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동물

by 삽질

제주도에 이사 오니 원래 살던 곳과 비교해서 환경이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살던 곳에 맞추어졌던 몸과 생활 습관이 하루아침에 쓸모? 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제 몸과 생활은 빠르게 지금의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환경은 오히려 저에게 더 나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 주변에는 헬스장이 없습니다. 평소 일주일에 3일은 운동을 했었는데,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대안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조금씩 시작했고 주말에는 달리기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사우나 달리기(#루플리클럽)를 하고 왔습니다. 5km 정도 달리기를 하고, 얼음장 같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핀란드 사우나로 마무리하는 정말 기가 막힌 체험을 했습니다. 제주도에 오신다면 맛집 투어가 아니라 이걸 꼭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극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신체 활동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침대는 없어져 바닥에서 자고, 식기세척기도 없어서 이제는 손 설거지를 합니다. 걸어서 장 볼 수 있는 마트나 편의시설이 없어서 뭐라도 살라치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적응하게 됩니다. 원래 이렇게 살았던 것처럼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습니다. 별로 까탈스럽지 않은 저희 가족 성격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편한 건 없습니다. 어쩌면 예전에 살았던 삶이 지나치게 편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편할수록 나태해지고, 작은 불편함에도 신경이 곤두서게 되니 오히려 편안한 환경은 해로운 면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당한 불편이나 불안함이 주는 긴장감이 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도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친구들을 사귀진 못했지만 어린이집에서 재미있었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 어린이집은 숲 어린이집이라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거든요. 처음으로 통학버스도 타고 등·하원을 하는데도 좋아합니다. 신기한 스쿨버스 책을 엄청 좋아하는데, 그 덕분에 스쿨버스 타는 게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됐습니다. 아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는데 다행입니다.




아내만큼 여기에 완벽 적응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느려진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뜨는 오후에는 동네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볼일을 보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다녀옵니다. 제가 일을 나가면 차가 없으니 불편할 법도 한데, 버스 타고 다니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합니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요. 겁쟁이라서 버스 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잘 적응한 덕분에 차는 조금 나중에 사줘도 될 것 같습니다.

제주도는 저희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뉴질랜드에서 살았던 환경과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극도로 나쁜 환경에서도 인간은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정말 끔찍한 수용소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금방 적응했던 걸 볼 수 있습니다. 퉁퉁 부은 발을 얼어붙은 부츠에 구겨 넣고 몇 시간을 행군하고 작업을 하기도 하고, 이불 한 장으로 여러 명이 새우처럼 서로 달라붙은 채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졌다니까요. 생각보다 인간은 강인합니다. 하지만 굳이 강인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용소에 살 필요는 없겠지요.

스스로 변하고 싶다면,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에 억지로 구겨 넣어 보면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신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면 좋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의 생활이 수용소처럼 느껴진다면 여러분만의 제주도를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보다 멋진 모험이 될지도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