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투남인들의 한국 이민 개척사
제4부. 베트남 타운
28. ‘이슬’이 엄마의 눈물
공장 안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있던 Ly의 손등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몇 초 후 다시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Ly는 콧물을 훌쩍거리더니 휴지로 코를 풀었다. 옆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Anh이 이를 발견하고 Ly의 얼굴을 쳐다보니 눈 주의가 젖어 있었다.
“Ly!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응, 조금...”
“무슨 일? 나한테 얘기하면 안 돼?”
“어제 법원에서 2심 재판 날자가 정해졌다면서 법정에 나오라는 소환장을 보내왔어.”
“무슨 소환장? 지금 재판 중인거야?”
“응, 나 지금 이혼 재판 중이야. 근데 이혼보다 더 중요한 건 아기를 찾아오는 것이거든. Anh은 아기 없어?”
“없어, 나도 집을 나왔지만..., Ly는 왜 나왔어?”
“사정이 있었어. 웬만하면 참고 견디려고 했지만, 정말 한국 남편 이해할 수 없었어. Anh은 남편과 사이좋았어?”
“남편과는 사이가 좋았지. 장애인이긴 했지만 착했거든...”
“솔직히 먹고 살기만 하면 난 남편이 장애인이라도 괜찮았을 꺼야. 나도 첨엔 사이가 좋았거든.... 말은 잘 안 통했어도 밤마다 서로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지. 날마다 한국말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웠어. 김치를 담그는 등 한국음식 요리 연습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어. 근데 문제는 아기를 임신하고 난 다음부터였어. 남편의 퇴근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는 거야.”
“내 친구 Mai도 그랬대. 한국 남자들은 왜 그러지? 자기 아기를 임신했는데 말이야.”
“글쎄, 나도 모르지. 근데 내가 친구들과 전화하는 것 가지구 트집을 잡기 시작했어. 매일 늦게 술 마시고 들어와서는 누구 아이를 임신한 거냐구 소리를 지르는 거야. 나중엔 술김에 따귀를 때리더니, 점점 구타가 심해졌어. 급기야는 베트남 남자친구하고 바람을 피웠다는 거야.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 목매달아 죽고도 싶었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돌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 아기를 낳으면 못 죽을 테니까.”
“그랬구나! 쯧쯧...”
“결국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시어머니까지 의심하더니, 병원에 데리고 가서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니깐.... 검사가 이상 없다고 나온 날, 베트남 친정엄마에게 전화하고 밤새도록 울었어. 그랬더니 다음날 친정에 고자질 한다면서 살기 싫으면 베트남으로 돌아가라는 거야.”
“갈수록 태산이군.”
“아기 첫 돌이 지나고 나서 또 싸웠어. 남자친구와 전화했다구. 이번엔 주먹으로 얻어맞아 턱이 빠졌어. 그동안 수없이 얻어맞아 피멍이 들었어도 약만 사다 바르고 병원엔 가지 않았는데, 턱이 빠지니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있어야지. 통증은 얼굴 전체로 번지고 숨쉬기까지 힘들 정도가 되었어. 그래서 처음으로 병원엘 가서 치료를 받게 된 거야. 이젠 증거가 남게 된 거지.
난 이때 생각했어. 어차피 이 남자와는 함께 살 수 없다. 계속 살다가는 맞아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오면 아기 데리고 가출해야겠다고... 비상금도 몰래 모으기 시작했구. 불과 몇 십만 원 정도지만...
드디어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또 다시 얻어맞고는 집을 나와 친구 집으로 도망을 갔어. 3일 후 어떻게 알았는지 시어머니하고 함께 찾아왔는데, 나를 두드려 패면서 아기만 빼앗아 데리고 나갔어. 아기는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 치면서 우는데도 그냥 막무가내로 차에 태워 데리고 갔어. 차라리 날 죽이라고 차 트렁크에 매달렸지. 하지만 갑자기 차가 급발진하면서 나만 길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어.
다음날 집으로 찾아갔지만 아기는 이미 다른 데로 빼돌리고 없었어. 난 빈 몸으로 쫒겨나고 말았지.”
이야기 하는 동안 점심식사가 나왔다. 국물 반에 콧물 반을 섞어 점심을 먹으면서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친구 집에서 이틀 동안 밥도 못 먹고 울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었지. 링거주사를 맞은 다음 병원을 나오면서 아기를 못 찾아오면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생각 했지. 그 때가 벌써 6개월 전이야. 지금은 많이 컸겠지? 울고 있을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해.”
