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이나 지난 거 같다.
학창 시절에는 늘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선생님들, 실내화 하나 던져줘도 잘 놀았던 우리들 내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통풍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뛰어다녔다.
내가 통풍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금요일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이 마지막 수업으로 담임선생님이 체육선생님이었던 우리 반은 체육수업을 마치자마자 종례를 하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인 체육 시간은 늘 자유시간을 주신 선생님 덕분에 친구들과 농구를 했었고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학원으로 떠날 때 나는 남은 친구들과 계속 농구를 했었다.
그때는 지치는 줄 모르고 아픈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다. 학교가 경사진 곳에 있었고 눈앞에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보고 빨간불로 바뀔세라 내리막길을 전력질주 했다. 그 와중에 무단횡단은 하기 싫었나 보다.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으로 가는 중에 왼쪽 발이 욱신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뛰는 도중에 발을 접질렸나? 아니면 농구를 하는 내내 너무 무리해서일까? 발이 아픈 이런저런 원인들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도 부어오른 것도 없는 왼발에 물파스를 바르며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내 자가치유능력을 믿고선 하루를 지냈다.
그날 밤 왼쪽발이 심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그때부터 이게 단순하게 발을 접질리고 농구를 많이 해서가 아니란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한밤중에 부모님을 깨워 병원을 가 고요한 밤 소란을 피우기 싫었던 나는 꾹 참고 다시 잠에 들기 위해 애썼다(효자 나셨다 미련하게도..) 그렇게 통증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부모님과 차를 타고 병원에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고 접수를 하면서 내 증상을 간단히 말하고 정형외과로 안내받았다. 두 발로는 못 걷겠어서 휠체어로 이동했다. 들어가자마자 선생님께 왼발 전체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이게 내가 느낀 통풍이 어느 정도로 아프냐는 물음에 답이기도 하다. 그러고 갖가지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혈액검사에서 원인을 찾으셨다."요산 수치가 높네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요산수치가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선 통풍을 진단 내리셨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통풍인 것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고전소설이 떠올랐다. 중풍에 걸린 부모님을 보살피는 착한 아들 딸들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아들 딸이 보살펴야 할 부모님이 내가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멘붕이 오는데 그런 생각이 사라질 때쯤 나는 수액실에 누워 진통제와 소염제를 맞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서는 선생님께 나을 수 있냐고 물으셨고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없고 그나마 완치는 아니지만 통풍수술이 있는데 지금 이 나이에 하기에는 몸에 지는 부담이 더 클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약을 받으러 약국으로 향했다. 그나마 진통제와 소염제를 맞고 나서 부어올라 아픈 발이 조금 가라앉아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모습을 부모님은 많이 안쓰러워하셨다.
이게 내가 통풍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던 처음이었다. 지금도 당연히 아프고 있지만 그래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약도 아침, 저녁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오히려 통풍이 있는 걸 알고 나서 내 몸에 관심을 가지고 건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선 글을 쓰는 지금도 드는 생각은 운동 가기 싫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