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엇인가?
나치 독일은 1935년 9월 15일 의회에서 <뉘른베르크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독일은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유대인들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억압을 법적으로 공인했다. 이 법은 장차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독일에서 맹목적으로 상부의 명령, 법을 따른 대표적 인물은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비용을 지불한 변호사 쾰른의 로베르트 세르바티우스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이 질문에 대답했다. 이 대답은 피고인 자신에 의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피고 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 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 (……) [아이히만은] 자신이 한 일은 회고를 할 때에만 범죄일 뿐, 자기는 언제나 법률을 준수하는 시민이었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해 수행한 히틀러의 명령은 제3제국에서는 '법의 효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17.
아이히만은 그저 '법'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기에 무죄라고 볼 수 있을까? 법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옳은 행위이며 법을 따른 사람의 행위를 용서해 주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사업가였던 쉰들러(Oskar Schindler)는 뉘른베르크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사용해 수많은 유대인을 수용소행으로부터 구출했다. 쉰들러는 준법정신이라곤 전혀 없는 부도덕한 사람이라서 뉘른베르크 법을 위반하고 유대인을 구출했을까? 아이히만은 법을 충실히 따라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악인이 되었고 쉰들러는 법을 어겼지만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선인이 되었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양쪽 눈을 가리고 있다.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그녀는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 바로 법(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법이란 것은 우리가 사회를 만든 이후에 우리를 지켜주는 규칙이다. 만약 법이 없다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공정한 판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로크는 법이란 '공통의 재판관'이라고 말했다. 사회, 국가가 유지되려면 법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법을 따르는 것만을 중시하면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 『안티고네』를 읽어본 적 있는가? 안티고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이었던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왕이 되었고, 그 죄 때문에 테베에 질병이 창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왕위를 버리고 떠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자 남동생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번갈아가며 1년씩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기로 한다. 그런데 에테오클레스가 권력의 맛을 보고, 1년이 지나도 폴리네이케스에게 왕위를 넘겨주지 않게 되고 화가 난 폴리네이케스는 외국으로 망명한 후 그 나라의 군대를 빌어 조국 테베를 공격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두 형제가 모두 죽고, 왕위는 그들의 삼촌이었던 크레온에게 돌아간다. 크레온은 외국의 군대를 빌어 나라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들판에 버리고 그 누구도 장례를 치르지 않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이었던 안티고네는 크레온 몰래 시신에 접근해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병사들에 의해 체포된다.
안티고네: 시신을 들어 올리도록 네가 내 이 손을 도와주지 않겠니?
이스메네: 도시에 금령이 내려졌는데도 그분을 묻어주려는 거예요?
안티고네: 그분은 내 오라버니고, 네가 원치 않더라도 네 오라버니야. 내가 그분을 배신했다는 말은 아무도 할 수 없게 할 거야.
이스메네: 크레온님이 금하셨는데도 고집을 부리겠다고요?
안티고네: 나를 내 가족에게서 떼어놓을 권리가 그분에게는 없어.
(……)
크레온: 이번에는 거기 고개 숙이고 있는 너에게 묻겠다. 네 소행이라고 시인하느냐, 아니면 부인하느냐?
안티고네: 내 소행이라고 시인해요. 부인하지 않겠어요.
크레온: (파수꾼에게) 너는 무거운 혐의를 벗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어디든지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하라! (안티고네에게) 너는 긴말 말고 짤막하게 말해보아라. 너는 그러지 말라는 포고령이 내려졌음을 알고 있었느냐?
안티고네: 알고 있었어요. 공지 사항인데 어찌 모를 리 있겠어요?
크레온: 그런데도 너는 감히 포고령을 어겼단 말이더냐?
안티고네: 내게 그런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시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지 않았으니까요.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 불문율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게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 그 불문율들을 어김으로써 신들 앞에서 벌 받고 싶지 않았어요.
-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안티고네』, 도서출판 숲, 2017.
