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궁사의 소원 리스트
영종도에는 백운산이 있고, 백운산에는 용궁사가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높지도 멀지도 않지만 좁아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갑니다. 운이 좋아야 단번에 올라갈 수 있어요. 운전 실력이 나은 사람이 후진을 해주고 오르락내리락 식은땀을 흘리고 나면 고요한 사찰입니다. 일주문은 없고 범종각이 나옵니다.
용궁사, 산 위의 용궁입니다. 궁이라고 하지만 왕은 없고요. 영종도 앞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사내의 그물에 거푸 걸려 올라오던 옥부처가 절 이름의 배경이라지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며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 명명, 그 후 구담사로 불리다가 조선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되면서 용궁사가 되었습니다. 세도정치의 풍랑을 피해 영종도에 자주 들른 대원군이 이곳에 머물렀고, 요사채 정면에는 그가 쓴 편액이 걸려있어요. 먼 길을 달려왔을 그를 안아준 것은 제 눈앞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였을 겁니다.
이 나무의 이름은 할아버지 할머니 느티나무입니다. 연세는 1300살 정도, 높이는 20m에 둘레가 5.63m. 할아버지나무가 할머니나무보다 조금 크십니다. 겉으로만 보면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같아요. 몸통이 텅 비어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 어른 몸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내부가 사라진 채 어떻게 견디시는 걸까요. 물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월이 더 흐르면 두 나무의 가지가 자라 손이 닿을 거라는데 제 눈에는 이미 닿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허기진 요귀처럼 보입니다. 선정에 드신 부처처럼 보입니다. 불가사의한 증명 같고, 이미 사라진 흔적 같은데 여전히 푸른 잎들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늙은 가지에서는 잎이 나올 수 없다지요. 늙은 가지가 새 가지를 만들어내고, 새 가지에서 잎이 나오는 거라고요. 이 나무들은 어느 한 구석 늙지 않은 가지가 없어 보여요. 마을의 당산나무, 인천시 기념물 9호로 지정된 나무에 대한 설명 말씀을 듣기도 전에 두 손을 모아 절을 하게 되더라고요. 앉은 자리 주어진 경계 안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운행하고 계셨으니까요. 어루만지고 뺨을 대고 감싸 안고 싶었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도 저와 같은 마음인지 나무를 지키는 밧줄 위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관음전에는 수월관음도가 있고요. 그림 속 관음보살은 역삼각 기암괴석 위에 앉아 계셨는데 오른쪽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화병이, 왼쪽에는 한 쌍의 대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19세기 유행했던 형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도교적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고요. 축현과 종현이라는 화승이 3폭의 비단을 이어서 만들었는데 시주자가 상궁을 비롯한 여러 궁중 인물들인 것으로 보아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앞에는 금불상이 계시고(원래는 옥불상이 계셨는데 일제에 의해 도난당했다고) 그 아래로 옆으로 작은 불상들이 계시고, 그 아래로 생년월일과 성명과 소원을 적은 발원문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문지방 아래에는 댓돌이 있고 댓돌 위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디딘 것일까요.
사찰 뒤편에는 키가 11m 남짓 되는 흰 미륵불이 계시고요. 그분의 뒤편에는 소원바위가 있습니다. 중심에는 낮고 평평한 역삼각형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둥그스름하고 갸름한 돌이 세 개, 하나는 아주 크고 둘은 그보다 작았습니다. 조사 자료로는 돌이 둘이었는데 큰 돌이 더해졌더라고요. 두 개의 돌이 하나의 돌을 낳았을까요. 낳은 돌이 무럭무럭 자란 것일까요. 원래 셋이었을까요. 저 돌들이 사람들의 소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까요. 기와에 연등에 적힌 수많은 소원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물 위에 쓴 불의 글자처럼 보였습니다. 환히 타오르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바람마다 모두 이루어지기를, 이루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보자 늘 믿는 대로 될 거야/ 000 MED 합격 기원합니다/ 가족 모두 건강 화목/ 시험 합격 기원 가족 모두 건강 기원 결혼 인연 평생 가게 해주세요/ 만수무강 소원성취 재물운/ 000 극락왕생 사랑합니다/ 건강발원 합격발원 기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수능기원 원하는 대학 가길/ 구성원의 건강 행복 부를 성취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000 합격/ 000 본부장 기원/ 건강하고 행복하길...
