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당신에게 존재하는 소중한 불빛 앞에서.
같은 단어를 몇 번 반복해서 되뇌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설어진다. 집 근처 좁은 건널목에 새로운 신호등이 생겼다. 물끄러미 선 채로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몸짓을 말투 같은 것을 의식하며 신호등, 신호등. 읊어보다가 함께 있던 사람들마저 낯설어지는 광경을 마주한다.
그 길목에서 위로 몇 발자국만 올라가면 신호등이 있어서, 굳이 이 자리에 생길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위에 있던 신호에서 건너지 않고 지금 신호등이 생긴 자리에서 건너는 경우가 꽤 비일비재했다. 모든 것은 현재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도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 믿었다.
자유로이 또는 모순적인 위험을 시시각각 감지하면서 건너 다니던 길목에 법의 심판이 자리 잡았으니, 이제 아무도 그 판결을 무시하지 못했다. 무시하고 건넌다 해도 무단횡단이라고 칭하기 애매할 만큼 짧고 옅은 길이었기에, 누구의 시선을 따지지 않고 마음껏 넘나드는 이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회와의 약속에 적당한 사명감을 안고 규칙을 엄수하는 듯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동네의 풍경. 작은 규칙이 세워졌다는 것만으로, 어떤 이는 무거운 짐을 낑낑대면서도 신호 앞에선 자동으로 걸음을 멈추었고. 어린아이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줄곧 색이 바뀌기를 응시했다. 들어오는 자동차들 역시 경각심을 품은 바퀴를 끌고 조심스러운 행진을 내디뎠고, 우리들은 미세한 변화의 시대를 몸소 체감하게 되었다.
생소한 장면을 가깝게 바라보면서, 소중히 다뤄지려면 암묵적인 약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여지는 것, 소신의 의견을 펼치는 행동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어디에서나 나부랭이로 인식되는 삶들을 존중하게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지 못함이 겉치레부터 드러나는 사람을 무작정 응원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키기 위하여 우리 인생에 신호등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누군가 알아차릴 수 있고, 그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규칙이 있어야만 나도 그리고 남도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건너거나 흙탕물이 묻은 신발로 밟아대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만난 뒤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공허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날 거라고. 나만 노력하는 것 같고, 혼자 애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인간관계는 조금 아쉬워도 멀리하는 게 좋다며 상처받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내 안에 내재된 신호등을 읽어낼 줄 안다. 지금의 감정이 적색인지 녹색인지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있고, 알고 싶은 눈빛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달라지는 변화들을 눈치채며 보살핌을 나누려 한다. 반면에 심심풀이 정도로 나를 만나려는 사람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원래 섬세함이 부족한 성향이라는 변명을 꺼낸다면 동의하고 싶지 않다. 깊은 애정은 무한한 열정을 갖게 만든다. 어떤 누구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힘들도록 외면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서로의 귀한 시간과 진심을 공유하기에도 벅찬 시간에 나를 굴러다니는 땅콩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이를 깨닫게 될 때쯤 너무 많은 상처로 당신이 아파하지 않기를.
지인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나를 없애도 될 만큼 붙잡고 싶은 관계라고 해서, 정말로 나를 없애서는 안 된다. 한쪽이 퍼주기만 하는 사이는 높은 확률로 혼자 애쓰던 사람의 마음에 밑동이 드러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당연한 태도, 나를 쉽고 가볍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정신. 그럼에도 당신이 그를, 그들을 사랑하기에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대부분 그런 당신은, 지쳤다는 신호를 알고 있음에도 놓지 못한다. 마음이 끝나지 않아서, 후회하게 될까 봐. 혹은 전부 같아서. 그 사람의 의미가 나에게 걷잡을 수 없도록 커졌기에.
없으면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자꾸만 두려워지는 건 아닐까.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나는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른 곳에 곤두선 신경 탓에, 보내지는 신호가 옅고 가늘다 해도 분명 느껴진다. 끊어내야 할 때 끊어낼 줄 아는 용기가 우리 삶에는 꼭 필요하다. 나부터 나를 무시하지 않아야 남도 나를 우러러본다. 겸손하되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밝게 웃으면서도, 우스워지지는 않을. 나를 잘 모르는 이가 멸시의 눈초리를 보내면 잔뜩 주눅 들어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당당한 어깨를 내비쳐 보는 것. 그 안에 신념과 확신이 가득하다면, 밑도 끝도 없는 편견으로 달라지게 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신호등은 있다. 마음의 신호를 지키고 지키지 않는 행동들의 여부가, 결국은 나를 지키고 지키지 못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 유심히 챙겨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운이 좋지 않은 때에 무언의 앙심을 품고, 혹은 고의가 아닌 상태로 나를 들이박는다고 한들 스스로 굳건할 수 있다면. 비교적 유연하게 상황을 해결할 대비책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단횡단을 극도로 싫어한다. 누군가 적색에 건너도 엉겁결에 따라 건너지 않는다. 소소한 규칙들이 모여 큰 사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서, 웬만하면 약속을 어기지 않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이하고 싶으면서도, 가볍지는 않은 사람. 중요한 말을 나누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문득 그 사람 참 괜찮았지 하며 다시 찾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무언가 잃고 나면 눈을 뜨는 게 무서워서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는 일이 잦았다. 많은 숙제를 미뤄놓고 어디부터 해나가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줄곧 앉아만 있으면 변하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 고꾸라진다 해도 조금씩 걸으려 하다 보니, 요즘은 나도 잘 모르는 내 안의 색깔이 늘어나는 것 같다. 마음의 신호등을 지키는 연습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습관처럼 하고 싶어 진다. 언젠가는 희미하던 것들이 선명해지길 바라면서. 이번에 불이 바뀐다면 그 길을 꼭 건너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