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낮이 되면 모습을 비춰요. 본 적 있어요.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보따리로 꽁꽁 동여맨 짐을 한 아름 구겨 안은 듯한 얼굴을 말예요.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차가 그녀를 기다린다는 소문은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 진부한 농담 같고.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공허한 그림자를 채우는 요깃거리 혹은 말장난으로만 곁에 남았겠죠.
무지개와 구름을 잇는 흔들 다리를 건널 때는 숨을 참는 게 규칙이래요. 비가 온 직후로는 그곳을 건너지 말 것. 두 다리가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카메라를 들고 가도 소용없어요. 희뿌연 안개만 자욱해서 소득 없는 무모한 짓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런데요, 아까 그 여자. 그 여자가 핵심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다리를 감시하는 관리자라나 뭐라나.
눈이 내릴 때면 여자는 떠나요. 왕왕 발이 묶이고. 푹푹 빠지고. 매캐한 기침을 하고. 바람이 휘감아 으름장을 놓아도. 그녀는 강해요. 지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처럼. 무너지지도 겁을 먹지도 않는대요. 궁금해서 기다린 적 있어요.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으니까.
어디에 살아요? 집은? 가족은?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었나요? 나이는 몇 살이죠? 밤에는 무얼 하나요? 방금 무슨 표정을 지었어요? 말을 할 수 있나요? 슬퍼서 울어도 봤나요? 정말, 정말······
사람을 죽였어요?
죽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대요. 동네 경찰들은 그 여자를 닮은 몽타주를 들고 잡을 수도 없는 불명확한 진실을 쫓아다닙니다. 말해 주고 싶은데, 그녀는 아니라고. 나는 그날 밤 그녀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그녀는 낮에만 움직인다고. 어떤 순간에도 어긴 법은 없었다고. 게다가 요 며칠은 낮에도 밤에도 굳게 닫힌 저 문을 연 적이 없었다고.
나, 그녀를 믿지 않아요. 그저, 내가 본 걸 믿는 것뿐이죠. 아니니까, 그 여자는 아니니까. 나도 미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게 되는 세상이 지겹습니다. 믿는 대로 믿게 되는 게, 근거 없는 추측만큼이나 잔인해서. 우체통에 작은 쪽지를 넣어둔 건 구해주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안부를 묻고 싶었죠. 잘 지내는지, 살아는 있는지. 꺼내 읽는 순간,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누군가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밤이 당신에게 그저 어둠만이 아니길 기도하는 날이 있었어요.
가끔은 차갑고 후련한 공기를 마시게 해 주고 싶었어요.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얻었던 환상을 돌려줄 때가 온 것 같아요.
낮과 밤, 설익은 마음이 미숙한 마음에게 빚지지 않기를.
멈춘 회전목마 앞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