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꿈_18

베트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by 이종섭

제4부. 베트남 타운


29. 남편을 찾아 나선 위장결혼


Ly는 공판이 끝나고 법원을 나온 후, 몇 번 버스를 어떻게 타고 왔는지 모르지만 기산동 ‘새반뜰안길’을 거쳐 연립주택단지 부근에 도착하였다. 갈수록 다리에 힘이 빠지며 쉬었다 가고 쉬었다 가고 하기를 반복하면서 201동 앞 현관부근까지 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걷지 못하고 현관 앞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1동 앞 현관에서 약 5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베트남 사람의 말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201동 201호에 주거하는 베트남 여자 Hue(Dang Thi Hue)와 베트남 남자 Dong(Lu Thi Dong)이 공장에서 일하다 말고 무슨 사정에서였는지 일찍 퇴근하고 오는 길이었다. 현관문에 기대어 주저앉은 Ly는 그들을 발견하는 찰라, 쓰러져 눕고 말았다.

Hue와 Dong도 쓰러지는 Ly를 보고는 깜짝 놀라 얼른 다가왔다. 얼굴을 만지며 흔들어 보았지만 의식은 비몽사몽 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병원이나 의원은 고사하고 약국도 하나 없었으므로 응급실에 데려다줄 방법은 없었다. 설령 그런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에 직면하지 않는 한 본인의 의사가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함부로 데려다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병원 응급실 같은 곳은 신분노출 위험성이 매우 높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Ly와 안면이 있어 이 부근에 살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서로 왕래하거나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어 정확하게 몇 동 몇 호에 사는지는 알지 못했다. 따라서 Ly를 집에 데려다 줄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Hue와 Dong은 그녀를 업고 자신들의 주거지인 2층 201호로 들어가 매트리스에 뉘였다. 담요를 덮어주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다음 약 한 시간가량 지나고 나니, Ly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의식을 되찾고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방이었다. 갖가지 짐은 곧 이사를 가려는 것처럼 가방이나 보따리에 꾸려 구석구석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다시 판사와 변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돈 몇 푼 줄 테니까 아기는 포기해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너무나 무서운 얼굴들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내 생각과 다를 수가 있을까? 한국 사람은 정말 베트남 사람과 다른 것일까?’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아기를 데려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죽으면 아기는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얻어맞으며 자랄 것이다. 그건 절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안 돼!”


Ly는 갑자기 소리치며 일어나 앉았다. 이 소리를 들은 Hue가 방문을 열고는 약간 절뚝거리면서 들어왔다. 안면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베트남 말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아니 더 누워있지. 좀 나았어?”

“이젠 괜찮아요. 너무 피곤했었나 봐요.”

“많이 안면이 있는데, 이 근처 살... 지?‘

“네, 202동이예요.”

“바로 옆이네. 여긴 201동이예요. 혹시, 무슨 병이라도...?”

“아니에요, 오늘 재판 받고 오느라고 좀...”

“응? 재. 재판이라구?”

“네, 이혼 중이거든요.”

“아유, 재판이래서 깜짝 놀랐네.”

“왜 놀라세요?”

“아, 그럴 사정이 있어”

“사정요?”

“이런 얘기해도 될 런지 모르겠네.”


Hue는 조심스럽게 좌, 우를 살피더니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여기서 얼마 있으면 떠날지도 몰라. 한군데서 오래는 못 살거든. 자꾸만 누군가가 신고를 하는 것 같아.”

“왜요? 집을 도망 나왔나요?”

“응, 한국에 와서 10일 만에 집에서 도망 나왔거든.”

“그럼 위장결혼?”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당초부터 결혼할 생각은 없었거든. 남편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함께 있을려구 온 거야. 호적 고쳐가지구. 남편은 연수생으로 왔다가 계속 눌러 앉아있었거든.”

“돈 좀 벌었나요?”

“생각처럼 많이는 못 벌어. 요즘 불황이기도 하구. 또 위장결혼자는 수배가 내려져 있어서 더 위험해. 잡히면 구속되거든. 재판 받고 나중에는 베트남으로 쫒겨나가.”

“잡으러 다니나요? 단속이 심한가보죠?”

“그럼! 한국에 와서 처음 수원 핸드폰 케이스 공장에서 두 달 일했는데, 단속이 너무 심해서 한 달 쉬었지. 그런 다음 화성시 정남에 있는 김치공장으로 가서 일했거든....”

“거긴 일 할만 해요? 월급...”