5. 이규상의 「인주요(仁州謠)」, 「속인주요(續仁州謠)」
선비 이규상은 18세기 중반의 인천을 노래합니다. 인천부사였던 부친 이사질(李思質)과 인천도호부 안채에 기거하면서 인천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조선시대 지방에 간 서울 양반들이 임금을 향한 충성의 마음이나 시골 자연의 풍류를 노래했다면 이규상은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관찰해 시로 남겼습니다. 명문가 집안의 양반이지만 하층민과 접촉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고 합니다. 천시하던 갯가의 염부(鹽夫)며 외딴섬에서 말을 기르는 목자(牧子)를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1413년 왕이 내린 ‘인천’ 대신 민가에서 널리 쓰이던 ‘인주(仁州)’라는 지명을 쓴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인주요」를 신영산의 한글본을 참고로 읽어보았습니다.
인주 고을 풍속은 궁벽한 시골과 유사하니
높으신 벼슬아치 옥당에 있음을 모르더라
아낙들은 풀 광주리 머리에 이고, 사내들은 털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해가 뜨면 조개 캐고 물고기 잡으러 급하게 나선다네
단오가 지난 뒤에 열흘 정도가 지나면
바로 이때가 준치가 포구로 올라올 때로구나
말을 탄 장사꾼과 배를 탄 장사꾼들이 오고 가니
푸르른 바닷가가 번성하여 화려하게 꾸몄도다
말뚝에다 발을 엮어 지나는 바닷물을 끊었으니
겹겹으로 이어 놓은 어살 안이 내성(內中城으로 표현)이 되었네
바닷물 밀려왔다 밀려가는 아주 잠깐 사이에
소라와 게, 생선과 새우까지 가득가득 모였구나
숭어를 잡아끌어 올리려니 한 자가 넘었구나
별안간 손을 날려 머리를 찾아내어 매달려니
재빠르게 달아나니 특별한 포구에 잠긴 몸이 드러나서
혹여나 어살 친 주인에게 보일까 두려워함이라네
어린 대합은 얕은 데 묻혀 있고 큰 대합은 깊게 있고
낙지가 숨은 구멍 묘연하여 찾기가 어려워
포구의 아낙들은 다투어서 쇠갈퀴를 움켜쥐고
촘촘하게 뻘밭 파니 바늘로 찌르는 듯하구나
벌집인 듯 제비집인 듯 소금 삶는 부엌이 늘어 있고
소금 솥에 소금이 말라가니 흰 눈처럼 퍼졌구나
바닷물에 기대 사는 삶이라고 그대는 비웃지 마소
세상 모든 백성들이 두루 먹는 소금을 구함이네
사월에 부는 바람 온화하고 파도가 잔잔하니
세미 실은 수많은 조운선 일시에 지나가네
대포 소리 울려 퍼져 붉은 깃발 허공에 일렁일 제
나룻터의 관리들은 북 던지듯 재빠르게 배를 맞지
손돌의 무덤 앞에 밀물이 벼랑에 부딪히니
손돌의 혼 마침내 바다의 신선이 되었다지
뱃사람들 예 이르러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지만
바람 파도 그치지 않았거니, 화도 복도 주었구나
용유도의 최상품은 용처럼 보이는 말이라지만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사이로 뼈가 솟아 야위었네
목동이 찾아왔지만 헛되이 자취만 보았는데
구름 오르고 우레 치니 바다와 산이 함께 얽히더라
-이규상의 「인주요(仁州謠)」
전체 9수는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는 일상-준치가 잡히는 단오 무렵의 풍경-어살을 놓고 물고기 잡는 풍경-숭어를 잡는 장면-아낙들이 대합이며 낙지를 잡는 갯벌-염전 풍경-시월의 바다와 관리들-손돌 무덤에 지내는 제사-용유도의 목장과 말 등의 묘사로 이어집니다. 영종도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그려질 것만 같습니다.
