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단단해져야 하나요?
식빵은 말랑할 때가 가장 예쁜 걸요.
제아무리 갓 구워 뽀송한 식빵이라고 해도 상온에 장시간 보관하면 결국 거칠거칠한 표면의 무딘 옷으로 갈아입는 결말을 맞이한다.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구조로 설계된 선박 또한 이와 비슷하다. 거친 폭풍우와 기상 이변을 수차례 만나고 나면 속절없이 곪고 병들게 되는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두고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깊게 상처 난 속내는 단단해진 겉면 덕분에 다 괜찮아졌다. 밖으로는 그래 보였다. 흡사 단단해지기 위해 망가지는 사람들처럼. 이 악물고 부서지려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하다가 사랑을 끝내고 또다시 새 사랑을 구축한다고 해도 이전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위로 한 겹 두 겹 다른 기억을 쌓아가는 것일 뿐. 지금 행복해 보인다고 해서 지난 아픔과 슬픔들이 무뎌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제는 상관없는 척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견뎌야만 하니까. 내가 나를 불행하게 여기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어서. 지금의 사랑이 다인 척하던 때가 있었다. 그 사랑을 빼고 사람을 빼고 나니, 온전한 나는 없었던 때. 나 아닌 다른 여럿의 사람으로만 내가 구성되었던 때.
사람들은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도 말했다. 나는 가끔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말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고맙지만 미안하지도 미안하지만 고맙지도 않게 느껴질 때가, 그럴 때가 있어 버거웠다.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으면 싶은. 내가 삼키고 내뱉는 숨조차 무력해지곤 했다. 그냥 쉬어져서 쉬고 살아져서 살게 되는 그런 순간의 반복. 그 무렵 나는 자주 눈을 감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주저앉은 누군가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걱정과 우려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시간에, 나는 무리해서 단단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전부의 일은 내가 나로서 당당해지기 위하여 벌이는 것들인데 나를 죽여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이루고 또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태한 인생이 영 별로라고 해도 매일을 죄책감과 우울함에 빠져사는 누군가에겐 그 평범한 나태마저도 간절한 바람일 수 있으니.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곱씹었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고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성장 없는 미래로부터 비난받을지언정 몇 개의 숨이 행복해질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 사람 인생 하나하나 따져보면 별다를 바 없다고 하던가. 누군가 만들어 낸 기준에 의해 성공과 실패의 노선이 정해진다고 해도. 결국 삶은 개개인에게 맞춰진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당신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음에 안도하게 되는 날 앞에서, 오늘도 살아갈 희망의 부표를 소중히 옮겨 적는다. 지우는 문장이 늘어나는 날에도, 한 문장도 지우지 않은 글을 오래 바라보는 날에도. 그리하여 이렇게 깨어있구나 찬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에. 나는 고마웠다. 또다시 고마워질 것이었다. 한동안 적어 내려가는 글씨를 보며 어떤 꿈같은 존재의 여부를 떠올릴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