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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l 04. 2024

칼과 도마

맘에 드는 칼 한 자루만 있으면 조리도 요리도 즐거워집니다. 칼날은 빠르게 무뎌지는데 그걸 다시 갈아서 쓸 생각만 하지 새로 사게는 안되네요. 플라스틱용기와는 또 다른 맘으로 대하게 됩니다. 버리면 쓰레기라는 점은 같은데도 말이죠. 칼은 들이기 어려운 만큼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신문지로 돌돌 말고 테이프로 봉하고 붉은 마카펜으로 칼주의, 하고 크게 써서 버립니다만 그래도 누군가 잘못 잡고 밟을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칼은 그렇게 단단하면서 왜 그리 쉽게 무뎌질까요. 사용자 탓일 수도 있을 거예요. 맞서는 적이라야 두부, 감자, 파, 호박, 양파 같은 것들인데 말이죠. 질긴 거라곤 고기 힘줄, 오징어 다리 정도일 듯한데요.


칼은 '도(刀)’라는 한자어로 사용되기도 했다지요. 우리말로는 ‘갈’이라는 말로 불렸고요. 갈치가 ' 刀魚'였다고요. 가르다의 발음이 변하여 갈이 된다고요.


칼의 믿을 구석은 도마입니다. 기댈 구석이고 비빌 구석이고 러닝메이트고 욕받이고 화풀이 대상이고 뭐든 함께 할 때 편하고 쉬워집니다. 도마 없는 칼은 외팔의 칼잡이, 힘을 받아줄 대상이 없을 때 그 힘은 허공으로 소멸될 겁니다. 무용하게 스러지는 점점의 장면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칼로 물체를 도막 내어 동강이 나고 토막이 나지요. 또한 도는 '떨어져 있다'는 뜻이 있답니다. 섬(島)이 육지와는 떨어져 있다 하여 사용된 글자인 것처럼요. '막’은 ‘막히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이는 ‘끝까지 떨어뜨리다’ 즉 분리한다는 뜻이고요. 도막에서 도마가 생겼다고 합니다. 꼬리가 도막도막 끊어지는 뱀이 도막뱀 -> 도마뱀이 된 거라고요. (나무도마처럼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피부를 가진 뱀’이라는 뜻에서 도마뱀이 된 것일 수도 있답니다)


믿을 구석이 있으신가요. 화내고 장난치고 해도 다 받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최고 행복이고 행운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주고받는 맛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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