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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Jan 14. 2024

뿌옇게 흐려진 기억

그 속의 행복_일상의 기록

수족냉증이 있는 몸을 데우고자 오랜만에 반신욕을 했다.


날이 추워질 때면 어김없이 내 손끝과 발끝엔 성에가 낀다. 욕조에 물 받는 게 귀찮고 매번 이불속에 움츠러들어 몇 년만인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랜만에 몸을 담가본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으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커버린 몸에 비례해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느려 몸의 반도 안 되는 수위에서 비스듬히 누웠다.


물이 채워지면서 부력이 내 팔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몸이 따뜻해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몸이 가볍게 느껴질 때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뿌옇게 흐려져가는 거울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 그때 참 좋았는데.

뿌옇게 흐려져 잊고 있던 마음이 따끈해지는 기억. 문득 삼 남매가 한 욕조에 들어앉아 목욕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좁은 욕조에 세 명이 들어갈 정도로 다들 어렸던 그때, 끝도 없는 상상력을 맘껏 펼치며 욕조는 해적선이 있는 바다가 되기도 하고 거품은 요리가 되기도 했다.


김이 서린 거울은 손가락으로 낙서해야 제맛.(곧이어 샤워할 때 다시 김이 서리면 드러나는 예술작품, 그리고 듣게 될 웃음 섞인 꾸지람) 머리 위로 거품을 쌓아 올리고는 서로를 보고 깔깔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황극에 몰두했던 우리.


목욕의 마무리는 꼭 엄마의 따꼼한 때밀이 타임. 엄살쟁이인 나는 온몸으로 엄마와 씨름을 하고, 문을 열고 나서면 서늘한 공기에 잔뜩 웅크린 몸으로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갔다.


목욕이 끝났을 땐 너나 할 것 없이 손끝이 쭈글쭈글, 여전히 가시지 않은 분홍빛 뺨으로 키득키득 대던 기억이었다.


즐거운 회상을 마칠 때쯤 현실의 내 손도 쭈글쭈글해져  있어 이만 반신욕을 마무리했다. 오늘의 추억여행은 여기까지.


어느덧 무거워진 두 다리와 함께 내가 사는 행성으로 돌아왔다. 한층 더 따뜻하게 덥혀진 몸과 마음으로  이 추위를 견뎌내야지.

.

.

어우 문 열면 추운 건

여기나 그곳이나 똑같네.


상상하며 그려본 일러스트.(내세울 것 없는 솜씨지만 용기내어 그림을 다시 그려요. 종종 글 속에 넣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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