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요일이지만 출근을 하지 않았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하우징페어에 참가하느라 고생했다고 사장님께서 특별 휴가를 주셨다. 아침에 주급을 늦게 줘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일급 인상을 통보하셨고, 수고해 준 감사의 의미로 특별 보너스까지 넣어주셨다.(주급은 항상 일요일 저녁에 보내주신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했을 뿐인데, 사장님께는 꽤 많은 도움이 된 듯하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은 애초에 크게 없었다. 당연히 일을 하는 입장에서 가져야 할 책임감도 있고 열정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호기심과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나와 사장님은 서로 다른 이익을 위해서 일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승리했다.
겨우 1인분을 하는 교사였지만, 꼴에 10년 정도 교사를 했다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설명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일을 다 마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장님은 나를 칭찬했다. 손님에게 설명하던 내 말투와 톤이 너무 좋았다고. 설명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본인이 배웠다고. 난 그냥, 입력한 내용을 친절히 설명했을 뿐인데, 교사 10년 짬빠가 어디 가진 않았나 보다. 내가 가진 능력이 없다고도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가진 능력들이 평균 이상의 것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능력을 교실 밖에서도 쓸 수 있다면, 건사한 내 몸뚱어리 하나 믿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도 괜찮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의미 없는 삽질은 없다. 생각해 보면 교사를 한 덕분에 내가 받는 대우는 애초부터 달랐다. 초등 교사라는 간단한 타이틀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력이 숨겨져 있다. 그래도 성실하게 공부를 했고,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일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을 가르칠만한 인성을 가졌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순 있으니까. 물론, 사람은 써봐야 아는 거지만, 스스로 그 정도 예상에 걸맞은 사람이라곤 생각했다. 그 신뢰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더 성실히, 열심히 일한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즐거워서 열심히 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이번에 받은 보너스는 설날 용돈 수준이지만 그 의미만큼은 성과급 못지 않다. 편하게 일하고 적당히 벌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 알고 살았는데,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삶이 이런 건가 싶다. 일원 단위까지 나의 소득을 예상할 수 있고, 앞날의 일과나 일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예측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모든 것이 나의 능력과 운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에 넘어왔다. 불확실함이 싫어서, 안정감이 좋아서 선택했던 직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세상 밖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내가 하는 만큼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계는 생각보다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 동기부여를 주신 사장님께 감사하다.
이번 전시회장 옆에는 80 노인 세 분이 팔각정을 판매하셨다. 이제는 놀러 다니는 게 좋아 그냥 이렇게 친구들이 함께 다니는 거라고 하신다. 우리 사우나와 자신의 팔각정을 함께 콜라보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내놓으셨다. 세 시간이나 걸리는 팔각정 조립도 세 분이서 거뜬히 하신다. 그 연세에 얼굴에 낀 주름의 수가 나랑 비슷한 이유를 알겠다. 나도 저분들처럼, 죽을 때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다. 정년을 정해놓고 은퇴하는 삶은 어쩌면 삶을 농락하는 행위가 아닐까.
우리 앞 부스에는 모든 박람회를 돌아다니는 현대판 보부상들도 있었다. 한편의 쇼를 하듯 손님을 홀려 물건을 파는 아저씨들. 괜히 가서 말도 걸고, 음료도 건네드리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고맙다는 의미로 자신들이 파는 보호 고글을 두 개나 선물로 주셨다. 원래 우리가 돈주고 사려고했는데. 내년에 이분들을 또 제주도 박람회에서 뵙고 싶다. 그분들의 삶은 내가 새롭게 배우고 싶은 삶이다. 내가 궁금해하는 삶이다.
월요일 휴가, 월급 인상과 용돈 같은 소중한 보너스까지. 덕분에 아이 없는 평일에 아내와 즐거운 데이트를 했다. 임신 중기에 들어선 기념으로 그동안 먹지 못했던 물회를 먹었다. 물회를 파는 곳 치곤 너무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스페셜 물회를 멋지게 쐈다. 보너스 받은 기념으로. 그리고 집 앞 카페에서 달콤한 디저트와 수제 생강 라테까지 마신다.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책을 읽는다. 예측불가능 한 삶에서 누리는 휴가는 더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