“그래서 재판하는 거야?”
“누가 그러더군. 재판하면 이길 수 있다고... 근데 재판이라는 것이 돈이 꽤 들어가는 거야. 돈 없으면 재판 못해. 변호사비용이 없어서 돈 마련하느라고 공장에 와서 질질 끌다가 재판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도 내가 바람나서 도망갔다고 재판을 신청해 놨더군. 그 후 1심 이혼 판결은 났어. 위자료도 5백만 원 지급하라고 했어. 근데 아기는 남편이 키우게 된다는 거야. 아기를 베트남 엄마가 키우면 말을 잘 못 배워서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나? 어이가 없어 정말.
그래서 항소 했는데, 재판비용이 장난이 아니야. 변호사비용을 1,000만원이나 달래. 1심에서는 무슨 법률 무슨 공단인가에서 무료변호를 해 주었는데, 그건 성의가 별로 없었다나?
근데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이번에 난 변호사 없이 그냥 할 거야. 그냥 판사님한테 사정해 볼려구. 판사도 사람이라면 들어주지 않겠어? 응? 이제 위자료고 양육비고 다 필요 없고, 아기만 돌려받으면 돼. 내 아기 말이야, 내 아기 내가 키우겠다는데, 베트남 말이 어째서..., 안 그러냐구. 흑흑...”
결국 Ly는 식사를 마치지 못했다.
그날로부터 20일 후, Ly는 공판 시간에 맞추어 수원지방법원 제4별관 202호 법정으로 들어갔다. 재판장 김영숙 판사가 사건 양쪽 당사자를 호명하였다.
“사건번호 27318번, 원고 호 티 리(Ho Thi Ly), 피고 배형근 소송대리인 김영철 변호인. 앞으로 나오세요.”
원고 Ly와 피고 변호인 김영철 변호사가 방청석에서 나와 각각 원, 피고석에 앉으면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피고는 준비서면을 제출했는데, 원고는 준비서면을 제출하지 않았군요.”
“네,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통역이 있으니까 베트남 말로 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중요한 부분은 베트남 말로 할 테니까 그 부분만 통역을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피고는 변론준비서면에서 엄마인 원고에게 아기를 맡길 수 없는 이유로 한국어 미숙을 들었는데요,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말이 서툴 뿐 아니라 남자친구와 자주 전화를 함으로써 가정파탄의 책임이 있으며, 자라나는 아기에게도 미풍양속에 관하여 나뿐 영향도 미칠 수 있습니다.”
“원고! 원고는 남자친구에게 왜 전화를 자주 하나요?”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은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때문에 친구관계를 모두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런 이유로 베트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다 잘 못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것은 마치 사과를 깎을 때 안쪽으로 깎지 않고 바깥쪽으로 깎으면 위험하다는 것과 다름없어요. 하지만 베트남 여자들이 사과를 바깥쪽으로 깎아서 먹을 수 없었다거나 손이 잘렸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베트남 여성들을 불순한 여자로 보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약속을 깨고 신의를 버린 사람은 한국인 남편이었어요.”
이에 변호사가 나섰다.
“원고의 주장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간에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혼인생활을 불안하게 할 만큼 남자친구와 자주 전화를 한다면 이는 혼인파탄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꼭 여성인 아내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평등원칙에도 위배되지 않으며 차별 또한 아닙니다.
또 원고는 사과 깎는 행위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만, 사과를 바깥방향으로 깎는 것은 제대로 깎아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자면, 사과를 안쪽으로 깎는 습관을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듯이, 한국의 문화와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배우고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원고는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안부전화 이상으로 베트남에 있는 친구뿐만 아니라 한국에 와 있는 남자들에게도 수시로 전화를 하는 것은 혼인생활에 진실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이의 정서발달 등 양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시 재판장이 질문했다.
“다음, 원고는 한국말이 서툴다고도 했는데, 한국말 아직 서툰 것은 사실이지요?”
“네, 솔직히 서툽니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어는 주로 누구에게 배우나요?”
“시청에 가면 학습과정이 있습니다. 거기서 3개월 배웠습니다. 다만, 지금은 직장 때문에 잠시 쉬고 있습니다.”
“아기에게 어느 나라 말로 자장가를 불러주나요?”
“베트남 말로 핫 루(Hat ru)를 불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장가가 끝나면 한국 자장가도 불러주었습니다. 자장~ 자장~ 잘 자거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이렇게요.”
“수입이 있나요? 돈벌이를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네, 공장 다니면서 한 달 1,100,000원씩 받아요.”
