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인간 더 읽어보기

유학의 인간다움

by 한가한 늑대

우리는 1장에서 이성이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지어 주는 특징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성만 가지고 있다고 어떤 존재를 '인간답다'라고 말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예를 들어 아주 영리한 지능을 이용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상상해 보라. 그는 이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자신의 사악한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인간답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를 "짐승 같은 놈!"이라고 비하한다. 그렇다면 이성 말고도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더 있다는 것 아닐까?


인간다움[仁]

고대 동양의 철학 사상 유학(儒學, confucianism)은 <도덕성>을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근본적인 특징으로 설명하였다. 오늘날 전해지는 유학은 공자(孔子)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직접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나는 전하여 기술하였고 새로 지어내지 않았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述而不作, 信而好古]"고 밝혔다. 대신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나누었던 어록(語錄)을 편찬해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전해지는『논어』다. 논어에서 공자가 특히 강조하는 개념은 인(仁)이다. 대표적으로 인을 설명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에게는 인이 드물다." 1.3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예(의)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음)악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3.3
"인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뒤로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6.20
"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켜주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예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28
"자기[사사로운 욕심]를 이겨내고 예(의)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예(의)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하는 방법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12.1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12.2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12.22

- 김원중 옮김, 『논어』, 휴마니타스, 2019.

보다시피 공자가 말하는 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이란 '인간다움'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을 실천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동물들은 사사로운 욕심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공부[學]를 통해 자신의 욕심을 억제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우선하는 배려를 통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공자를 계승한 맹자(孟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금수(동물)와 다른 점은 거의 없는데, 뭇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으며 인륜을 잘 살폈으니, 인(仁)과 의(義)를 따라 행동하신 것이고, 인과 의를 [억지로] 실행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 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맹자』, 휴마니타스, 2019.

위의 글에서 맹자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다른 점이 별로 없다고 말한 것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동물적인 본성이란 식욕, 성욕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사사로운 욕심은 인간과 동물이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사사로운 욕심을 절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仁)과 의(義)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이 이러한 도덕적인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잃어버리기 쉽다. 방심(放心)이란 말도 여기서 기원한다. 방심이란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한눈을 판다거나, 멍하니 있다간 사소한 일이라도 실수하기 쉬운 것은 방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과 의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방심하였을 뿐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잃어버리고 따라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다시 되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구나!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즉시 그것을 찾으려 하는데,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되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없으니 그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 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맹자』, 휴마니타스, 2019. 쪽수 찾아야 함

선한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방 안에서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어떤 물건이 다른 물건에 덮여 가려져 있거나, 가구 아래 틈으로 들어가면, 분명 그 물건은 방 안에 있지만 보거나 찾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의 선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가려져있다. 그러니까 선해지고 싶다면, 내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되찾기만 하면 된다. 맹자는 인간이 선한 마음을 되찾는 방법에는 욕심을 줄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비도덕적 행위, 짐승 같다고 욕을 듣는 행위의 원인은 대다수 사사로운 욕심에 따라 나를 우선시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사사로운 욕심이 내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니 여러분도 욕심을 줄이려고 노력하면 금방 선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똑같지만..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 주자(朱子)는 동물도 인간과 똑같은 도덕적인 본성(인과 의)을 타고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자가 보기에 그들은 동물로 태어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면에 지니고 있는 도덕적 본성을 인간처럼 완벽하게 발휘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주자의 제자가 물었다) 호랑이와 이리에게는 부자 관계가 있고, 벌과 개미에게는 군신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며, 물수리들에게는 암수의 구별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비록 한쪽으로 치우치게 얻었지만 철두철미하게 올바른 의리를 얻은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이런 천명의 완전한 본체를 갖추었으나, 물욕과 품부 받은 기(氣) 때문에 어두워져서 도리어 동물들이 한쪽에만 통하나 그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처럼 할 수 없으니 왜 그렇습니까?” (주자가 대답하였다) 동물은 단지 그 한 곳에만 능통하여 거기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사람은 일마다 조금씩 알기는 하지만 깊지 못하다. 그래서 쉽게 어두워진다.
- 이주행 외 번역, 『주자어류』, 소나무, 2001. 권4:19

그것은 어떤 문제점인가? 이를 알기 위해 주자가 설명하는 이 세계의 구조를 살펴보아야 한다.


주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리(理, 이치)기(氣, 기운)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나도 여러분도, 동물도, 그리고 여러분 눈앞에 있는 모든 물건도 리와 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주자가 말하는 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물(萬物) 안에 들어가 있는 본성[性]이자 법칙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를 말한다. 주자가 보기에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은 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비유하자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지만, 호수에, 강에, 바다의 수면에 비친 달은 모두 똑같은 달이다. 이 점에서 동물과 인간에게는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하는가? 바로 기다. 인간만이 도덕성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맑고 깨끗한 기를 부여받았으며, 동물은 탁하고 흐린 기를 부여받았다. 컵 두 잔에 똑같은 진주가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 진주는 리를 상징한다. 그런데 한 컵에는 생수를 부었고, 다른 한 컵에는 콜라를 부었다. 액체는 기를 상징한다. 이제 두 컵을 비교해 보자. 생수를 부은 컵 안의 진주는 잘 보이지만, 콜라를 부은 컵 안의 진주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콜라의 검은색 때문에 진주는 볼 수 없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에게 리(진주)는 똑같이 부여되어 있지만, 기(진주가 담겨 있는 액체)가 다르다.


