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엄마는 열이 나는 뜨겁고 조그만 내 이마에 밤새 젖은 수건을 올려주셨다. 차가운 수건이 얹어지면 설핏 잠에서 깨었는데, 그때마다 어서 날이 밝기를 바랐다. 병은 어두울 때만 몰려와서 아침이 되면 조금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원 아래층에 있는 햄버거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엄마는 유치원을 빼먹고 병원에 가는 날에는 햄버거를 사주셨다. 햄버거를 생각하면 열 때문에 바짝 말랐던 입에 침이 고였다. 배를 다독이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다.
소아과 1층에 있는 그 햄버거 가게는 사장님 한 명이 운영하는 작고 귀여운 가게였다. 벽은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듯한 밝은 주황색이었고 테이블은 하얀색이었다. 가게 안에 있는 가구들은 전부 네모나고 딱딱해서 레고 안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우리는 병원 근처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며 햄버거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그때를 떠올리면 눈가에 투명한 햇살이 고인다.
보석상자 열듯이 하얀 스티로폼 뚜껑을 열면 아가의 볼처럼 만질만질한 햄버거가 나타났다. 주름 하나 없는 빵 표면은 황홀했고, 집에서 먹어본 적 없는 달콤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햄버거는 언제나 하나만 사서 동생과 나눠 먹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에는 사장님에게 따로 말하지 않아도 반으로 잘라주셨다. 동생과 나는 조금이라도 큰 걸 먹으려고 투덕거렸지만, 엄마랑 둘이 가는 날에는 몽땅 내 차지였다.
나는 엄마에게 지금도 가끔 그 햄버거 이야기를 한다. 두고두고 이야기하며 기억에 새롭게 남긴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난 후에도 맛있었다고 얘기할 정도라면 엄청 맛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 햄버거를 먹은 적이 없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없는 줄 알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 당시 엄마의 나이는 고작 스물아홉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8살쯤 되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엄마는 여름방학이 되면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외할머니댁에 갔다. 할머니 댁은 우리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할 일이 없어서 스케치북에 종일 그림을 그렸다. 그날도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부엌으로 가니 할머니가 부침개를 부치고 계셨다. 바쁜 할머니 옆에 서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부침개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는 매워서 못 먹어. 청양고추가 잔뜩 들어갔어."
"못 먹는데 왜 했어요?"
"네 거 아냐. 네 엄마 거야. 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엄마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니.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니.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우리 엄마일 뿐 아니라 할머니의 딸이고 내가 나인 것처럼 엄마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있는 ‘나’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안 먹고 안 자고 키운 우리 남매는 이제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크다. 퇴근 시간이 비슷했던 늦은 저녁에 엄마 주머니에 손을 꽂고 집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엄마, 그때 햄버거 안 먹고 싶었어?"
"왜 안 먹고 싶었겠니. 먹고 싶었지. 엄마 군것질 좋아했어. 너네 키우면서 다 잊어버렸지."
"진짜?"
"이모랑 이불 뒤집어쓰고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 다 퍼먹고 그랬어."
"우리 먹을 때 같이 먹지. 애들 먹이면서 같이 먹으면 되잖아."
"어려울 때였잖아."
"음. 그랬지."
지금은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하니 부자라면서 엄마는 웃는다. 엄마의 웃음을 보자 행복감과 동시에 우리를 스친 사소한 모든 순간이 그리워졌다. 쉼 없이 부서지는 찰나의 조각들. 그 시절의 우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붙잡아둘 매개체가 없다면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앙상해지겠지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오동통한 이파리가 돋아나리라.
엄마가 좋아하는 크루아상을 잔뜩 사 가야지. 벌써 엄마의 맑은 웃음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