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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13. 2023

진달래

가리워진 길

스스로 선택한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 하나의 목표를 두고 한 길을 외로이 걸어가는 여행자의 모습은 얼마나 고귀한가. 수많은 길들 중에 하나의 길을 오롯이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지 않는가.




이른 아침 졸음을 제쳐두고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해야 하기에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지친 자신을 이끌며 교통카드를 찍는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대의 하루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다시금 내일 또 이걸 해야 하냐고 투덜대지만, 퇴근이라는 기분 좋은 감정을 우선하며 그 순간에 진정 행복해하는 모습은 얼마나 황홀한가.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과의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내일이 주말임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고 여유로운 늦잠도 자며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아쉬워하지만, 또다시 이러한 기쁨들이 돌아옴을 알기에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당신은 얼마나 훌륭한가.



하루하루가 똑같은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닌 숨이 턱 막혀오는 매일의 반복은 너무나 잔인하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고 적힌 포스트잇의 종이는 어느덧 떨어질 듯 말 듯 아슬히 붙어져 있다. 후회와 낙심으로 가득 차버린 하루는 너무나 버겁다. 수없이 많은 표지판들은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도움들이 결국 선택의 머뭇거림을 초래한다. 무심코 걸어버린 길 위에서 여행자가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며 멈춰 서서 고민을 할 때 어느덧 조금 매서운 바람의 소리가 코끝에 스친다.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 길을 나섰던 여행자의 옷은 스스로 알지 못하였을 뿐, 이미 헤어진 지 오래이다. 수많은 길들과의 헤어짐을 곱씹으며 자신의 낡아버림을 마주한다. 그의 옷은 낙엽을 스스라이 지나치는 바람을 견디기엔 너무나 얇고 초라하다. 이대로라면 겨울을 나기엔 너무나 어려울 텐데, 맞이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도망쳤다. 정성을 다하며 가지를 쳐주고,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기 싫었기에 그렇게 무책임하게 회피했다. 오롯이 모든 계절을 견디며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표지판 중 하나가 가리키는 곳으로 도망쳤다. 꽤나 오랫동안 걸었기에,  곧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끝나가는 겨울의 그 순간이 너무도 힘겨워 나는 포기해 버렸다. 어느 곳이든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또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도망쳐 나온 곳에 낙원은 없었다. 그렇기에 또한 그 매일의 반복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로 도망칠 것을 이미 알았기에, 인정해 버렸다. 아니, 이미 너무 지쳐버렸다. 어릴 적 나에게 길을 안내했던 무수히 많던 표지판들은 어느덧 몇 개 남지 않게 되었다. 도망치더라도 이곳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결국은 모두 나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진달래가 있었다.




유채색이 만연한 봄, 이 길의 위에서 연분홍의 진달래를 보았었다. 버티다 못해 부러져 도망친 나에게 잠시나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진달래를 보았고 잠시나마 그 주변을 맴도는 벌의 날갯짓을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나에게 건네주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내가 어떠했든 시작점에 있던 진달래는 그곳에서 나를, 누군가를, 또 아직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달래처럼 나는 내가 원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무엇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바로 그 어느 곳도 아닌 지금 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덧 시간은 소복이 낙엽으로 물들어져 간다. 나에게 너무나 어려웠던 것들은 결코 쉬워지지는 않았지만, 조금 덜 어려운 것들이 되어갔다. 얼떨결에 시작한 이 길에서 나는 이전과 달리 정성을 다해 가지를 치고 낙엽을 쓸고 있다. 매일의 반복은 여전히 잔혹하다. 다만 이제는 매일을 견디지 못하면 이 길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그곳에 피어있던 진달래를 다시는 볼 수 없음도 알고 있다. 다른 길에도 진달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진달래는 내가 보았던 진달래가 아니니까, 그때의 그 진달래를 다시 보고 싶기에 잔인한 매일을 견디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던, 누군가에겐 너무도 당연한 것이 따스함을 건네주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여전히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몇 개 남지 않은 표지판들이 나에게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서있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너무도 많은 불확실함들이 여전히 나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래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확실함을 믿어보려고 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기에, 나는 이 길 위에 서있을 수 있, 그때의 봄을 잊지 못하기에 나는 겨울을 견뎌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의 연분홍의 진달래가 이 길의 어딘가에 있을 것을 믿기에,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겠지.



많은 계절이 바뀌고 결국 이 길의 끝까지 몇 걸음이 남지 않았을 때까지 너를 다시 만나지 못할 수 있겠지. 꽤나 극적으로 정말 길의 끝에서 너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언젠가라는 수많은 불확실한 경우의 수를 넘어 확실한 것은 나는 너를 분명히 다시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너와의 만남의 과정에서 내가 바라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기적이 이뤄지는 순간을 상상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지하철을 타고 퇴근의 순간에 행복해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겁게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것을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나를. 엉성하고 서툴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되어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는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이야기.




내가 가진 수많은 불확실함 들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기적이라는 불확실함이 하나 더해졌다고 오늘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대부분 불안과 걱정들로 차있고 그중에 기적이라는 것이 있지만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지 않는가. 아주 작은 조각이지만 분명히 기적이 있다는 것이 그거면 정말 충분한 것이 아닌가. 수많은 걱정과 불안들로 가득한 하루들을 버티다 보면 분명 기적이라는 조각이 나온다는 것이 확실하니까.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으로 바뀌는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언젠가 나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 그런 꿈같은 일이 이뤄지는 순간이 올 것을 확신하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 즈음이면 계절마다 다가왔던 분홍 벚꽃과 푸른 바다, 붉은 단풍, 하얀 첫눈이 너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아마 알 수 있겠지. 너는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음을, 지금처럼 그저 불확실한 생각이 아닌 그것을 진정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 그 기적 같은 순간을 기다리며 이 길에서 걷는 것을 멈추지 않을게.




https://youtu.be/aRl2hi1hx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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