이 글에서 크레온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들판에 버리고 누구도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한 것은 '인간이 만든 법'을 상징하고, 안티고네가 말하는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은 인간의 법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의 법을 의미한다. 또한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은 정당하지 못한 법에 대한 불복종이며,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처벌을 받아 동굴에 수감되는데, 이것은 시민불복종에서 처벌을 감수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안티고네의 결말은 주요 등장인물의 대다수가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부당한 법이 끝까지 관철되는 경직된 사회는 모두가 죽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은유가 아닐까?
만약 여러분에게 인간이 만든 부당한 법이, 불의한 행위를 강제로 명령한다면, 여러분은 그 법을 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법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연법이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도덕적 진리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법은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으며, 상위의 법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즉 인간이 만든 법보다 자연의 법이 우선한다.
스토아학파(Stoicism)는 이 세상 전체를 다스리는 세계이성(Losog)으로서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신은 자연을 의미한다. (신=자연=이성)스토아학파는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 두었다는 운명론을 믿었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내면적인 태도를 바꾸는 일뿐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 여러분은 도로를 걷다가 갑자기 빠르게 달려가는 차 때문에 흙탕물이 튀어 온몸이 젖을 수 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 순간 온몸이 젖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운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결정에 달린 문제다. 흙탕물이 몸에 튀어서 화를 내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이며,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에게 내면의 생각, 태도, 의지의 영역에서만큼은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아무리 애써봐야 벌어질 일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이 가진 이성(Logos)으로 필연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적으로는 화를 내지 않고 (물론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등의 감정도 최대한 참아야 한다) 그 상황을 덤덤하게 넘기는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자연에 따르는 삶'이라고 보았다.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모든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법 아래에 있으며 한 국가의 시민이라고 보았다. 이를 <사해동포주의> 혹은 <세계시민주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 논리를 따르면 개별 국가의 법은 보편적 법(자연, 이성)에 근거해야 한다. 이성이 명령하는 것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자연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갈등에서 잘못된 쪽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막으려고 든 크레온의 '실정법'일 것이고, 안티고네에게는 죄가 없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실정법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은 공자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공자가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구절은 아니지만, 공자는 『논어』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몸가짐이 바른 자가 있으니,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기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지만 정직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 김원중 옮김, 『논어』, 휴머니스트, 2019.
위 글에서 공자는 잘못한 이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가족 간의 사랑[仁]을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법을 우선시하는 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 부모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양심)을 속인 것이기에 정직하지 못한 행위라는 것이다. 안티고네 역시 오빠를 매장해주고자 하는 자신의 양심, 도덕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크레온이 공포한 실정법을 따랐다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일화도 양심과 도덕의 목소리, 자연법이야말로 실정법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연법은 이상적이지만, 문제가 있다. 자연법은 문자로 쓰이거나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법이라는 것이다. 자연법을 지지하는 사상가들은 '보편적인 자연법'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자연법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연법, 양심이나 도덕을 다르게 생각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 종교의 갈등을 생각해 보라. 각자 믿는 신과 교리가 다르니 도덕에 대한 판단, 양심의 목소리도 다를 수 있다.
또한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결정한 신인 '세계이성'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인간 단원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세상은 누군가의 의지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우연적으로 굴러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주장은 무신론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거기다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자연법을 따르며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은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법질서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애매모호한 자연법에 호소하기보다는 명확하게 명시된 법을 따르는 편이 안전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법실증주의자'들은 자연법 이론에 비판적이다. 법이란 자연법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왕(주권자)의 '명령'같은 것 말이다.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이 백성들에게 폴레네이케스의 시신에 손대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자, 모든 백성들은 크레온의 명령을 받들어야 할 의무로 지게 되었다. 안티고네가 따른 <자연법>은 누가 법을 만들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반면에 크레온이 내린 명령은 크레온이 만들어낸 왕의 명령으로서 <실정법>이 되어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그래서 벤담(Jeremy Bentham)이나 오스틴(John Austin) 같은 초기 법실증주의자들은 법의 근원은 '군주의 명령'이라고 보았다.