“본성은 햇빛과 같다. 사람과 사물이 받는 게 다른 것은, 조그마한 틈과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많고 적음과 같다. 사람과 사물은 형질이 제한을 받아, 역시 넓게 통하게 하기가 어렵다. 땅강아지와 개미의 경우는 (조그마한 틈과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렇게 적기 때문에, 단지 군신의 구분만 알 뿐이다.”

- 이주행 외 번역, 『주자어류』, 소나무, 2001. 권4:12
벌은 충성스럽다. 하지만 그 이외의 도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맑은 기를 부여받았다고 했으니, 앞선 비유처럼 생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맑기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생수 안에 모래가 섞여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모래가 많이 섞여 있고, 어떤 사람은 모래가 적게 섞여 있다. 이 모래가 소용돌이치면 흙탕물이 돼서 진주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모래를 빼내거나 바닥으로 가라앉히면 그 속에 진주가 보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기는 콜라가 아니라 생수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면 도덕을 완전하게 실천할 수 있다. 비록 인간은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누구나 노력하고 공부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벌과 개미는 충성밖에 모르지만, 인간은 이 맑은 기질 덕분에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어떤 도덕을 실천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에 필요한 도덕, 친구 사이에 필요한 도덕, 나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 필요한 도덕도 모두 알 수 있다. 우리는 여타의 동물과 다르게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구와 우정을 쌓으며, 선생님을 공경할 수 있다. 이처럼 주자의 입장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도덕성’에 있다.


인간만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

조선의 철학자 정약용은 주자의 본성론에 반대했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다르다. 정약용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특징은 도덕이라는 본다는 점에서 주자와 동일하다. 하지만 정약용은 주자와 다르게 인간이 인(仁)과 의(義) 같은 도덕[德] 자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마음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영지의 기호(嗜好)와 ‘육체에서 비롯하는 욕망을 좋아하는’의 형구의 기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육체적 욕망을 가진다는 점에서 형구의 기호는 동일하다. 그러나 선을 추구하고 싶어 하며 악을 싫어하는 영지의 기호는 오직 인간밖에 없다. 영지의 기호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神)인 상제[天]가 우리 인간에게만 특별히 부여한 것이며, 명령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명령인 영지의 기호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악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양보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형구의 기호를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선이나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주지권(自主之權)'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상제가 여러분에게 부여한 것이다.


선행과 악행은 모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기에 그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 반면에 동물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선과 악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도덕의 문제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호랑이를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항상 내레이션은 항상 “자연의 법칙”이라면서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던가. 살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는 동물. 그들에겐 형구의 기호만이 존재하며, 선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형구의 기호뿐만 아니라 도덕적 욕망인 영지의 기호가 존재하며, 선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러니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약용 역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도덕의 실천에 두고 있다.


“재주란 능력과 권한이다. 기린은 선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 선한 것이 공이 되지 않는다. 이리나 승냥이는 악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 악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재주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인간의 능력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데에 있고, 인간의 권한은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선하면 칭찬받으며 악하면 비난받는다.”

- 정약용 지음 『여유당전서』, 한국사상연구소,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739.p 재인용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하늘로부터 도덕을 실천하라는 명령[天命]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도덕을 실천하며 하늘(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늘과 다른 만물의 중간에 위치한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먼저 자기 자신의 도덕성을 갈고닦은 [修己] 후에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安人] 다스려야 [治人] 한다고 보았다. 자신의 도덕성을 갈고닦으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랑인 인(仁)을 실천하게 된다. 이것이 하늘의 명령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 속에서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만물이 잘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조력자라고 볼 수 있다.


유학자들이 보기에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이다. 동물들은 처음부터 도덕을 실천할 수가 없게 태어났지만, 인간은 도덕을 실천할 수 있으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니 이것은 매우 심각한 죄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도덕성을 무시하고 돈만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영리하고 수완이 좋아 돈을 많이 벌었어도 도덕성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답지 않은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은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도덕성이 없는 것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해 주는 도덕성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야만스러운 경쟁의 장으로 전락해 결국 사회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


유학은 인간을 자연 안에서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독특한 존재로 인정하지만, 다른 존재를 지배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도덕적인 의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유학을 '꼰대'라거나 '보수적인 사상'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유학의 본래 의미를 공부하고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이 직접 논어와 맹자 같은 경전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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