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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피스는 무슨

by 김박은경

아침부터 이상했다. 혼자 타고 앉은 버스는 신호가 오기도 전에 멈추고, 텅 빈 정거장에서 오래 쉬다가 신호가 와도 망설이다가 출발했다. 오늘 왜 이래, 이러다 늦겠네, 마음은 분주해진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바쁘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하려고, 다 잘 해내려고 뛰어다닌다. 전체를 바라보면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고 싶지 않지만 습관이 되어버려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내 착각이지만. 그러는 사이 지칠 텐데, 괜찮다. 이너피스,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오른 걸음에 숨 쉬고 왼 걸음에 숨 쉬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힘들어도 힘든 걸 모른다.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친다. 핑. 나사가 빠진다. 실책을 범한다. 수습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실망도 하지 않는다. 이너피스, 이너피스, 다 지나갈 거니까, 하면서 하던 일을 한다. 그렇지만 간단히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혼자 사는 세상 아니고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내가 빠뜨린 나사는 어딘가 엄한 곳으로 떨어진다. 그것이 선반이라면 무너질 수밖에. 잘하려던 마음이 일을 망친다. 나의 일도 아니고 모두의 일을 망쳐버린다. 누군가 화를 낸다. 왜 그랬냐고 힐책한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네. 그 순간에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너피스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너피스의 맹점이다. 너무 평화로워서 현실적인 판단을 못한다. 이너피스가 그런 게 아닌데. 어떤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 자위하는데 그게 가장 비이성적인 모습이었다. 퇴근하고 밤이 되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이너피스의 나사도 빠지고 그 자리에 자책이 들어선다. 이너피스가 아니라 완전한 이성 실조(失調)였다.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 이럴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고라는 걸 알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은 할 수가 없다. 실점을 득점으로 바꾸고 싶다. 커피를 마신다. 영양제도 먹는다. 책상에 앉는다. 이렇게 하루를 망친 채 접을 수는 없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밤 열두 시, 배가 고프다. 제대로 먹은 게 없네. 뒤적뒤적, 밥이 먹고 싶다. 김치볶음밥 남은 게 있다. 따뜻하게 데워서 치즈도 한 장 얹어서 야무지게 천천히 씹어서 삼킨다. 어쩐지 속이 편할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먹는다. 너무 졸려서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잠들기를 바라면서 더 버티다가 눕는다. 배가 아프다.


이너피스의 몽환성. 이너피스에 대한 나의 몰이해. 너무 욕심을 부렸다. 다 잘하려고 커버 치려고 활짝 펼치는 순간 어딘가 찢어진 기분. 그게 날갯죽지 같기도 하고. 그러면 날아갈 수 없잖아. 이너피스는 무슨, 정신을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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