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러시아 농촌의 풍경들
<아샤 이야기>(안드레아 콘찰로프스키, 1966)를 봤다.
80년대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은 사람 입장에서 소련 시절의 영화를 보는 건, 일단은 무섭다. 아마도 옛날이었으면 <아샤 이야기> 같은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가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한다.
내용도 그렇다. <아샤 이야기>는 아샤라는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다. 좋아하는 남자 사이에서 아기가 생겼지만 (그래서 임신 중으로 나온다) 남자는 결혼할 마음이 (그리고 상황도) 없다. 이 둘의 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아샤를 좋아하는 남자도 등장한다. 이렇게 삼각관계가 한 축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집단농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집단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소련시절의 집단농장에 대해서는 그 옛날 세계사 시간에 비판적인 논조로 배운 적이 있긴 한데, 실제로 영화에서 본 건 처음이다. 농번기가 되면 광활한 토지에 간이 숙소를 마련한 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어디나 사람들이 사는 곳의 풍경은 비슷하다. 노동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잘 나오지도 않는 물을 간신히 씻고는 갓 구운 빵을 먹으며 술 한 잔 한다. 그리고 노동요를 부른다. 내 생각에 노동요는 힘든 상황에서만 나오는 것 같다. 노동을 잊고 현실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힘든 것들이 잠시라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마냥.
예전에 <학이 난다>(미하일 칼라토초프, 1958)를 봤을 때 50년대 소련의 분위기,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모습에 놀랐다. 내가 책으로 배우고 상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아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집단농장의 집단노동을 인간적으로 그린 이야기다. (만약 프로파간다적인 관점에서 만든 거라면, 얼추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나 사람은 살고 사람이 사는 풍경은 대부분 비슷하다. 언젠가 읽었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콜슨 화이트헤드)라는 책에서도 19세기 미국의 흑인노예 커뮤니티 안의 모습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대와 지역을 떠나 우리들은 비슷하다. 대개는 나쁜 것을 가리켜 이야기하지만, 좋은 점도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