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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Aug 12. 2016

만두

 모두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문제는 언제나 태도


백화점 지하매장에서 피어 오르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샀건만 버스에 오르자 맛있게만 느껴졌던 만두 냄새가 당황스럽다. 그렇게 진동을 하더니, 버스 안에서도 그 기세가 대단하다. 마감 타임세일로 네 팩이나 샀는데, 20분은 가야 하는데 어쩌나.


금요일 밤의 버스는 이미 술 냄새, 고기냄새, 땀냄새로 가득했지만 내 코에는 만두냄새만 나는 것 같았다. 봉지가 흔들리면 혹여 냄새가 더 날까 움직이지 않도록 손에 힘을 줬더니 몇 정거장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치고 피곤하다.


예전 극장에서 (제목도 기억난다 투모로우라는 재난영화였다) 옆자리에 앉은 커플이 만두를 먹었었다. 팝콘이 아니고? 아니다 만두였다. 정장을 입은 남자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좌석이 작게 느껴질 만큼 길죽길죽하고 늘씬했다. 모델 같던 의문의 선남선녀는 광고가 나오는 동안 검은봉지에서 스티로폼 상자를 꺼내 노란 고무줄을 벗기고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예고편이 나오면서 영화관이 어두워지자 휴대폰으로 조명을 삼아 만두를 먹었다. 말도 안하고 먹더니 영화가 시작하자 잠들었다. 둘 다. 영화는 처음부터 볼 생각이 없었다는 듯이.


나는 기묘한 상황에 얼이 빠져 초반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무슨일이 일어난 거지? 비싼 돈 내고 와서 왜 불편하게 여기서 먹는 거지?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이런 저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느라 여전히 영화에 집중을 못하는데, 만두냄새, 그 놈의 만두냄새에 머리까지 아팠다.


가끔 내가 욕했던 상황에 내가 들어앉아있다. 금요일 밤 버스에서 민폐를 끼치면서 나는 그 커플이 생각났다. 끼어드는 차에게 어떻게 저딴식으로 운전하냐고 욕을 했건만 나도 어어어, 하다가 직진 도로에서 좌회전을 함께 탄 적이 있다. 능숙하지 못하게 끼어들어 뒤차에 경적세례를 받은 적도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대낮의 서울행 고속버스는 주말이나 퇴근시간과 달리 한산해서 나 말고 겨우 두 어명이 더 타고있었는데 나와 같은 줄의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주섬주섬 봉투에서 뭔가 꺼내더니 먹기 시작했다. 소시지가든 피자 빵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볶은 양파와 케쳡과 소시지 냄새! 냄새는 순식간에 내 자리로 건너와서 이게 무슨 냄새야 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했다. 여자는 소리를 안 내려고 아주 조심조심 먹고 있었다. (소리가 문제가아니라고!) 나는 약간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창문을 열지 않았다. 여자가 너무 조심스럽게 먹고 있어서 내가 창문을 열면 겸연쩍을까 봐. 분명 냄새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조심스럽게 먹고 있는 걸 보면 엄청 배고팠나 봐. 하고 모르는척했다.


모두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고 이해하려는 편이다. 문제가 된다면 상황보다는 태도에 기분이 상하는 것 같다. 어제 밤 깜깜한 4차선 도로를 손도 들지 않고, 빨리 건너는 것도아니고 네가 멈추든지, 라는 태도로 건너는 여자를 보고 머릿속에서 볼링 핀 넘어뜨리듯 툭 치고 가고 싶은 정도로 화가 났다. 횡단보도에 어린 아이가 있으면 함께 손을 들고 건너는 나다. 운전을 해보면 알겠지만 밤에 속도를 갑자기 줄이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사람이 있다고 차가 자동으로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뻔뻔한 태도가 싫은 것 같다.


얼마 전 수백 개의 생수를 주문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라 택배기사가 며칠에 나눠 올려다 준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기어이 수백 통을 집에 들여놓고 “나 택배기사 고생시키는 여자”라며 부끄러움도 없이 사진까지 찍어 올렸다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뻔뻔 한정도가 아니라 천박한 것이다. 그것을 용감하다고 여기고, 나는 특별하다고 여기는 생각을 싫어한다.


조금 미안해 하는 사람들이 좋다.


그래서 나 역시 금요일 밤 퇴근하는 이 버스 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음을 손에 힘을 주어 흔들리지않게 잡고 있음으로써 알렸다. 당연히 아무도 모르겠지만, 뻔뻔해지기는싫다.


모두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하도 당한 것이 많아서 모두가 얌체같고, 드세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이해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을 거다. 길을 물어볼 때면 알 수 있다. 길을 물어보는 척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모두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막상 길을 물어보면 모두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사실은 모두 친절했고, 이해하던 사람들.

언제나 태도라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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