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우 Feb 05. 2023

보여도 괜찮은 팬티

   마트에서 돈가스가 1+1행사 중이었다. 오늘 하루만 할인하길래 장바구니 한가득 담아왔다. 냉동실에 넣을 자리가 없어서 다회용 용기에 차곡차곡 옮겼다. 잔뜩 쌓인 돈가스를 보니 대학생 때 돈가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일이 떠올라 별안간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아직도?
 
   20대 초반에는 카라 티셔츠에 허리가 고무줄로 된 기다란 시폰치마를 입고 컨버스 검정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에게 카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몰랐고, 카라 티와 시폰치마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그냥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20살 여름, 명동에 있는 돈가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었다. 접시가 엄청 무거운 고급 돈가스 가게였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은 그릇과 음식이 잔뜩 얹어진 사각 쟁반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한 번에 두 개씩 날랐다. 하다 보면 그렇게 되겠지, 라는 생각에 하나씩 들고 서빙을 했는데 어느 날 언니들이 쟁반 두 개를 들고 가라고 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못 하겠다는 말을 못 해서 “네에…….”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뚝을 따라 그릇이 달그락거렸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가한 시간대라 가게 안은 조용했다. 가게 안에는 접시 위 그릇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만 울려 퍼졌고, 손님들도 숨을 죽이고 쳐다봤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조금씩 팔이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속으로 제발 조금만 버텨달라고 비는데, 언니 두 명이 급히 달려오며 하나씩 들어줬다. “아휴 안 되겠다. 너는 하나씩 들고 해. 못 들면 못 든다고 말하지.” 그러고는 언니들이 간식을 챙겨줬다.
 
   귀여움받기 시작하면서 언니, 오빠들이랑 같이 일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A는 나보다 다섯 살 많았다. 그는 사촌오빠랑 분위기가 비슷했다. 사촌오빠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생김새가 낯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었다. A와는 책을 읽거나 일기 쓰는 취미가 비슷했다. 좋아하는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 나는 신난 마음에 어색함을 억누르고 말을 많이 했다. A는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자주 빌려줬다. 그중엔 박완서 작가의 소설도 있었는데, 직접 읽은 것보다 A가 말해준 읽고 난 뒤의 생각이 더 재미있었다.
 
   일할 땐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나는 여전히 낯을 가리는 중이었다. 가게에 막 도착했을 때나, 끝나고 옷 갈아입고 나갈 때 특히 서먹했다. 일찍 도착한 날에는 가게 앞에서 서성이다가 10분 전에 딱 맞춰 출근하고, 갈아입고 나갈 때도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갔다. 그날도 일이 끝난 후 기다란 복도 끝에서 나무로 짜인 파티션 사이로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뭐 하냐…?”
 
   돌아보니 A가 서 있었다. 바로 나가지 않고 누가 있나 살핀 모습을 뭐라고 생각할까 부끄러웠다. A 뒤에 있는 전면 거울로 당황한 내 얼굴이 다 보였다. 창피하고 놀랐을 때 나는 저런 표정이구나. 그 표정이 별 볼 일 없어 더 창피했다. 빨개진 내 얼굴 아래,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그란 물체가 보였다. 엄청 익숙한데 밖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저게 뭐지?
 
   바로 내 엉덩이였다. 치마 끝이 허리 고무줄에 껴서 팬티가 드러나 있던 거였다. 앞이 멀쩡해서 미처 몰랐다. 나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고 서둘러 허리에서 치마를 빼낸 뒤 도망쳤다.

   다음날 A를 피해 다녔다. 필사적으로 A를 외면하는 만큼 엉덩이의 기억은 필사적으로 나를 따라다녔다. 도망칠수록 더 부끄러워지는 건가? 시간이 흐를수록 A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면 점차 두꺼운 얼굴이 필요했다. 내 얼굴은 너무너무 얇아서 금세 빨개지고, 금세 하얗게 질렸다. A와 친밀해졌던 만큼 더 창피했다. 나를 뭐라고 생각할지 무서웠다. 내가 어떻다고 생각할만한 것들이 A에게 너무 많았다. A에게 한 모든 말을 후회했다.
 
   “언제까지 피할 거야.”
   “네? 저…… 안… 피했는데….”
   “종일 눈도 안 마주치고 도망 다녔으면서. 뭘.”
   “…….”
   “나 아무것도 못 봤어. 그러니까 너도 잊어버려.”
   “네에…….”
 
   그래 놓고 일이 끝나면 바지만 갈아입고 유니폼을 입은 채 후다닥 도망쳤다. 나머지 일주일을 겨우 채우고, 일한 지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나는 떠났지만 내 엉덩이가 거기에 남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오랫동안 밤에 이불을 찼다. 함께 아르바이트했던 언니, 오빠들에게는 하루 웃고 말 만한 가벼운 사건이었는데, 내가 다음 날로 또 다음 날로 부끄러움을 연장하고 있었다. 타인은 내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거대한 자의식 때문에 자주 앓았다. 도망쳤다는 사실도 나를 부끄럽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숫기 없는 어린 나는 도망치지 않고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팬티를 보인 일은 여전히 창피하지만 도망쳤던 건 창피하지 않다. 팬티를 보여도 괜찮다. 도망가면 되니까. 지금도 누군가에게 실수로 팬티를 보인다면 당당하게 도망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살이랑 싸웠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