"악법도 법이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한 번도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말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1930년대에 출판한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라고 쓴 내용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실정법을 존중하여 사형선고를 받아들였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런데 왜 그는 실정법을 존중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플라톤이 쓴『크리톤』을 살펴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고소를 당했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고소당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테네에서 정한 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이 질문 때문에 당시 아테네의 유명한 지식인들은 큰 창피를 당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면 지식인들은 사실 무지하다는 것이 탄로 났고, 이를 지켜본 젊은이들이 지식인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였고,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했는데, 이 당당한 태도가 배심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그는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투옥되어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친구인 크리톤이 찾아오는 것이 『크리톤』이라는 책의 시작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한다. 그는 간수에게 뇌물로 돈을 조금 주면 소크라테스의 감방 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탈옥을 눈감아줄 것이니, 감옥을 벗어나 다른 국가로 망명을 가자고 제안한다. 크리톤은 만약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크리톤)이 부자임에도 돈을 더 우선시하여 친구를 구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며, 자식과 아내를 생각해서도 먼저 죽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설득한다. 이런 친구를 두었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뿌듯해하며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법도 한데,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권유를 단칼에 거절한다. 대신 자신은 탈옥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함께 탈옥해야 하는 이유를 토론해 보자고 제안한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그다음 것을 말하겠네. 아니, 그보다 자네에게 한 가지 묻겠네.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정당한 것을 약속했을 때 그것을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약속을 어겨도 좋은가?
크리톤: 이행해야 하네.
소크라테스: 거기에 입각해서 고찰해보게. 우리가 나라의 허가도 받지 않고 이곳을 떠날 경우, 결코 해를 입혀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인가?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정당한 것을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크리톤: 소크라테스, 나는 자네가 묻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대답할 수가 없구먼.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게. 우리가 이곳에서 도주할-우리의 행위를 뭐라고 불러도 좋네-채비를 하고 있을 때, 법률과 국가 공동체가 다가와 우리를 막아서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가정해보세. “소크라테스, 말해보게 그대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런 일을 기도함으로써 그대는 있는 힘을 다해 우리 둘을, 즉 법률과 나라 전체를 파괴할 작정인가? 아니면 그대는 나라의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이 아무 효력도 갖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훼손된다면,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크리톤, 우리는 이런 질문이나 그와 같은 다른 질문들에 뭐라 답할 것인가? 일단 법정에서 선고된 판결이 구속력을 갖기를 요구하는 법률이 파기되는 것에 항의하여 어떤 사람들은, 특히 연설가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걸세. 아니면 우리는 그들에게 “그렇소.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가가 우리에게 불의를 저질렀기 때문이오.”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게 말할 것인가, 아니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크리톤』
소크라테스는 탈옥하려는 자신에게 법률이 다가와 말을 거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법률은 탈옥하려는 소크라테스에게 "법률과 나라 전체를 파괴할 작정이냐?"라고 묻는다. 한 개인의 탈옥은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다. 사람들 한명 한 명이 법의 판결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법은 아무 의미 없어질 것이다. 심지어 법률과 국가는 소크라테스에게 불의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법률이 정당하며, 그 법률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조금 길지만 아래 내용을 읽어보도록 하자.
