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춘천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우 Mar 31. 2023

침대에서

나만의 오롯한 공간

    나는 침대에서 많은 걸 해낸다. 읽고 쓰고 보고 듣고 마시고 한다. 침대에서 글을 쓸 땐 평소 자주 쓰지 않는 단어를 많이 쓰고 문장이 불규칙해져서, 쓰다 보면 수필이 시가 되고 일기가 소설이 되곤 했다. 침대에서 이것저것 하는 건 집순이 친구와 함께 살 때 생긴 버릇이다. 쉬는 날이면 침대에서 꼼짝 않는 친구 옆에 나란히 누워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버릇이 굳어져 혼자 살게 될 때에도 할 일을 침대 위로 가져온다. 누군가로 인해 새로운 습관이 생기는 일이 좋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닮아가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수록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주말 내내 침대에서 놀다가 월요일 아침에 미친 듯이 뛰었던 적이 있다. 겨우 버스에 탔는데 가슴이 쓰리고 앞이 하얗게 보였다. 그날 이후로 조금은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홈트레이닝을 찾아봤다. 유튜브에서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운동' 혹은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검색하니 엄청 많이 나왔다. 한두 가지를 슬슬 따라 하고 나면 종일 침대 위에 있는 죄책감이 덜해진다. 죄책감은 사람을 무력하게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침대에서 빗소리를 들을 땐 지구를 둥글게 돌고 있을 비의 순환을 마음으로 좇는다. 동그란 몸으로 동그란 지표면을 두드리고 있는 빗방울을 생각하면 왜인진 모르겠지만 마음이 단정해진다. 빗방울뿐만 아니라 침대에서 떠올리는 모든 일은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홍차빛 조명으로 물든 베개를 베고 내일을 다짐한다. 내일은 더 다정해야지. 내일은 더 이해해야지. 밀린 일기를 쓸 때도 그렇다. 내일은 더 걸어야지. 내일은 더 써야지. 물론 다짐한 만큼 지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일 하루를 겪어내고 무사히 침대로 돌아와 베개를 베니까 물방울 크기만큼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졌을 거라 여긴다. 내게 침대가 있는 이상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쓰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