1수의 계절인 단오에서부터 8수의 계절인 겨울까지 이어지는 노래입니다. 손돌은 고려가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파천하던 시기,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인데요. 제사를 지내 그의 억울한 한을 풀어줌으로써 배의 안전 운행을 빌었다고 합니다. 시에서의 ‘어살’이란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갯벌에 치는 나무 울타리더군요. 물이 들어왔을 때 놀던 물고기가 물이 빠져나가면 잡히는 방식이지요. 숭어는 봄에 많이 올라오는데 안개가 낀 날에 많이 잡혔다고 합니다. 어린 대합 큰 대합의 이야기에서 백합조개는 겨울잠을 자는데 한 자 이상 깊이 들어간다지요. 한자라면 30cm는 된다는 건데요. 봄이 오고 아지랑이가 피면 숨구멍을 뚫고 솟구쳐 올라온다고 해요. 바로 그때 잡았겠지요.
이규상의 「속인주요(續仁州謠)」도 인천의 면면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 9수의 구성은 단오에 잡을 수 있는 방게-능허대 백사장의 해당화-조개를 잡다가 진주를 발견하는 일-바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동이며 발해, 소정방 이야기-어부와 염부들의 제사 이야기-무당과 박수들에게 복을 비는 일-굿이며 제사를 지내는 장면-굿판의 장면-백성들의 삶과 선비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진은 ‘영종도 쑥개 재수굿’ 장면인데요. 사진 속 모습 같은 만신님이 그 시절 인주에서도 함께 하셨겠지요.
6. 영종도 염전
‘인천 짠물’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여러 해석이 있는데요. 인천 사람들이 워낙 각박하게 살다 보니 인색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요. 인천 사람들의 당구 실력이 이기기 힘들 정도로 매우 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요. 이에 대해 인천시립박물관 기획특별전에서 ‘인천짠물에 대한 해명’(2010)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결론은 ‘소금’이라는 거죠. 염전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이규상의 시가에도 등장하고요. 영종역사관 마당의 자연도원 표지석에 새겨진 이곡의 시 ‘차자연도(次紫燕島)-자연도를 지나며’에도 등장합니다. 이곡의 시를 한글 번역본으로 옮겨볼게요.
뱃길 따라 지나가다 자연도를 옆에 두고
뱃전을 노로 치며 한가로이 읊조리네.
갯벌은 반반하게 전자(篆字)처럼 무늬지고
돛대는 비녀처럼 배 위에 꽃혔구나.
소금 굽는 연기는 가까이서 흘러오고
먼 산 위로 떠오르니 바다의 달이로다.
조각배에 실린 이 흥 내 잊지 않으려니
다른 해 다시 찾기 다시금 헤아리누나.
-이곡, 차자연도(次紫燕島)-「자연도를 지나며」
‘소금 굽는 연기’라는 대목에서 자염(煮鹽)의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염은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는 방식인데요. 1940년대에도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었답니다. 매립방식의 천일염전 이전에도 영종도는 염전의 땅이었고요. 인천공항이 들어서기 전 영종·용유지역의 경제는 '염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주변 갯벌은 수심이 얕아서 둑을 쌓고 매립해 염전을 만들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천일제염은 1907년 인천의 주안염전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영종도 염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실향민'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영종도에 많은 실향민들이 정착하였고, 이들은 염전을 축조하고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영종도에서 가장 큰 염전은 '금홍염전'과 '건대염전'이었다고 합니다. 금홍염전은 현재 영종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인천대교 방면인데 인천공항이 건설되면서 폐쇄되었고요. 염전 중 현존하는 것은 동양염전이라는 설명의 글이 영종역사관에 있었어요.
그 말만 믿고 영종도 유일한 염전을 찾아 나섰습니다만 염전은 없더라고요. 그 이름의 카페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카페 앞마당의 고인 물이 염전의 자취인가 물어보았으나 아니라고 했어요. 어딘가 무엇인가 흔적이 있는가 물었으나 없다고 했습니다. 카페 쟁반을 덮는 1회용 종이의 염전 그림과 소개가 전부라고요. 허전한 마음으로 나가보니 카페 둘레에 붉은 칠면초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래염전에서 보았던 염생식물이지요. 이들은 해안습지의 기초 생산자로 동물들에게는 먹이를 제공하고 토양 침식을 방지하며 유기물 퇴적과 오염물질을 정화시켜줍니다. 붉은 그 풀이 바다의 유일한 증거라고나 할까요. 달콤한 케이크가 어쩐지 쓰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좀 모아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소래갯벌체험장의 염전처럼 현장감을 살려서 남겨둘 수는 없더라도 ‘소금창고’라던가, 발판을 밟아 바닷물을 밀어 올리는 ‘수차’라던가 하다못해 소금을 끌어 모으는 밀대인 ‘대파’ 같은 것들도 좋고요. 현물이 안 되면 사진이나 그림으로라도 남겨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닌가, 아니지, 그렇게 하려고 하셨으나 아직 모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요. 우선 장소와 이름을 보존하고 차차 준비하시는 중일 수도 있겠어요. 이렇게 남겨진 것만도 정말 다행이니까요. 응원과 기대를 더해 봅니다.