소크라테스: 법률이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뭐라 대답할 것인가? “소크라테스, 그것도 우리 사이의 합의사항인가, 아니면 국가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그대는 거기에 따르기로 합의했는가?” 우리가 법률을 하는 말을 듣고 놀라면 법률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걸세. “소크라테스, 그대는 내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말고 대답해 보게. 그대는 묻고 대답하는 일에 익숙하니까. 자 그대는 도대체 나라와 법률에 무슨 불만이 있기에 우리 둘을 파괴하려 하는가? 우선 첫째로, 그대를 낳아준 것은 우리가 아니었던가? 또한 우리를 통해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그대를 낳지 않았던가? 말해보게, 그대는 우리 법률 가운데 결혼에 관한 법률에 불만이 있는가?” 나는 “불만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네. “아니면 아이들의 양육과 그대도 수혜자였던 교육에 관한 법률에 불만이 있는가? 우리 법률 가운데 그런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은 그대에게 시가와 체육을 교육시키도록 그대 아버지에게 지시했거늘, 그런 지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인가?” “좋지 않기는요.” 하고 나는 말할 것이네. “좋았어 그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교육받았는데도 그대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그대도 우리의 자녀이며 노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사실이 그러한데, 그대는 그대의 권리와 우리의 권리가 대등하여,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하든 그대가 앙갚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에게는 그대 아버지와, 그대에게 주인이 있다면 그대 주인과 대등한 권리가 없다네. 그래서 그들이 그대에게 무슨 짓을 하건 그대는 앙갚음할 수 없는 거야. … 그대는 조국을 설득하거나 조국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야 하며, 조국이 내리는 벌은 태형이든 투옥이든 묵묵히 참고 견뎌야 하네. 그리고 조국이 그대를 전쟁터로 인도하여 그대가 부상당하거나 전사하더라도 그대는 거기에 응해야 하네. 그러는 것이 옳은 일이네.”
소크라테스: 법률은 아마 이렇게 말을 이을 걸세.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생각해 보게. 만약 우리가 말하는 것이 참이라면, 그대는 지금 우리에게 옳지 못한 짓을 꾀하는 것이네. 우리는 그대가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게 해 주었고, 우리가 줄 수 있는 온갖 혜택을 그대와 다른 모든 시민에게 나눠주었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아테네인에게 자결권을 보장함으로써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된 뒤 국정운영과 우리 법률을 보고 나서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산을 챙겨 갖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떠나도 좋다고 선포하고 있네. 만약 그대들 가운데 누가 우리와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 식민지 중 한 곳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어떤 곳으로 가서 거류민으로 살기 원한다면, 우리 법률 가운데 어느 것도 그가 재산을 몽땅 챙겨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다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삼중으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첫째, 그는 자기를 낳아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그는 자기를 길러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네. 셋째, 그는 우리에게 복종하겠다고 합의해 놓고도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우리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말일세. … 소크라테스, 단언컨대 그대는 지금 계획하고 있는 바를 실행에 옮기면 그런 비난들을 면치 못할 것이네. … 더군다나 그대는 재판받을 때도 그대가 원했다면 추방형을 제의할 수도 있었네. 그랬더라면 지금 그대가 나라의 의사에 반하여 행하려고 하는 것을 그때 나라의 승인을 받아 행할 수 있었을 것이네. 하지만 그때 그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계속 호언장담하며 그대 말대로 추방형보다는 사형을 택했네. 그런데 지금 그대는 그때 한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법률인 우리를 무시하고 우리를 파괴하려 드는구려. 그대는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법률을 준수하기로 합의해 놓고 계약조건과 합의사항을 어기고 도주하려 하는데, 그것은 가장 천한 노예나 할 법한 짓이라네. 그대는 먼저 다음 질문에 대답해 주게. 그대는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법률인 우리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따르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우리가 주장한다면 우리가 하는 말이 진실인가, 진실이 아닌가?”
소크라테스: 그러면 법률이 이렇게 말하겠지. “그렇다면 그대는 강요당하거나 기만당하거나 단기간에 결정하도록 독촉받지도 않고서 우리와 체결한 계약조건과 합의사항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대는 70년 동안 우리가 그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우리 사이의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었네. … 생각해 보게, 그대가 그런 합의사항들을 어기고 그런 과오들을 저지른다면 그것이 그대 자신과 그대 친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지. 그대 친구들은 십중팔구 추방당해 시민권을 상실하고 재산을 몰수당할 위험에 처할 것이야. … 또한 그대는 배심원들에게 자기들이 그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네. 법률을 어기는 자는 누구나 젊은이들과 지각없는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자로 간주되기 십상이니까. … 그런다고 해서 그대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소크라테스: 사랑하는 친구 크리톤이여, 잘 알아두게. 나에게는 법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만 같네. … 그렇게 말하는 법률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서 나는 그 밖의 다른 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네. 자네는 알아두게. 지금 내 생각이 그러하니 자네가 이의를 제기해도 소용없네. 그렇지만 자네가 말을 해서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해보게!
