉어진 얼굴에 화장을 덧댔다. 그렇게 더위를 식히고 나니 네가 왔다. 하얀 배꽃이 피는 곳에 그 옛날에도, 지금도 배꽃보다 더 고운 미소를 띠고 네가 왔다.

“얼굴이 좀 상했다.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널 따라 가끔 달리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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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하게 걸어가던 길.때론 작은 돌멩이에, 때론 큰 구멍에 문득 발걸음을 멈출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머뭇거릴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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