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피우는 곰팡이

약하고 허술한 것을 좋아하는 감정들에게.

by 블루나잇

눈물 젖은 시절을 추억으로 회상하는 것만큼 가슴 떨리는 일이 또 있을까. 지나간 과거를 웃으며 돌이킬 수 있다는 것. 지금과는 먼 이야기라는 반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 여의치 않은 형편에 가족들과 아등바등 굶지 않으려 애쓰던 날들이 하루도 죽지 않고 계속되었다. 끈질긴 목숨 같은 가난은 생명력이 아주 질겨서 조금의 틈도 내어주지 않은 채 야금야금 우리들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 시절, 곰팡이는 흔하고도 흔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사시사철 습기가 가득한 우리 집에는 어김없이 시커먼 놈들이 덕지덕지 붙어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이따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제 몸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피어나는 저 존재가 꽃이었으면. 일용할 양식이었으면. 부모님의 굽은 등을 펴게 해 줄 돈이었으면.


가끔은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말에 공감했다. 적당히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멀리 동떨어진 곳에 있어서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처음 듣는 것처럼 늘 생소하고 낯설었다. 이런 쓸데없는 상념과 감상들은 나이를 먹고 나서야 추측하게 된 지난날의 마음이다. 당시에 나는 마냥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고. 집이나 가족 같은 듬직한 단어보다는 자극적인 친구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 나이였을 것이다. 내 또래가 나의 전부이던 때. 왜 태어났는지 곱씹으며, 둥그렇고 불공평한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던 때.


나는 그때부터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면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곤 했다. 어린 회피의 일종일까.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집의 외곽이나 한숨 같은 혼곤한 미련들은 애써 모른 척 외면하기 일쑤였다. 힘겨운 들꽃의 생처럼 하루하루 버텨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가족이었고, 유일한 서로였다. 보통의 가난은 사람을 미워하게 만들었지만, 사랑하게 만들기도 했다. 없음으로 인해 있었던 애정과 연민을 찾아내게 했다. 콩 한쪽도, 빵 한 장도, 밥 한 톨도 나눠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매야지. 사랑하는 내 엄마, 내 아빠. 소중한 내 새끼. 되뇌면서.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던 날들.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눈가에 이슬처럼 아른거리며 처절한 존재감을 드러내던 숱한 밤과 새벽. 기댈 수 없어 뜨겁고 묵직했던 열대야 같은 인생.

항상 배가 고팠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먹은 것 같은데 돌아서면 허하고 마음속에 밥을 갉아먹는 조그마하고 독한 인형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서야 그 느낌이 허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이 품은 돈의 가치나 월세 같은 고민들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가족들의 눈물이라도 방안에 넘쳐나는 날에는 사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구나 깨달았다. 슬픔, 공허, 막막한 감정들 안에 잠식되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굴던 시간들은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모두 잊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 있었다.


그 시절 엄마와 나는 간식 겸 주식으로 식빵을 즐겨 먹었다. 조금의 여유가 있을 때는 근처의 베이커리를 갔고, 사정이 마땅치 않을 때는 마트에서 대량으로 파는 것을 구매해 야금야금 아껴 먹었다. 장마철이면 물이 새는 탓에 꺼내놓은 바가지 안으로 똑똑 떨어지는 불청객 같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집 안에는 빈번한 횟수와 빠른 속도로 습한 기운이 감돌았고, 어항 속에 빠져 허우적대며 비참한 물고기 시늉을 내는 우리들을 꿈속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매번 같은 식빵을 먹으니, 혀끝이 콤콤하게 밀가루 향으로 뒤덮이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큰맘 먹고, 알알이 옥수수가 박힌 식빵을 샀다. 옥수수식빵에 박힌 옥수수 알들은 우리에게 들러붙은 각박한 현실처럼, 빵의 단면에 콕 붙어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단호한 자태를 내뿜고 있었다. 빵을 베어 물때마다 입 안에서 톡톡 튀는 상쾌한 옥수수 식감에 마음이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독특하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 해외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가만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주 앉은 엄마의 웃는 입꼬리, 눈가 주름, 거칠어진 피부 같은 것들을 훑어보았다. 그에 비하면 식빵이 너무나 반짝이고 보들거렸다. 별거 아닌 빵보다도 더 고생하는 소중한 우리 엄마. 울음이 날 것 같아 목 끝을 뻑뻑한 빵조각으로 막아냈다. 스스로가 초라할 만큼 맛이 좋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우리들은 쉴 새 없이 턱을 움직이며 배를 채웠다. 슬픔을 덮고, 마음을 다독였다. 옥수수 몇 알 들어간 밀가루 식빵 한 조각으로. 삶을 때우고, 아픔을 잠재우는 동안. 남은 식빵들은 날이 갈수록 퍽퍽해졌다. 뼛가루 같은 부스러기들이 전쟁의 잔재처럼 굴러다녔다. 이윽고, 하얗던 단면이 시커먼 색에 잡아먹히던 날. 나는 소리쳤다. 엄마 식빵에 곰팡이가 피었어!


우리들은 기분 나쁘게 푸릇한 식빵을 들고 우는 듯 웃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몇 장 남지 않은 스페셜 요깃거리가 망가져서 그런지, 심장 한 켠을 기다란 바늘이 콕콕 찌르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며 다짐하던 날들이, 한 떨기 밀가루 덩어리에 무너질 것 같던 시절.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비슷하고도 어두운 마음들은 집안 곳곳을 누비고 낡아빠진 장판을 들쑤시며 정체 모를 대상을 두고 비웃어댔다. 그렇게 울적한 마음이 드는 날에도 인상 한번 찡그린 적 없던 나의 어머니. 끝없는 두려움까지도 노력으로 덮었던 나의 아버지.


어김없이 환한 미소로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던 미련할 만큼 선한 여자와. 같은 날 저녁, 예상치 못한 경사로 보너스를 받아 부푼 설렘을 안고 솜털 같은 걸음으로 곧장 집까지 달렸던 남자. 펼쳐진 저녁 외식에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운 찬탄을 황금 보자기처럼 둘러쓰고서 집안 곳곳을 행복으로 물들였던 어린아이. 젊고도 아렸던 그때의 우리는.


버티고 또 버텨나가던 순간 속에서. 우리의 얼굴에 피어있는 것은 더 이상 가난도, 곰팡이도 아니었다. 사랑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무렵, 희망이라는 미래는 가까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 주저앉지 않는다면, 다 내려놓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삶의 축축한 감정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끌려가지 않는 하루의 끝에는 반드시 더 나은 내일이 도사린다는 사실이, 지금의 무너지지 않는 우리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물 한 번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 아픔과 누군가의 아픔을 견줄 수 없는 것처럼. 소중한 시절은 언젠가 반드시 기쁨의 양분이 된다. 넘어갈 수 있다, 이겨낼 수 있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이 몸과 마음을 지배할 때에. 아주 작은 가시가 걸리적거려 괴로움에 몸서리치게 만들 때에. 생각한다. 곰팡이는 약하고 허술한 집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떤 존재에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단단한 마음을 먹기로. 조금은 의구심이 들어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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