이때 피고 변호인이 잠깐 말을 끊고 재판장에게 말을 했다.
“원고는 아기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입국 2년이 넘었음에도 귀화신청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고가 아기를 양육하는 도중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간다면, 아빠인 피고의 면접권이 심각하게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원고는 왜 귀화신청을 하지 않았나요?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인가요?”
“아니요! 베트남에 친정이 있으니까 잠깐 다녀올 수는 있지만, 저는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한국으로 시집왔습니다. 다만, 귀화신청을 하지 않은 것은 남편이 비자연장을 해주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재판이 끝나면 즉시 귀화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베트남 국적을 포기할 예정인가요?”
순간, 갑작스런 국적포기질문에 Ly는 어떻게 대답을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대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뜨거워진 뺨에 두 손을 대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고 재판장에게 부탁을 하였다.
“재판장님, 잠시 시간 좀 주세요. 10분만요.”
재판장은 오른쪽에 앉아 있는 배석판사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더니, 곧 이어 휴정을 선언하였다.
“원고의 신청을 받아들입니다. 10분간 휴정합니다.”
Ly는 화장실로 달려가 몇 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다시 재판정 원고석에 올라가 앉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둘 중 한 쪽을 포기해야 한다면, 베트남 국적을 포기하겠습니다. 한국의 국민이 되겠어요. 하지만 나에게 모든 마음 속과 양심까지 ‘한국사람’이 되라고 한다면, 그것은 싫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 말은 무슨 뜻인가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거지요.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을 한국에서 찾은 것도 맞아요. 그리고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하려고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기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아기와 나는 순수한 베트남 사람도, 순수한 한국 사람도 아니예요. 순수하다는 걸 나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비엣족’이예요. 베트남에서 태어나서 베트남의 보호아래 먹고 자라면서 베트남 문화를 익히며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베트남 언어와 음식을 끊고 한국 것만 따라할 수 있을까요? 지난 2년 동안 나는 베트남 음식만 좋아하고 베트남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고 무척 시달렸습니다. 아기한테는 된장찌개를 끓여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아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너무나 많고 급해요.
내가 한국국민이 된다고 해서, 모든 정신이나 습관까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너무나 슬픈 거예요. 나는 아기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거예요. 하지만 베트남의 언어도 함께 가르칠 거예요. 엄마의 친정이 베트남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양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재판정 내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몇 초 후, 재판장은 서류를 넘기다가 다시 물었다.
“원고는 더 할 말이 있습니까?”
원고 Ly가 답했다.
“그저 한 아기의 엄마로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는 한국말이 서툴지만, 그것이 엄마와 아기를 떼어 놓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 난 위자료도 양육비도 다 포기할 수 있어요. 정당하게 받아야 하지만, 아깝고 주기 싫으면 안 주어도 돼요. 전 아기만 있으면 기꺼이 만족하겠습니다.
재판장님도 여자잖아요.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얼마나 아프셨어요? 하지만 한국인이라서 아픈 건 아니잖아요? 베트남 엄마도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때마다 많이 아픕니다. 한국말이 서툴다고 통증이 없는 거 아니예요. 엄마와 아기는 통증으로 맺어지고 통증을 함께 나누면서 큽니다.
이담에 아기가 커서 통증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되는 날, 얼마든지 떠나가도 좋아요. 하지만 자랄 땐 엄마가 필요해요, 그런데도 아기를......? 양잿물을 마셔도 이보다 더 가슴을 쓰리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Ly는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추스르려 숨을 한 번 크게 들여 마신 다음, 살며시 눈을 감고 음성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집을 나온 것은 남편의 폭력 때문이었지요. 일가친척도 없는 먼 나라에 와서, 그것도 사랑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남편에게 갇혀진 방안에서 주먹으로 얻어맞는 다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 줄 아시는지요? 얼굴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주먹은 바윗돌보다도 크고 더 단단했습니다.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번갯불이 번쩍거렸지만 살려달라고 애원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코가 뭉그러지고 입술이 터져 벽과 바닥에 피가 튀겼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기가 바라보는 앞에서 이리 자빠지고 저리 쓰러질 땐, 통증과 죽음의 두려움보다도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기의 겁먹은 표정에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턱이 빠져 병원에 가서도 내가 죽으면 아기를 누가 키울 것인가 하는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예쁜 아기를 폭력적인 아빠에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베트남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포기해야만 하나요? 네?”
숙연하였던 방청석의 분위기는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29. 남편을 찾아 나선 위장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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