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남은 시간은 20분.
눈을 깜빡일 때마다 2분씩 흘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치약의 끄트머리부터 짜야지. 살아 눈뜬 방은 숨 멎은 옷 무덤이 낮게 깔린 돼지우리가 따로 없고. 내 지구는 너무나 빨라서 일찌감치 모서리가 닳은 건가 봐. 지저분한 집을 닮은 점심 한 끼를 재빠르게 해치운다.
팔자 좋게 육수 내릴 시간이 어디 있어. 할인 마트에서 레트로트 사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할인마트레트로트 할인레트마트로트 레트마트할인로트······ 그래서 몇 분이나 돌려야 해? 이러다가 내가 돌겠네. 너무 멍청하게 지내지 말자. 삼각 김밥의 귀퉁이 같은 말은 하루가 지나면 영양가를 모조리 잃게 된다.
그렇다면, 그날 밤 그 사람은 왜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 신발 한 켤레를 가지런히 남겨두고 떠났던 걸까. 아무리 찾아도 같은 지하철 같은 칸 같은 냄새는 만날 수 없었던 건지. 한 번의 인연은 악연으로 치부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일이라면서. 지난한 말의 마디가 사각사각 떨린다. 아무렇게나 굶주린 넝마를 주워 입은 아이처럼.
얼굴에 찍힌 빨간 도장을 없애고 싶어서 잡티 제거 기능을 눌렀더니 온몸 전체가 사라졌던 적 있어. 너는 뒹굴며 웃었지. 잡티 같은 인생. 난 뭐 다를 거라 생각했던 걸까. 네가 웃는데 나는 숨고 싶었어.
밤길을 걸어가는데 걷다 주춤하는 걸 들켰는지 가로등이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더라. 나는 그게 따뜻해서, 또 왈칵 내어줄 뻔했어. 깜빡깜빡. 눈빛을 보내더니 이내 얌전해진다. 암호를 보내 봐.
암호의 조건 : 눈물 금지, 동정 금지, 연민 금지. 척 금지. 제외한 24가지 재료를 조합하시오.
이육사오이칠. 너는 함께 정한 비밀번호가 헤프다고 생각한다. 바뀌지 않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는 너희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헤어져도 헤어지지 않은 거라고. 아직까지 생일이면 빛바랜 문자를 주고받으니까. 바꿔 말하면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거야. 변하지 않은 건 변하지 않은 거지. 잃어도 잃지 않은 거라고. 사랑을 해, 아닌 건 버리는 게 맞아.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된다면? 남은 목소리를 보자기에 감싸서 수증기 위에 얹어둔다. 아래 칸에는 조금 녹슨 백설기 한 덩이를 끼워 넣고. 휘어지는 눈꼬리가 다시 쫄깃해질 때까지. 몇 시간은 거뜬히 버틸 테지. 먼 미래에 다가올 비극은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는다. 짝수로만 걷는 미래. 60에 도달한 시곗바늘은 주제를 아는 편이지. 초기화를 넘보지 않고 다음 패턴을 밟게 될 거야. 2분 남았다. 이제 문 앞에 둔 신발 찾으러 갈게. 그때 그 바깥을 떠올리며 마중 나와도 좋아.
입김, 창문 위에 떠오른 스무 개의 잔해. 네 얼굴. 찌그러진 공룡알.
창가에 비.
대칭 없는 마음이 예외없이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