“대부분 비슷한 것 같아. 100만원부터 110만원 사이... 김치공장에서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100만원 주더라구. 어디가나 한국말 모르면 불리해요. 나중에 좀 숙달되면 최고 120만원까지는 올려준대.”

“근데 왜 나왔나요?”

“휴! 그날따라 비가 많이 퍼붓던 날이었지. 너무 아찔한 순간이었어.”


Hue는 지난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30. 쫒기는 불법체류자


새벽 5시, 화성시 정남면 ‘팔도김치’ 공장 마당에 트럭이 도착하여 배추를 내려놓고 떠나간 다음 7시가 되자 2층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Hue(Dang Thi Hue)와 그녀의 남편 Dong(Lu Thi Dong)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래 작업장으로 내려왔다. 사장이 또 다시 잔소리를 하였다.


“오늘도 세수 안하고 내려오는 거야? 조금만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세수도 안하면 어떻게 해, 쯧쯧...”


오늘 쌓인 배추는 평일 보다 많은 400포기였다. Hue와 Dong, 그리고 다른 베트남인 한 명, 태국인 근로자 한 명이 고무장갑을 낀 채 배추와 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누런 떡잎을 떼어내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등 다듬어진 배추와 무는 물로 깨끗이 씻어내야 했다. 대충 씻어지면 한국인 검사원이 벌레가 있는지 등을 검사 하여 결격 배추를 걸러내고 나머지 합격한 배추는 다시 한 번 2차로 씻어내어 행구기 위해 물에 담가지는 것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 조선족 근로자들과 한국 근로자들이 무를 썰어 통에 넣고 미리 준비된 양념과 함께 버무리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조선족과 한국인 근로자만이 하며, 베트남 근로자들은 단순히 씻는 작업과 다듬는 작업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베트남 근로자들의 경우 조금만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을 시키면 무조건 ‘몰라!’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사장이 애초부터 시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족과 한국인 근로자들은 월 1,500,000원을 받으며, 태국, 베트남 근로자들은 1,000,000원을 받고 있었다.

이제 기초 작업이 끝나니 오전 10시가 되었다. Dong이 아침식사를 위해 대형 불판을 올려놓고 버너에 불을 붙인 다음, 돼지고기와 김치 등을 함께 섞어 구웠다. 다른 한쪽에서 Hue가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태국 근로자가 밑반찬을 올려놓자 각자 둘러 앉아 수저를 들었다. 각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음식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의무적으로 싫든 좋든 한국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김치공장에서는 배추나 무, 파, 마늘 등 원료의 대부분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돼지고기와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언제든지 국이나 반찬을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메뉴가 배춧국에 돼지고기 또는 두부김치 등이고, 간혹 생선이 곁들여지기도 하였다. 이날은 돼지불고기에 삼치구이가 나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절인 배추에 김치 속을 버무렸다. 이때에도 배합 등 중요한 일은 조선족과 한국인 근로자가 하며, Hue와 Dong 등 베트남인과 태국인 근로자는 시키는 일만 해야 했다. 시키는 일은 대부분 무거운 것을 든다든가 물건을 운반하는 것, 청소 등의 단순작업이었다. 먼저 버무렸던 양념은 냉장실로 들여보내고 며칠 전 미리 숙성시켜 놓았던 것을 꺼내 사용하게 된다.

배추 속에 일일이 양념을 칠하여 작업대에 올려놓으면 이를 받아 컨베이어에 올려놓는다. 올려진 배추는 포장실로 운반되어 다시 검사원의 마지막 검사를 거쳐 합격이 되면 비닐에 넣고 무개를 단 다음 봉투를 봉하고 박스에 담아 포장하게 된다.

이제 포장된 김치는 일부는 창고로 들어가고 일부는 거래처의 주문에 따라 차에 싣는다. 마지막으로 창고로 들어간 김치를 다시 정리하여 숫자를 파악하여 기록하면, 일반 종사자들의 하루 일과는 종료된다. 그 종료되는 시간은 보통 오후 4시경이지만, 이날은 조금 늦어져 5시 경에 종료되었다. 비는 멈추려는 듯 빗방울이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족과 한국인 근로자들이 수돗가에서 손과 발을 씻는 사이, Hue와 Dong은 작업장 바닥을 닦고 태국 근로자와 다른 베트남 근로자는 컨베이어를 닦았다. 청소를 마치자 Hue와 Dong은 2층 기숙사로 올라갔다. Hue는 너무 피곤했던지라 옷도 벗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고, 남편은 Hue와 엉덩이를 뒤로 맞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몇 군데 메시지를 보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작업장 한 가운데에서 음식을 펼쳐놓고 음료수와 소주를 마시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하얀 소형버스 한 대가 이웃 공장에 도착하였다. 잠시 후, 근로자 한 사람이 갑자기 손짓을 하였다. 이어 낮선 사람 대여섯 명이 차에서 내려 김치공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본 태국인 근로자가 제일 먼저 눈치를 챘다.


