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너두 요가 가르칠 수 있어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길 5년째.
친구들이 자격증 따고 정장 맞추며 취업 준비할 때,
나는 시나리오 학원에 등록하고 15만 원짜리 키보드를 샀다. 언제 작가 일이 잘 풀릴지 몰라 정규직과 변변한 알바자리들을 거절하고 글 작업을 우선했다.
대학 시절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카페 노예 경력으로 주 3일 알바를 꿰찰 수 있었지만 카페 알바는 끝나고 나면 글을 쓸 체력이 남지 않아 그만두었다.
‘곧 데뷔하겠지, 일 년 안엔 되겠지’ 막연하게 희망을 품으며 메뚜기처럼 이 일 저 일 단기알바를 다녔다.
어느 날은 모자 장수가 되고 어느 날은 브라자를
팔다가 또 어떤 날엔 경기장 진행요원이 되었다.
3년이면 될 줄 알았던 작가는
데뷔는커녕 공모전도 어려웠고, 어렵게 붙은 공모전은 그렇게 쏠쏠하진 않았다.
300만 원가량을 두 번에 걸쳐 나누어 받았으니.
(영화인 살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단기 알바하러 나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했다. 30분에서 1시간의 휴게시간 동안 값싼 밥집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거나, 구석진 어딘가를 찾아 지친 몸을 앉힐 때면 더 그랬다.
내가 소모되는 느낌. 난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홀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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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데뷔하면 이런 삶이 끝날까?”
“… 데뷔하고도 잘 안 풀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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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는 것 말고도,
이 메뚜기 같은 삶이 끝날 거라는 보장이 필요했다.
요가를 두 번째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한 건
그 때문이었다.
요가는 내가 잘하고 싶고, 꾸준히 즐거운 것이었다.
주 3일 알바는 안 해도 요가원엔 주 3일 다녔다.
글 쓰러 갈 때는 침대에서 책상까지 내 멱살을 잡고
가야 하는데. 요가는 아니었다.
이른 아침(9시는 내게 새벽이다)에 일어나는 건
힘들어도 아사나를 꾸역꾸역 이어간 적은 없었다.
하면 할수록 내 몸을 또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다.
근데 당연한 거 아닌가?
요가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었으니까.
글 쓰는 건 미궁을 헤매는 일이고,
그동안 내가 봐온 요가는 그냥 일방향 길이었다.
미궁은 열심히 달려도 막다른 길을 마주한다. 아무리 길을 잘 찾는 능력을 길러도, 미궁은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요가는 내가 달린 만큼 성장하고,
때로 길이 막혀 보여도 땅을 파서라도 지나갈 수 있다.
오늘은 어제처럼 머리서기가 안 될지라도,
분명히 저번 달보단 낫다.
그런 성취감이 날 숨 쉬게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스스로를 몰아붙인 적 없이 얻은 성취라는 것이다. 매일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야만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는 나는
요가할 때만큼은 날 느슨하게 풀어준다.
여유가 되는 만큼만 한다. 몸을 다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유는 내가 결정한다.
지금도 햄스트링이 찢어질 것 같지만 조금 더 해볼까 용기를 냈을 때, 손을 조금만 더 뻗어도 될 것 같다고 힘을 낼 때,
아득하게 느껴졌던 발가락이 순간 손끝에 닿는다.
바다가 깊은 줄 알고 허우적대다
바닥의 모래가 발끝에 스치는 것처럼,
‘희망이 멀지 않았구나’
깨닫는다.
하지만 안다.
요가 지도자가 된다고 해서 돈을 잘 버는 건 아니다.
글 쓸 시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 과정에 등록하고 나서야 의문을 품었다.
나 그럼 이거 왜 하지?
왜 하필 가난하고 불안한 지금이지?
매트 위에 있는 순간만은 불안하지 않아서?
여러 생각들을 하다, 어쩌면 이건 내가 스스로의 여유를 결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었다.
조금만 더 해볼까,
불안하지만 행복에 좀 더 손을 뻗어볼까.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희망.
어쩌면 속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매트 위 순간의 평화가 내 삶 전부를 평화롭게 만들 거라는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발가락으로
이 땅을 움켜쥐어보고 싶으니까.
그래서 나는, 요가 강사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