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경험이란 무엇인가? 예의 바른 일상을 부수고 짧은 시간 동안 고양된 감수성으로 새로움, 위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이라는 기초 위에서 친밀성은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저 이따금씩 식사를 함께 하면서 생긴 우정은 결코 여행이나 대학에서 형성된 우정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다. (p.138)
1.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사랑에도 공유된 경험이 중요하다. 유일하면서 다양한 경험, 위기, 고난을 겪어 나갈 때 사랑을 단단하게 만든다. 좋을 때는 무엇이든 쉽다. 하지만 본모습은 어려운 상황에 나타난다. 고난의 경험을 함께하지 않은 관계는 아무리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연약하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산들바람에도 시리다.
우리가 만약 아주 끈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 그들과 함께했던 고난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힘듦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었던 시간들이 끈끈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다고 어려웠던 시간만 함께해서는 안된다. 잘될 때도 함께 겪어야 한다. 한편으로 누군가가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함께 축하해 주는 것은 그 사람이 어려울 때 위로해 주는 것보다 어려울 수가 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갑자기 깔깔대는 모습을 보고 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라이트모티프의 핵심이다. (p.140)
일화들 자체가 흥미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클로이와 나만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 라이트모티프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접착제 역할을 했다. (p.141)
2. 우리는 같은 의미를 담은 일종의 암호를 공유할 때 소속감을 느낀다. 그것은 단어일 수도 있고, 행동 또는 작은 표정일 수도 있다. 그러한 요소는 아주 작고 미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요소는 억지스럽지 않고 시시할수록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p.144)
3.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관심의 크기는 관찰로 나타난다. 외적인 관찰이든 내적인 고찰이든 관심이 생기면 그것에 비례해 관심의 대상에 신경을 쏟는다.
'나 바뀐 거 없어?'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이 질문은 상대방의 관심의 정도를 알고 싶은 것으로, 관심을 사랑으로 바꾼다면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을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알아갈 때 어쩔 수 없이 실마리들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조각들을 맞추어 이야기를 엮어보는 탐정이나 고고학자와 같다. (p.147)
4. 사람은 하나의 그림 퍼즐과 같다. 그것도 아주 복잡한 퍼즐인데, 어쨌든 퍼즐 맞추기는 모서리부터 시작하는 게 쉽다. 코너 퍼즐의 모양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라는 퍼즐도 모서리부터 맞춰나가는 게 쉽다. 사람의 모서리는 이름부터 직업, 사는 곳, 나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퍼즐은 한쪽만 계속 맞추는 것보다 균형 있게 전체적으로 맞춰가는 것이 정석이다.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비슷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실마리 조각들을 단순한 부분부터 끼워 맞추는 것이다. 때로는 두서없어 보여도 작은 실마리의 조각들을 맞춰가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의 큰 그림이 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퍼즐이 완성되기 전에는 전체 그림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미리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pp.149-150)
4. 되도록 우리는 자신의 이상형을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상형은 하나의 틀이 되어 사람을 가둬두기 때문이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은 영양가가 없다. 차라리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겪었는지, 또는 가까운 사람들의 성향은 어떤지 실제 주변 인물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5. 관심이 가는 사람의 이상형을 들으면 누구나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맞추고 싶어 진다. 더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롤모델이나 멘토를 따라 하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상형에 자신을 투영하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의 이상형이라는 캐릭터는 절대적인 선도 아닐뿐더러 실체가 없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누군가의 이상형을 닮으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부작용은 자신과 그 대상의 다른 점을 차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다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잘 자신이 그 이상형에 자신을 끼워 맞출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생각보다 변장에 유능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기 최면에 가깝다. 그러나 최면은 언젠가 깨어난다.
나는 그녀의 내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일 뿐이었으며, 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p.155)
6. 우리 모두는 타인이다. 그것도 아주 복잡하고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분리된 존재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도 벅찰 때가 많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깝다는 뜻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해도 때로 고독함을 느끼는 이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각자의 고독만은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