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추억
백파이프 소리가 울리면 내 심장도 같이 울린다.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깊은 뱃고동 소리같기도 하고 거친 바람 부는 언덕에서 숭고하게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스코티쉬들의 백파이프 연주를 듣노라면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도 뜨거운 열정으로 넘쳐 날 것만 같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동화 속 그 이야기처럼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행진하는 자들을 나는 뒤에서 따라가 베이스 드럼이라도 치고 싶다. 바로 옆에서 같이 행진하는 그 특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스코티쉬 타르탄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격자무늬를 이루는 녹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선이 들어간 빨간색의 로열 스튜어트 타르탄을 사랑한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욕심쟁이처럼 혼자만 비밀스럽게 좋아하고 간직하고 싶다. 영국여왕이 사는 나라답게 빨간 타르탄 스커트에 초록의 타르탄 망토를 걸치고 나도 여왕처럼 행세를 하고 싶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는 지금도 초록색이 진하게 들어간 스코티쉬 타르탄 망토를 따뜻하게 걸치고 빨간 타르탄 스커트를 입고 성탄 특별찬양을 위해 교회분들과 함께 공항에서 합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멋진 양복을 갖춰 입은 영국 신사처럼 보이는 스코티라는 애칭이 잘 어울리는 검은색 스코티쉬 테리어를 키워보고 싶다. 언젠가부터 블랙독이 얼마나 멋진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개들도 참 귀여운데 검은색털에 가려져 그 똘망한 검정 눈이 어디 있는지 조차 안 보이는 검정개들이 얼마나 매력 있고 멋진지 모른다. 검정 스코티와 흰색의 스코티 두 마리가 빨간색 리본을 매고 함께 앉아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사랑스럽다. 그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게 된다.
내가 살던 곳은 항구와 맞닿아 있어서 갈매기들이 정겨웠다. 아침이면 갈매기들이 지붕 위를 저벅저벅 걷는 소리가 들리는데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주인집에서 지붕을 수리하려고 올라간 줄로 착각했을 만큼 고 작은 발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지 장화라도 신은 건지 신기해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다보기도 한다. 창문 앞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다.
멀리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갈매를 사진으로 찍고 또 찍어도 자꾸만 멋진 그 자태에 매혹되어 또 찍게 된다.
나는 북풍이 불어올 때면 추운 것이 참 싫으면서도 나를 통과하는 그 강한 바람이 참 좋다. 나를 밀어붙이고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바람이 한껏 불어올 때면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어 눈을 살며시 감게 된다.
양쪽 창문을 다 열었다간 집안의 소소한 물건들이 금세 흐트러지고 떨어지기 십상인데도 왜 그렇게 바람이 집안을 통과하는 게 좋은지 자꾸만 창문을 열어젖히게 된다. 아마도 내가 창을 좋아하고 또 열었을 때 맨눈으로 보는 그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 망원경으로 저 멀리 좋아하는 캐슬(성)도 보고 창문 밖 세상을 망원 렌즈로 가까이 창가에서 구경하는 게 참 재미지다.
기차 안에서 먹던 휘쉬 앤 칩스가 생각난다.
워낙 기차를 좋아하는데 한 번은 기차 시간에 맞춰 방금 나온 칩스를 샀는데 예쁜 점원이 회갈색 종이로 대강 포장해 준 그 뜨끈한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승객이 드문 그 기차 안에서 펼쳐 놓고 먹은 적이 있다. 깜빡하고 소금을 잊었는데 함께 했던 실라 할머니가 역내의 아는 여직원에게서 소금을 얻어와서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바다를 지나며 기차 안에서 그 특별한 소금에 찍어 먹던 휘쉬 앤 칩스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언 브루 호박색 주황색의 탄산음료를 함께 곁들일 때의 그 맛이란 참 황홀하다.
사람은 이렇게 순간순간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게재된 그림은 모두 제가 직접 그린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