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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ul 20. 2024

좌배롱 우배롱

우체국 주차장 입구에는 좌배롱 우배롱입니다. 배롱나무 두 그루가 사랑스럽게 피기 시작했어요. 우배롱은 꽃다발처럼 푸짐한데 좌배롱은 필까 말까 조금만 피어 볼까, 하고 있어요. 매년의 상황이 이러합니다.


우체국 짓고 주차장 만들며 동시에 식목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거의 같은 토질에 바람과 해가 함께 했을 텐데 말이죠. 왜 이리 확연히 차이가 나는지 배롱나무들 스스로는 알까요. 나무에게도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서요.


만개가 좋을 일인가,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요. 그저 필 수 있는 만큼 피고, 못 필 것 같으면 애쓰지 않는 것이 당연스러운 일입니다. 애쓴다고 더 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안식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되면 되는 대로 하고 안 되면 다음 기회에,라고 결론 내립니다. 배롱나무 말고 저 스스로요. 사랑도 일도 삶도 글도 휴일도 다요.


너는 꿈을 꿨다

더 이상 내가 너를 바라보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오래 잡지 못하거나

혹은 남들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거나

너를 좋아했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남자들이 너를 왜 힘들게 했고

네가 죽고 싶을 때마다

그 마음을 숨긴 채 노래 가사를 적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꿈에 대해 말한 그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손을 오래 잡을 수도

걷는 동안 서로의 보폭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죽고 싶을 때마다

그 마음을 숨긴 채 너에게 시를 읽어 주거나

나를 좋아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여자가 나를 얼마만큼 이해했고

나는 그 여자를 생각하며 어떤 시를 썼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는 그러지 않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였고

너는 이어폰을 꺼내며 나의 귀에 꽂고

아무런 주저 없이 음악을 틀었지만

나는 그때서야 내 생일인 걸 알았지

이 음악을 들으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고

너는 말했지만

이 거리의 순간에 서서

네가 나한테 음악을 들려주고

선물을 건네고 생일 축하해요, 말하고

축하 노래를 부르며 내 이름 앞에 사랑하는, 수식하는 것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너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언젠가 네가 지나간 꿈이 아닌 꿈으로 특별해질 수 있다면

나는 너의 꿈이 되겠다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되거나

죽고 싶을 때는 꿈속에서 오랫동안 다른 세계에 머물고

네가 적는 가사의 일부가 되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음악이 계속 흐르는데

우리는 이 사람 가득한 거리에서 제외된 유일한 악몽이었다

-양안다, 축하해 너의 생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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