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잠시 멀어지기

-제1부 오늘-

by 휘리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기로 했다. 사람, 커피, 핸드폰, 너… 출근해서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정신없이 살다 점심 식사 후 달달한 커피 한잔에 행복을 느끼는 삶. 만족했다.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규칙적인 패턴 안에 살면서 안정을 느꼈다. 그런데 버거워졌다. 왜 버거워졌는가? 그것을 찾기 위해 잠시 익숙한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본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 일단 사람으로부터 멀어졌다. 북적북적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벗어나 아무도 찾지 않을 동굴을 찾았다. 달달한 커피도 딱 끊고, 핸드폰도 치웠다. 그리고 책에 파묻혔다.


수경은 영실이 계획을 일러둔 그날부터 열심히 뜨개질을 하더니 보름 만에 꽃분홍색 스웨터를 만들어서 가져왔다. 날이 아직 추우니 입고 계세요. 하고 그 아이가 옷을 여며주었을 때 영실은 마음이 울렁거려 참기가 힘들었다.… “할머니, 그 여자가 가져간 거 맞아요. 이수경 그 여자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그 요양보호자.”, “걔는 아니라니까.” -백온유, 「반의반의 반」 중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 치료로 크기를 줄이고 수술을 잡아보자고. 신오의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 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 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가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환자분, 요새 아무리 생존율이 높아졌다지만 암이 우스우세요?”

-성혜령, 「원경」 중


눈에 머무는 구절들. 영실이 되고, 신오가 되고, 무엇이 된다. 사람을 믿지 않던 영실이 수경이에게 마음을 주었다. 마음을 준다는 것… 신오는 원경이 집안 내력 병을 얘기하자 그녀를 떠났다. 그리고 마주한 암 진단. 연인을 떠난다는 것… 동굴 안에서 끊임없이 말줄임표만 늘어났다.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동굴 안에 머물렀는데 머릿속은 다시 시끄럽다. 사람들에게 멀어져도 여전히 소음인 세상. 북적북적한 소음은 나로부터 발생했다.

동굴을 나와 혼자 걸었다. 아직 남아있는 칼자국이 욱신욱신 뱃속을 자극했다. 욱신욱신 자극하는 통증. 희열이 느껴졌다. 이 정도는 아파야지. 이 정도의 통증은 견뎌야지.

조금씩 더해지는 통증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며 조금 더 조금 더 걸었다. 누군가 명명해 준 아픔.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통증. 그래 지금은 이걸로 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휘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꿋꿋하게 걸어가던 길.때론 작은 돌멩이에, 때론 큰 구멍에 문득 발걸음을 멈출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머뭇거릴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36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6화6. 그냥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