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무기력을 아십니까

없다고 말하니, 진정으로 없어지는 것들.

by 블루나잇

어떤 이가 사는 집의 현관문 앞에 이름 모를 전단지들이 부대끼는 모습을 보고, 간혹 저 집은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구나 생각한다. 인간의 부재를 사물들이 헛헛하게 증명하는 동안에도, 미래가 바뀔 복잡한 일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애석하다. 먼지가 쌓였다는 건 방치가 계속됐다는 뜻일 것이고, 방치가 계속됐다는 건 마음과 마음이 멀어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영문도 알 수 없이 멀어진 마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주변이 덩달아 음침해진다. 매일 사람의 손을 타던 생물들에 더 이상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아서, 때때로 그들은 버려지게 된다. 정작 당사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여유가 없다. 세상과의 문을 단절한 시점부터, 슬픈 비련의 주인공으로 돌연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화창했던 모든 현상들이 그의 머릿결 혹은 감정의 이음새를 따라 서글픈 사유의 꽃을 떨어트린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항상 청소를 한다. 대청소처럼 원대한 힘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 아닌, 매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주변 정리를 하곤 했다. 그렇게 부지런한 그가, 유일하게 청소를 건너뛴 날이 있었다. 마음에 시커멓고 심란한 고민이 먹구름처럼 그득 들어차있는 날이었다. 그는 점점 덩치를 부풀리는 무기력에 속절없이 잠식되었고, 그 무기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대 잊지 않던 청소까지 내치게 만들었다. 늘 해오던 패턴을 하루 안 지킨다고 큰일이 생기겠냐마는, 하루가 이틀이 될지. 그가 얼마나 앓아누우며 스스로 힘들게 할지 알 수 없었기에 두려운 마음과 걱정이 내 모든 이목을 잡아끌었다.


다행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다시 본인의 루틴을 되찾아, 전날 하지 못했던 먼지들을 박박 닦아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번의 놓침으로 모든 게 뒤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의 놓침으로 모든 걸 잃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내 성향이 그런 극단적인 편에 속했다. 이런 성향의 특징은 무언가 시도할 때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고 불철주야 열심히 달린다. 그러다가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하면 풀썩 고꾸라진다. 누구보다 세차게 격정적으로 넘어진다. 유연하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빳빳했던 탓일까. 넘어진 이후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질릴 만큼 열성적이었던 초반의 스퍼트는 기억 못 할 과거가 되었고, 목적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으니.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할 만큼 했어. 이 정도면 됐지.


분명 사랑과 정열을 다했던 도전이었다. 때론 전부를 걸었다. 꿈은 크게 꿀수록 좋다는 말에, 원대한 방향을 잡아 죽을 만큼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무게 없는 말들에 위로를 받기도 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미련 없이 뒤돌아 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딘가 이상하게 서운하고 후회스러운 구석이 남아있다면, 내가 같은 실수를 비슷한 패턴의 시도를 되풀이하는 중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시작이 중도 포기로 그쳤던 이들에게, 내가 나를 대하는 마음으로 전하고 싶다. 중요한 건, 빠른 속도보다는 소량의 꾸준함일 거라고.


지킬 수 있을만한 알맞은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제법 중요하다. 의욕이 넘치는 날엔 활력이 가득해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지만, 대개 그렇지 않은 날이 자주 일어나며, 하필 몸과 정신이 비틀거려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에 목표를 크게 잃을 사건들이 벌어진다. 감정에 현혹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고개를 숙인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처참히 망했으니, 내일부터 다시. 막상 내일의 해가 떠오르면 지난날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허무함에 몸서리치면서도, 늘어진 의지는 좀처럼 일어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망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매일 할 수 있을 만큼 시도하자는 심지로, 홈트레이닝을 꾸준히 이어온 지 두어 달이 되었다. 나는 원체 누군가와 뒤섞여 공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시끌벅적한 어울림을 기피하는 탓에, 수박에 들러붙은 검은 씨를 본받아 집안에 콕 붙어 있었더니 금세 체중이 불어난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도망갈 만한 도피처로 급히 찾은 건 홈트레이닝 영상이었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세를 교정해 주지도 않지만, 혼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과정이 나에게는 꽤나 큰 이점으로 다가왔다.


운동 초반에 누구나 겪는다는 극심한 근육통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운동이었다. 아프다고 멈추지 말고 계속되는 자극을 주어야 근육이 풀린다기에, 고비를 몇 번 넘기며 나아갔더니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더 이상 몸이 욱신거리지 않았다. 엉금엉금 거북이 같은 자세로 이런저런 영상들을 살펴보던 중에, 마음의 결이 맞는 듯하여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던 어떤 운동 유튜버와 내적 친밀감을 쌓게 되었다. 그 유튜버는 영상이 끝난 뒤에, 잊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몇 마디의 이야기를 건넸다. 엊그제 따라 했던 동영상에서 그녀가 얹은 긍정의 언어가 종일 뇌리에 맴돌았다. 계속 앉아있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엔, 마음속으로 삼 초만 세어보세요. 그 삼 초를 세고 나면 반드시 몸을 일으키는 거예요. 할 수 있어요. 당장이라도 아스라질 것처럼 달달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붙들다가 지친 육신이 위로받는 느낌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일상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좋은 방법이다. 행동을 먼저 시도하면, 마음이 저절로 뒤따르는 걸까. 처음엔 순전히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무너진 마음들이 갈피를 잃을 때마다 잇따라 주저앉지 않고 싶어서 짧은 운동을 찾는다.


무기력은 결국 무기력으로부터 불어나는 것. 가만히 있을수록, 부서져 있을수록. 우리는 더 낮은 입자의 잔해로 늘러 붙으려는 속성을 가동한다. 게으름이나 나태라는 시초의 뿌리부터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내가 나를 의심하고 방해하고 깎아내리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 후에 주어지는 쉼이라는 행위 자체. 분명 삶이라는 비옥한 태양에 반드시 필요한 오아시스겠지만, 그 쉼이 익숙해져서 짐이 되어 버리고, 자라날 의욕마저 꺾는다면. 이제는 그만 쉬어야 될 때라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산책, 낮은 강도의 운동, 하루에 책 한 줄. 손수 만든 요리. 소소하고 소중한 변화들이 흩날리는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도록. 내 감정이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태양의 전사 같던 장렬한 무더위가 슬며시 물러가고,

며칠 매서운 기세로 내려온 빗줄기가 아스팔트를 적시더니

어느덧 창턱을 두드리는, 완연한 가을바람이 살랑거리는 중이다.

문득,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싶어 진다.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 무엇이 있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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