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p.24)
1.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오랜 시간 모른 채 지낼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또는 숨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작은 순간적으로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을 때 이미 상대는 나에게 너무나 완벽하다. 그녀에게서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 상상 속의 유니콘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녀가 완벽하다는 것의 본뜻은 내가 상대를 전혀 알지 못한다거나 더 이상 그 존재를 깊이 알아보기는 것을 주저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 존재만은 유별나게 완벽하다. 단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단점조차 완벽함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이런 모습을 콩깍지가 씌었다고 표현한다. 즉, 눈을 감고 온전히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상대를 자세히 바라보기를 멈추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이냐? 시간[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p.26)
2.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 존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가 있을까? 아니 타인이 아니라 본인 자신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존재에 대해 전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흔한 동화의 결말처럼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면 환상은 언젠가 깨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사랑인지 망상인지는 드러나게 된다. 물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욕망 때문에 나는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p.33)
3.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다시피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작은 손짓조차 대단한 의미로 바뀌어 나에게 폭풍을 일으킨다. 그것이 정말 상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의미가 내포되어 있든 어떻든 간에 나에게는 중요한 단서이고 흔적이고 경고가 되기 충분하다. 그 단서를 놓친다면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낭만적 편집증 환자라고 부른다. 마치 정치인들이 단어 하나에도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신중하게 내뱉듯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게 나에게 신호하리라 생각한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혹여나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몇 분 간격으로 오는지, 확인은 했는지, 내가 사용한 단어와 그녀의 단어 사이에 의미가 다른지 어떤지. 낭만적 편집증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분석 대상이다.
"클로이를 기쁘게 하려면 나는 누가 되어야 하나?" 나는 그렇게 자문했다. 그렇다고 극악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클로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할지 계속 미리 예상을 하려 했을 뿐이다. (p.40)
4. 소개팅이나 좋아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 자리는 일종의 가면을 쓴 탐색전과 같다. 서로가 던지는 질문 속에 출제자의 의도는 무엇이고, 정답인지를 맞혀야 하는 하나의 강박이 숨어있다. 혹여나 출제자의 의도와 맞지 않는 그러니까 상대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느껴지는 거리감은 죽도록 피하고 싶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좋아할 수 있고, 싫어하는 것은 누구보다 싫어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실제로도 그렇게 변한다.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p.41)
5. 보통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사람과의 친밀도는 침묵의 편안함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침묵이 편안하면 아주 가까운 사람. 침묵이 불편하거나 어색하면 그만큼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성과의 관계에서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 안달 난 사람은 일반적으로 사랑에 더 깊이 빠진 사람이다.
왠지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낮은 자리에 있는 약자가 된다. 그것도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라 상대를 섬겨야 할 것 같은 그러한 약자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녀는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서 힘을 빼앗아간 강자가 된다. 더 안타까운 점은 그 힘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은 피해야 하는 늪지대와 같다.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어떻게든 움직여 탈출해야 한다. 상대는 침묵의 원인을 따분하고 재미없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 늪에서 꺼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멍청하게도 인터뷰를 하듯이 무거운 질문들을 던졌다. (p.42)
그런 서툰 질문들 ... 배후에는 가장 직접적인 질문으로 다가가려는 초조한 시도가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그러나 그런 직접적인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p.43)
6. 준비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침묵의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장치 몇 가지는 준비하기 마련이다. 어설프지만 않다면 분명 효과적인 무기들. 물론 이런 무기들은 미리 준비했을 때 유용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로 효과를 얻으려면 많은 연습 또는 본능적인 센스가 필요하다. 어떤 대답을 하느냐보다 그 대답이 대화로 이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늪에 빠진 약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냥 준비했던 모든 무기들을 의미 없이 꺼내놓기 바쁘다.
결국 '그냥 당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말해주세요. 나는 그 사람이 될 수 있어요!!'라고 애원하는 꼴밖에 안 된다. 정답은 정해져 있을 테니 나를 잘라내고 덧대어 끼워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거짓말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도 속이는 법이니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던 그녀의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그림을 계속 재조정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똑같은 점을 두고 한 번은 칭찬을 했다가 조금 후에는 비난을 했기 때문에, 나는 미친 듯이 계속 고쳐대야 했다. (p.45)
7. 하지만 상대도 사람이다. ai라면 일관된 태도와 대답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게 사람이다. 그녀의 취향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잠시는 가능할지라도 곧 상대의 의견에 맞장구치며 단호하게 표현했던 나의 취향을 잠시 후의 내가 반박해야 하는 모순에 마주한다. 그 모순된 태도의 원인은 줏대 없는 상대에게 있지만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p.48)
나는 아주 주변적인 작은 것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다. 유혹하는 여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는 것들. (p.49)
8.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들은 어떤 이유일까? 다른 사람도 아닌 단 한 사람, 꼭 그녀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누군가가 사랑을 계획하고 조작하여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간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진짜 사랑이라고 되뇔 수 있을까? 분명 배신감에 그 사랑은 거짓이었다고 부정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우연히 발생했다고 믿어야 드라마가 된다.
드라마는 우연적인 요소와 아주 작은 요소로 만들어진다. 너무 작아서 사실대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것들. 단지 단발이 잘 어울린다거나,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이쁘다거나, 순진하게 멀뚱 거리는 맑은 표정이라거나. 상대의 의지 또는, 본질과는 관련 없는 그런 이유로 끌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