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동그랗고, 잘게 잘라져 있고. 그런데 그게 하나고. 흩어지지 못하면서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가 담긴 만남을 파하다.
피망에 감자샐러드, 냉동 새우 대략 서너 개. 만 삼천 원의 값어치를 이마에 붙여 두고 살아가는 녀석들. 버석한 노란 장판.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보일러를 켠다. 이미 꺼져버린 불은 되살아날 가치를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한 끼라도 굶으면 예민해지고, 게걸스럽게 퍼부은 뒤엔 두통이 따른다. 적당하지 못하면 적당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하루. 신부 수업도, 재벌가의 권력 다툼도 아니라서 보잘것없을까. 충분하고만 싶을까. 그래서 지루했을까.
않는다, 나는. 거꾸로 쓰면서 반항을.
실수로 예고편을 본 뒤로 흥미를 잃은 지 꽤 되었음.
채널 돌리는 바다거북.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계급은 정해져 있었나?
추운 소녀들이 흑백 영화 속을 누비며 파랗게 얼어붙은 손등을 호호 분다. 입김이 더 차가운 것도 모르고. 죽어간다. 가혹한데, 그게 영화라서 가짜인 걸 알면서도 가엾어하게 되는 것처럼. 다행이야, 진짜가 아닌 가짜인데 또 진짜라서. 배고파, 추워, 추워, 배고파, 먹어도 춥고 입어도 배고파. 아무한테나 빌붙어도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
피자를 사러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지하철을 중간에 두고, 철도 위 그리고 철도 아래. 대부분 철도의 아랫길에는 습하고 지난한 목숨들이 자주 살아서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윗길로 걷는다. 하필 그날따라 윗길에 배고프고 추운 얼굴이 온통 점령했을 때, 사람들은 잘못 고른 시험 문항처럼 난잡한 표정으로 걸음을 지워 나갔다.
기억하니, 너한테 동전을 던져주던 표정 말이야.
피하는 게 나쁜 일인가?
피자를 사러 가고 싶지 않아.
나는 마주하고 가는 길.
구하러 가는 통로. 운명을 거스를 필요 없지. 더러운 건 그만 보고 싶다. 마음에도 없는 친절 같은 거,
이 제 버 려 도
좋아
끝나버린 김에 시작이라고 믿는 것처럼.
식은 피자를 베어 물며 운다. 맨 처음 태어나는 꿈을 꾸었다. 후련해.
A 소녀 의문의 살인사건 기사를 톺아보며
주목받지 않는 이름을 오린다.
사건에 집중하는 이는 없다. 완전 범죄? 부실 수사? 환생 영혼? 자작극?
그 애는 새롭게 태어났다. 아무도 추측하지 못할 것이다.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