크리톤: 나는 할 말이 없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만두게나, 크리톤. 그리고 법률이 권하는 대로 하세. 신께서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하시니까.
-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크리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법을 어기는 행위는 삼중으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라 말한다.
1. 자기를 낳아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2. 자기를 길러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3. (국가와 법률에) 복종하겠다고 합의해 놓고도 복종하지도 않고 (국가와 법률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국가와 법률에게)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 여러분도 이해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하고자 했던 말은 이제까지 법의 혜택을 받으며 불만 없이 살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을 선택적으로 위반하는 행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에서 우리는 법 준수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실정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실정법에 불만이 있다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기 전에도 그 법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는 플라톤의 철학 서적 『국가』에 등장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두 젊은이가 정의란 무엇인가 토론하는 과정에 끼어들어 소크라테스를 비웃으며, 자신이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소크라테스: 트라시마코스, 내가 남한테 배운다는 말은 참말이지만, 내가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말은 거짓이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보답을 하기 때문일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칭찬뿐이네. 나는 돈이 없으니까. 좋은 말을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를 얼마나 기꺼이 칭찬하는지 자네가 대답하는 순간 당장 알게 될 걸세. 나는 자네가 훌륭한 대답을 할 것이라 확신하기에 하는 말일세.
트라시마코스: 그럼 들어보시오. 나는 정의가 강자에게 유익한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오. 왜 그대는 칭찬해주지 않지요? 칭찬해주고 싶지 않은 것이로군요.
소크라테스: 먼저 자네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내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지금은 그걸 모르겠기에 하는 말일세.
트라시마코스: 각 도시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지배 계층이겠지요?
소크라테스: 물론이지
트라시마코스: 그러나 민주정체는 민주적인 법을, 참주정체는 참주적인 법을 제정하는 등 모든 정권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제정해요. 이렇게 법을 제정할 때, 지배자는 피지배자에게 정당하다고 선언하고는, 거기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있으면 범법자나 불의(부정의)를 행한 자로 처벌하지요. 그러니까 소크라테스 선생. 이것이 바로 정의는 모든 도시에서 같은 것이며, 그것은 바로 수립된 정권에 유익한 것이라고 말할 때 내가 뜻하는 바요. 그리고 힘을 행사하는 것은 정권인 만큼, 올바로 추론하는 사람에게 정의는 어디서나 똑같은 것으로, 즉 강자에게 유익한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오.
-------------------
트라시마코스: 정의란 것은 실은 남에게 좋은 것, 즉 더 강한 자 및 통치자의 편익이되, 복종하며 섬기는 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인 반면에, 부정 의한 것은 그 반대의 것이어서, 참으로 순진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조종하거니와,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저 강한 자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행하여, 그를 섬기며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결코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 한다는 사실을 말씀입니다. 하니 지극히도 순진하신 소크라테스 선생이시여,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즉 정의로운 이는 정의롭지 못한 자보다 어떤 경우에나 '덜 가진다'라고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부정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막상 그걸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부정 의한 것을 행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피해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니까요. 소크라테스 선생, 이처럼 부정의가 큰 규모로 저질러지는 경우에는, 그것은 정의보다도 더 강하고, 자유로우며 전횡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듯,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지만, 부정의는 자신을 위한 이득이며 편익입니다.
