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느림보, 나의 집

나만 아는 삶의 증거.

by 블루나잇

몇 십 년째 고된 서울살이, 내 집 마련이라는 계획은 매캐한 도시 천장 위 별따기라는 소문이 있다. 이윽고 콩나물 대가리처럼 빼곡히 뭉친 동네 어귀를 타고 돌며 흉흉하게 도는 괴담으로 남을 만큼 이제는 숨결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집단을 모아놓고 죽기 전 반드시 이루고픈 소원을 펼치게 하면 손가락 다섯 개 안에 내 집 마련하기라는 옹골찬 글씨가 적지 않은 확률로 담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들보다 철없고 싶었던 나는, 나만의 낭만을 녹인 짠내음 가득한 수식어를 덧붙였다.


바닷가 앞에 있는 내 집 갖기.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습하고 퀴퀴한 공기가 머문다고 해서 혹은 어제 피다 만 곰팡이가 오늘도 내일도 서식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것만으로 까만 인생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달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캄캄한 위치에 가까울수록 텁텁한 공기와 머물수록, 달은 유달리 빛나는 법이니까. 잘렸든 곧 잘릴 예정이든 약간 덜 자랐든 달이 달이라는 진실은 불변하니까.


달은 결코 너저분한 흙바닥에 물들지 않는다. 산뜻한 밤기운으로 완연히 찬란한 당신만의 빛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영롱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그들에게 있어 행복의 척도가 자산이나 집 같은 가시적인 것이었다면 벌써 숱한 밤을 무너졌겠지만 그들은 일상과 같은 고난에서도 재난에서도 조금 비틀거리기만 할 뿐 영영 썩어내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이 서글픈 마음에 올곧은 환상처럼 남았으리라.


그들도 비로소 사람일지니 원하는 바와 들끓는 욕심을 탐하는 게 응당하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신념을 마음에 품은 이들은 미소에서 늘 때 묻지 않은 빛이 났다. 그리고 친숙한 주변에는 내세울 마땅한 집이 없는 그들 같은 애가 또 있었다.


그 애 이름은 민달팽이다.


같은 부류 비슷한 종족의 친구들에게는 한 채씩 집이 주어진다는 면에 있어서 확실히 불리하거나 억울했을 아이들이다. 집이 있는 애들보다 춥고 외롭고 습하고 어두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캉한 몸으로 온갖 거친 것들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는 굳은 의지를 읊으며. 뻔한 포기보다는 적으로부터 방어할 궁리를 오래 곱씹어 보았다. 죽고 싶어 하고 그만두고 싶어 할수록 우리는 왕왕 좌절과 우울에 점철되었으나, 대담한 방식을 지닌 걔의 습관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마침내 살고 싶어 하고 웃고 싶어 함으로써 일종의 돌파구를 찾게 될 시간이었다. 누가 뭐래도 번듯한 집 같은 그림 없이 꿋꿋하게 생을 일구어가는, 차고 시커먼 바닥 어디에서도 기죽지 않는 그 애들처럼. 일단은 경쟁으로 고민하거나 과장된 배려로 아파하지 말고 우리도 좀 살고 보자고. 숨부터 쉬자고.


달팽이는 지가 집이라고 했다.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으로부터 숨을 등껍데기가 있어서다. 유사한 평행으로 나는 민달팽이도 지가 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온몸이 껍데기 자체인 이들이기에 사회적 의지보다 스스로 믿는 마음이 그들을 책임져 줄 것만 같아서. 그래야 견딜 수 있을 테니까. 깨지면 끝날 표면적 껍데기보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꺾어나갈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 많을 지도 몰랐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당당할 수 있고. 강해질 수 있고.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일들.


허파로 호흡을 하며 육지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걔들처럼. 기약 없는 꿈이라 해도 백만 번 다짐하고 일천 번 희망하며 이곳에 주어진 각자의 생가에 뚜렷이 기거하는 우리들처럼.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빛을 띠는 달과 그들을 보면 나의 집은 꼭 어떤 껍데기가 아닌 나인 것만 같다. 존재로 부딪히고 깨지고 때론 자랑스러워하고. 그래서 어여쁜 나의 집. 어떤 의미로 보았더니 내 집 마련이라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마치 다 이룬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왕이면 더 좋은 집이 되어주고 싶은 어느 저녁 앞에서 곰곰 고뇌하다가. 은은히 떠오르는 반대 세계의 별빛을 눈가에 잡아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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