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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Mar 02. 2024

제목 없는 베이커리

그 집에 케이크가 있어 나는 그 집을 싫어하는데 케이크는 먹고 싶었지 엄마에게 한 입 건네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거부감을 달콤함으로 꿀떡 삼켜버렸어 엄마 맛있지? 맛있지? 계속 물으면서 이해받거나 타당성을 주입하기 위하여 가녀린 울타리 기둥을 하나 뽑아 제물로 바친 거지 그럴 거면 차라리 어금니를 뽑지 그랬어? 잿더미 잔해 속에 음침하게 숨은 일말의 자존심, 떠도는 생크림을 업고 하수구 내장으로 흘러 엄마도 나도 지친 숨들도 배수관을 타고 떠내려갔지 조금 쉬자 쉬고 싶다 하소연하다 주저앉아 우는 모습 징그러워진 햇살 애초에 비교 대상도 아니었지 손등의 상처가 덧나서 빨간약 대신 블루베리 잼을 덧칠했어 그 집에 그게 있었으니까 있다는 게 짜증 났으니까 그러든 말든 아무렴 상관없었으니까 순간마다 드는 생각은 빵의 시트에 들어간 실크의 원단이나 동식물의 뼈를 갈아 넣은 휘핑 물감 육지를 닮은 열매 딸기잼과 살구잼 중 무엇이 더 다디달까 판가름 내는 서른아홉 번째 피해자도 가해자도 소실된 공판 그리하여 싱싱하게 썩어있는 냉장고 밖의 살아있는 그림자 같은 것들     


잼이 흐르고 있어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활짝 벌려 받아먹는 나     


액자 틈바구니 그 사람들이 너무 싫은데 그날만큼은 내가 더 싫었던 것 같아 황급히 들이닥친 폭우처럼 미안한 마음을 먼지 쓸 듯 훔쳤어 내게 희생하게끔 주어진 낱말을 전부 토해내게 만들었지 이미 늦었지만 너무 늦어버렸지만······     


땅이 흔들린 뒤에야 건물이 무너질 것을 알고 마치 영영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사람들의 옷가지 배낭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바닥의 화살표 문신 밥풀 말고 한숨이 얼룩진 숟가락 새벽 불꽃놀이 타오름 잉걸불 도무지 닦이지 않는 치워지지도 지워지지도 못할 발음, 매번 지는 끝말잇기


끝끝내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다고 말할까     


TO. 나를 믿은 사람들에게

모두 미안합니다 자주 흔들려서요     


나는 여전히 그 집이 싫지만 케이크를 버릴 수는 없겠지     


편지인지 쪽지인지 구분 짓지 않은 영수증을 파쇄기에 넣고 갈다가 엉겁결에 손톱이 같이 갈리는 상상

다 끝났으니까 떠나도 좋아

만약 돌아온다면 일요일 저녁엔 베이커리에서 만나     

허황된 봄 같은 건 그리워지기 전에 떠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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