“단속! 도망가!”


작지만 끊어질 듯 강한 소리로 외치며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더니 다급히 냉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베트남 근로자도 무슨 뜻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채고는 신속하게 따라 들어갔다. 다만 조선족 근로자와 한국인 근로자는 불법체류자가 아니므로 태연하게 계속 음료수를 마시며, 기숙사에 있는 Dong에게 전화로 단속이 나왔음을 알려주었다.

단속소식을 들은 Dong은 급한 마음에 누워있는 아내에게도 알려주려고 아내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흔들었다. 갓 잠이 들려다가 깬 아내는 남편이 오랜만에 아내 생각이 나서 바지를 벗으라는 줄 알고는, 눈은 뜨지도 않은 상태에서 빙그레 웃으며 자크를 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누운 채 바지의 허리띠를 잡아 밑으로 밀어내며 끙끙 힘을 주는데, 이를 본 남편은 하도 답답한 나머지 엉덩이를 주먹으로 한 대 힘껏 쥐어박았다.


“으이그, 팍!”

“아이구 아파!”


얼마나 아프게 때렸는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남편을 바라보니 작은 소리로 단속이 나왔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흐익, 대낮부터 웬일인가 했더니.’ 하면서, 떨떠름한 기분으로 다시 바지 자크를 올리고는 짐을 챙겨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한편 냉장실로 뛰어 들어간 태국인과 베트남인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한 쪽에는 숙성시키고 있는 김치박스가 천정높이의 반 정도까지 쌓여있었다. 또 다른 한 쪽에는 직경 1.2미터, 높이 1.5미터가량 되는 둥글게 생긴 빨간 통이 대여섯 개 놓여있었고 커다란 비닐포장봉투와 포장종이박스도 쌓여있었다.

하지만 숨을 곳은 마땅치가 않았다. 베트남인은 벽 쪽으로 쌓아놓은 김치박스를 내려 벽과 50쎈티 사이를 두고 높이 1미터, 길이 1.5미터 정도로 하여 ‘ㄱ’자로 쌓았다. 그런 다음 그 속으로 들어가 움츠린 상태에서 빈 박스를 여러 장 머리위에 올려놓았다.

태국인 근로자는 빨간 통을 열어보았다. 젓갈이 가득 차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뚜껑을 닫고 다시 다른 통의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이렇게 하여 네 번째 통을 여니 고춧가루에 죽처럼 묽게 버무려진 빨간 양념이 3분지 1정도 차 있었다.

태국 근로자는 주춤거렸다.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벗고 들어갈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신을 벗어 놓으면 단속원이 볼 것이기 때문에 탄로가 나고 말 것이므로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지.’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살짝 뚜껑을 닫았다. 매운 양념냄새가 콧속을 자극해 양념 위에 젓갈보다 누런 콧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시 후 통속에 들어가 있던 태국 근로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신발을 차례로 벗어 통 안에 놓고 나와 맨발로 조심스레 비닐봉투 있는 곳으로 가서 비닐봉투 한 장을 가지고 왔다. 군데군데 떨어진 양념을 빈 박스로 문질러 닦은 다음, 다시 통속으로 들어가 비닐봉투의 겉과 속에 모두 양념을 묻혔다. 비닐은 반투명이므로 속이 잘 들여다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들어가 있을 경우 머리칼 부분이 검게 보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념을 묻힌 봉투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통 뚜껑을 닫고 봉투 입구를 모아 손에 쥐었다. 오래 있으면 공기가 부족할 것에 우려하여 비닐 옆에 조그마한 구멍도 하나 뚫어놓았다.