트라시마코스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의는 남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겐 해가 되는 것)
2. 부정의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다 (남에겐 해가 되는 것)
트라시마코스에 따르면 피지배자가 통치자에게 복종하여 통치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 정의이고, 통치자가 부정의를 행하여 자기 이득만 을 갖게 되는 것이 부정의 이다. 소소한 부정의를 행할 능력밖에 없는 자는 잘못하면 발각되어 처벌받고 비난받지만, 그런 처벌과 비난까지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절대 권력자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행복한 자로 불린다. 약자들이 불의를 비난하는 것은 실은 불의 자체를 꺼려서가 아니라 그로 인한 피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처벌의 두려움이 없다면, 부정의를 행하려 할 것이다. 법은 강자의 이익을 명시해 둔 카탈로그일 뿐이다. 누구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법 따위 지키지 않고 싶을 것이다.
서울 대법원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가리고 있지 않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어떤 사람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사람을 봐가면서 법률을 적용하겠다는 뜻이 아니냐고 비꼬며 법조계를 비판한다. 또한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어)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기는커녕, 법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용하는 '법 기술자'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정당할까? 디케 여신의 조각상의 모습은 다양하다. 눈을 가리지 않은 디케의 조각상도 적지 않기에, 대법원의 조각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디케 조각상 자체가 아니라, 법을 강자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강자에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약자만 엄벌하는 법조계 자체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법만능주의>로 빠질 위험이 크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법은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잘못 만들어진 <악법>은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법의 지배는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때로는 법에 저항해야 할 수도 있다.
부정 의한 법에 저항하는 행위를 <시민불복종>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미국의 사상가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소로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법에 불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마땅히 지켜야 할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의무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든지 행하는 일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대웅 외 옮김, 『시민불복종』, 아름다운 날, 2020.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우선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을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게 되면 전쟁터로 나가는 군대처럼 제 몸을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서 국가에 바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서두에서 살펴보았던 아이히만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소로는 이러한 사람들은 "좀처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럴 의도가 아닌데도 악마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꼬집는다. 법에 맹목적인 사람은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기계처럼 악마를 따르게 된다.
소로는 국민들의 세금이 노예제도 유지에 이용된다는 이유 때문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거부하여 감옥에 갔었다. 그는 "부당하게 사람을 잡아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으로 있을 곳은 감옥뿐이다"라고 말했다. 부정 의한 법과 제도를 유지하며 사람들을 억압하는 국가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 자체가 부정 의한 법과 제도를 온몸으로 긍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상황에서 방관자를 생각해 보면 된다.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을 수행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묵인하여 학교 폭력이 발생하도록 내내버려 두는 셈이다. 진정으로 법과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면, 부당한 법 아래에서 저항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만은 잘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명만이라도, 아니 백 명만이라도,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명만이라도, 단 열 명의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노예를 소유하지 않고 실지로 그 공범자들 집단에서 탈퇴한다면, 그 때문에 지방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될 것이다. 시작이 아무리 미미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듯 거기에 대해 말만 하기를 더 좋아한다. 개혁은 수십 종의 신문을 붙잡고 일거리를 주지만 단 한 사람도 붙잡지 못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대웅 외 옮김, 『시민불복종』, 아름다운 날, 2020.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법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은 중성적인 힘이다. 인간의 활용에 따라 선용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
[과제]
1. 당신이 재판관이라면, 안티고네에게 유죄와 무죄 중 무엇을 선고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법에 불복종한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법 중 부정 의한 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참고문헌]
1. 변종필 지음, 『법철학강의』. 박영사, 2022.
2.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틸리 서양철학사』, 현대지성, 2020.
3. 에픽테토스 지음, 김재홍 옮김, 『강의』, 그린비, 2023.
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김재홍 옮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그린비, 2023.
5.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17.
6.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안티고네』, 도서출판 숲, 2017.
7. 김원중 옮김, 『논어』, 휴머니스트, 2019.
https://www.scourt.go.kr/portal/gongbo/PeoplePopupView.work?gubun=33&seqNum=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