이형상(1653~1733)의 「영종팔경(永宗八景」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각의 경치에 여덟 글자의 시구가 이어집니다.
1경 백운청람(白雲晴嵐) 백운산의 맑은 아지랑이
2경 자연제월(紫煙霽月) 갠 날에 자연도에 뜨는 달
3경 삼옥낙조(三玉落照) 삼목도에서의 낙조
4경 팔미귀범(八尾歸帆) 팔미도로 돌아오는 돛단배
5경 가라과농(迦羅課農) 절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6경 구담방석(瞿曇訪釋) 구담사의 스님을 찾아가서
7경 송산방목(松山放牧) 송산에서 소를 치며
8경 동강조어(桐江釣魚) 동강에서의 낚시
1경의 백운산은 용궁사가 있던 절이고요. 2경의 자연도는 영종도를 말하지요. 3경의 삼목도는 연육교의 개통으로 이어진 영종도와 용유도의 부속 도서입니다. 4경의 팔미도는 영종도와 멀지 않고요. 5경의 절은 용궁사일 겁니다. 6경의 구담사는 용궁사의 옛 이름이고요. 7경의 송산은 영종도 씨사이드파크 영종도 역사관 근처이고요. 8경의 동강은 영종도 동강마을일 것 같습니다. 영종팔경 리스트를 들고 영종도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영종도 여행의 마무리는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로 했습니다. 로비는 커다란 갤러리 같습니다. 금빛과 핏빛이 함께하는 페가수스는 데미안 허스트의 「Golden Legend」, 노란 호박은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ant Pumpkin」, 어깨 위에 푸른 공을 이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제프 쿤스의 「Gazing Ball」입니다. 그 외에도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고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호텔 안에 보고 먹고 놀 것이 넘치니 이 섬의 지난 시간에 대해 알고 싶어질 틈도 없겠어요.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영종팔경(永宗八景」 2경의 ‘갠 날에 자연도에 뜨는 달’을 보고 싶었지만 안개 낀 날에 자연도(영종도)에서 지는 해를 보고 있네요. 집에 도착하니 어두워진 하늘 끝으로 손톱달이 떠있더군요. 영종도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참고도서>
김연명 외, 『스무살-인천공항 이야기』,북치는 마을
김헌선, 『인천 영종도 쑥개 재수굿 무가집』, 2009 보고사
이희환, 『문학으로 인천을 읽다』, 작가들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인천의 갯벌과 간척』, 2009
허영만, 『식객』, 김영사
조우성, 『인천이야기 100장면』, 도서출판인아트
이세기, 『잡어의 어장고 인천어보』, 국립민속박물관
김상열, 『모든 것은 역에서 시작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티스토리 신영산, 국어선생으로 살기 “인천의 옛문학, 이규상의 ‘인천의 노래(인주요)’”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인천역사문화총서 45 『바다와 섬, 인천에서의 삶』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음」
인천일보, 2019.03.29. “그리울 그녀의 ‘나나니타령’”
경인일보 인천본사 특별취재팀 지음, 『격동 한세기, 인천이야기 상, 하』, 2008 다인아트
경인일보, 2014.02.06. [책 읽는 인천, 문학속 인천을 찾다] 서민 생활상 담아낸 ’선비의 노래‘
경인일보, 2019.09.24 “작약도 본래 이름 ‘물치도’ 되찾자”
경인일보, 2022.09.13. [新고려도경] 5. 송사절단이 오간 인천 앞바다 항로를 추적하다
http://www.youtube.com/user/icncityhall 인천광역시 공식 유튜브
-“2021 풍류 온, 전통문화예술한마당(인천근해갯가노래뱃노래)”
www.urisori.co.kr 인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나나니타령
http://www.youtube.com/channel/UCLun70K2W1p996rzm2E87vw
-잔치마당 나나니타령(인천근해갯가노래보존회)
*위의 글은 <학산문학> 2022 겨울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