드디어 단속반원이 공장에 도착하였다.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였다. 이때 사장도 다가왔다. 공장 내부를 한 번 둘러보더니 한 사람은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 앞을 지키는 가운데 다른 두 사람은 사장을 데리고 냉장실 문 앞에 다가서서 주먹으로 몇 차례 쿵쿵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라는 의미였다.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냉장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이것저것을 살피더니 베트남인이 숨어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베트남인은 숨을 멈추고는 눈을 꼭 감고 말았다. 단속원은 발길로 쌓아놓은 김치박스를 슬쩍 걷어찼다. 푹! 소리와 함께 기겁을 한 베트남인은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쪼그린 상태에서 너무나 놀란 나머지 다리에 쥐가 났지만 다리를 움켜쥐고만 있을 뿐 고통스러워도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이 단속원은 눈지를 채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이제는 빨간 통이 있는 쪽으로 갔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통들을 하나씩 손으로 두드려보다가 하필 태국인이 숨어있는 통을 열었다. 매운 양념 냄새가 풍겨 나오면서 단속원의 코를 찔렀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뚜껑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숨어있던 태국인도 맵고 독한 냄새로 눈이 따갑고 코가 근질거리는 등 죽을 지경인 상태에서 산소부족으로 공기마저 너무 탁해 질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뚜껑을 열어준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장이 통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숨구멍으로 뚫어 놓았던 비닐구멍으로 태국인의 시커먼 귀가 슬쩍 보였다. 당황한 사장은 손바닥으로 양념을 떠서 살피듯 그 구멍 위에다 대고 시야를 막았다. 양념 액체는 한 두 방울 씩 귀로 떨어져 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면서 사장은 단속원에게 점잖게 한 마디 하였다.


“이거 지금 발효시키는 중이거든요. 뚜껑을 오래 열면 곤란합니다만....”


그리고는 슬며시 뚜껑을 닫아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단속원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 단속원은 냉장실을 나와 망을 보던 다른 단속원과 함께 기숙사로 올라갔다.

기숙사 안에서는 조선족에게 전화로 단속정보를 전달받은 Hue와 Dong이 가방을 손에 쥔 채 방문을 닫아 잠그고 바깥 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젠 핸드폰도 더 이상 켜 놓을 수 없었다. 가늘어지던 비는 다시 소리를 내며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쿵쾅거리는 계단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였다. 단속반원이 올라온다는 것을 Hue와 Dong이 모를 리 없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더 가까이 문에 대었다. 드디어 도어록 손잡이를 돌리려 하는 것이 감지되었다. 잠긴 것을 확인한 단속원은 가지고 있던 기구로 문 잠금장치를 부수기 시작하였다.

큰일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나마 뚫린 곳은 방바닥에서 1.2미터 높이의 창문 밖에 없었다. Dong은 Hue에게 뭐라고 손짓을 하였다. 창문으로 빨리 뛰어 내리라는 뜻이었다. Hue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죽으면 죽었지 뛰어 내릴 수가 없었다.

다시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애원하듯 남편 Dong을 바라보자, 남편은 아내 Hue를 번쩍 들어 창문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내의 엉덩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사정없이 밀어 던져버렸다.

아내 Hue는 붕 날아가 퍽! 하고 떨어지며 한 바퀴 때굴 굴러버렸다. 다행이 아래는 고구마 밭이어서 딱딱한 상태는 아니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진 덕에 땅이 더욱 물러 죽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발목이 끊어지듯 아팠다.

이제는 다시 Dong의 차례였다. 방문은 삐꺼덕 소리가 나며 곧 열릴 것만 같았다. 가방을 움켜쥔 Dong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창문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힘껏 뛰어내렸다.


“퍽!”


이번에는 약간 앞으로 기울며 떨어진 덕에 얼굴을 밭고랑에 부딪치며 이마가 3센티 가량 찢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채 주위를 살펴보니 아내가 다리를 움켜쥐고 있을 뿐 죽어있지는 않았다. Dong 자신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젠 도망가야 하는데 아내 Hue가 발목을 다쳐 걸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 각각의 밭고랑에 엎드리고는 풍성하게 자란 고구마 잎과 덩굴을 몽땅 뒤집어썼다. 비에 젖은 고랑은 질퍽질퍽하여 팔과 다리가 반쯤 진흙 속에 묻혀버렸다. 고구마 잎 사이로 뛰어내렸던 창문을 올려다보니 단속원이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비가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고개를 창밖으로는 내밀지는 못하고 안에서만 내다보는 것이었다. 다행이 그마저도 곧 창문을 닫고 안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퍼부었다. 빗물은 계속해서 몸속 이곳저곳을 흘러내렸다. 찢어진 얼굴은 따끔따끔하고 쓰라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단속원들이 돌아갈 때까지는 흙탕물 속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Hue의 신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31. 아내보다 중요한 돈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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