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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Oct 19. 2022

36. ‘소외(疏外)’의 의미

삶은 의미다 - 36

소외(疏外)’는 어떤 무리에서 꺼려 따돌리거나 멀리한다라는 일반적인 뜻이 있다. 疏(소통할 소)는 뜻을 나타내는 疋(짝 필)과 소리를 나타내는 㐬(깃발 류)가 합쳐진 한자로 ‘통하다’, ‘멀다’, ‘친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外(바깥 외)는 夕(저녁 석)과 卜(복 점)이 합쳐진 글자로 ‘점은 동틀녘에 치는 것인데 저녁(夕)에 점(卜)을 치는 것은 일에 있어 벗어난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바깥’, ‘밖’, ‘겉’ 등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이다.

우리는 소외란 말을 누군가를 배제시킨다, 고립시킨다, 따돌린다 정도의 일상용어로 사용하지만, 철학적 의미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이고,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적 의미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를 말한다. 전자는 배제의 의미이고후자는 전복(뒤집히다)’의 의미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소외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들(상품·제도 등)이 오히려 인간에게서 멀어지고결국엔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나타남으로써 인간은 자신들의 본질을 잃게 되고 종속된다는 학설이다. 이러한 소외의 개념은 철학적 종교분석에 근원이 있다.

일부 사상가는 종교를 소외현상으로 보았다. 신이 인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라는 것에서 시작된다. 기존의 지배적인 학설인 창조설을 완전히 뒤집고, 신의 존재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소망, 좌절과 절망을 외부에 투사한 존재라고 본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신이 인간에게서 점점 멀어지더니 하나의 독자적으로 존재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나아가 인간이 신을 경배하는 역전된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본래의 의 필요로 생겨나 의 것이었는데이것이 점점 로부터 멀어져 낯설어지더니 어는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이제는 역으로 를 지배하고, ‘는 그것에 종속되는 전도현상을 소외라고 부른다간단하게 말해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잃고 비인간적인 상태에 빠지는 상태이다. 

현대는 많은 부분에서 소외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돈이다. 돈은 인간이 교환의 편리를 위해서 발명된 것이지만, 교환의 수단을 넘어 돈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는 아예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 버렸고, 인간은 돈을 숭배하고 있다. 오죽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화폐라고 일갈했겠는가.

미디어 역시 대표적인 소외현상입니다. 미디어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서 마치 독자적인 세계인 양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밟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교육에언론과 미디어에과학기술과 인공지능에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거대한 소외에 빠져 종속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거대한 소외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삶이 거대한 소외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데, 전혀 소외되었다고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딜레마다. 어떤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인식해야 하는 것처럼.

소외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배제를 이야기하면서 왕따를 빼놓을 수 없다. 왕따는 집단에서 특정 개인을 따돌리는 일, 또는 그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집단에서 파문(破門)하는 것이다. 1990년대에 생긴 신조어로 그 전엔 집단 괴롭힘 현상을 뜻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 이지메(いじめ)’를 빌려 쓰기도 했다. 특히 학교 폭력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함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부산물처럼 비롯되는 전형적인 사회 부조리 현상이다. 왕따는 사람이 셋 이상 모인 집단이라면 학교, 군대, 직장, 학원, 동아리, 동호회, 심지어는 오프라인과 온라인도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사람이 셋 이상 모인 집단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왕따가 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해당 집단에서 평균치를 현저하게 벗어나는 경우 왕따가 되기 쉽다. 인간은 인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놓고 언급하길 꺼리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다가 여러 가지 능력이나 외모에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성적, 지능, 키, 외모, 몸무게, 운동 능력 등은 대개 정규분포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평균치를 벗어나면 왕따가 된다. 조직의 형성과 유지에 있어서, 눈에 보이게 평균치보다 낮아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왕따라는 형태로 무리에서 배제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드물게는 수준이 너무 빼어날 때 왕따가 발생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빼어난 사람을 추종하여 연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외에도 관심사가 특이한 경우, 막말, 거짓말, 이간질, 잘난 척 등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으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 왕따의 원인이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피해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당한다. 소통 없이 고립되어 더욱더 소극적이고 자신감도 없어져서, 인간관계에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무시 수준을 넘어선 공개적인 폭력, 폭언, 비웃음, 모욕, 명예훼손을 당하게 되면 자존감은 추락하고, 결국 ‘가해자들은 내가 죽어야 미안한 마음에 그만둘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괴롭힘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왕따가 단순히 장난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범죄임을 알아야 한다고양이를 하늘 높이 던지면 나는 장난인데땅에 사뿐히 착지해야 하는 고양이는 죽기 아니면 살기인 것과 똑같다.

사실 예전의 사회에서는 약간의 소외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특히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은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당연히 그 시절의 소외는 어떻게 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따돌림이나 소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일 서로 붙어있어야 했던 시절도 아니었고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서로 계속 연결된 것도 아니었기에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걱정으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나만 빼고라는 소외 공포증이라 할 수 있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역시 소외의 두려움에서 오는 초조함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나만 빼고’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지막 세일’, ‘점포정리 세일’, ‘대박 세일’ ‘100명 한정’ 등 대부분 포모증후군을 자극해서 판매를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나와 조금만 다르면 구분하려는 심리나와 비슷한 사람만 인정하여 하나가 되려는 패거리 의식이 인간에 의한 인간 소외를 가져오는 근원이다. 사랑이 없이 하나가 되려는 소망은 늘 패거리 의식으로 귀착될 뿐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립감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보다 공통점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나를 소외시키는 타인’이 존재해야 고독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혼자’라면 고독도 느끼지 않는다. 소외는 어쩌면 타인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최고의 길이 아니겠는가? 혼자 있는 것을 당하면 외로움즐기면 고독이라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전부 다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 자신과 몇 마디 이상을 주고받거나 어려운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는 친구가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히 성공한 거다. 고독도 즐기면 행복이다소외를 두려워하지 말고고독을 즐기는 삶을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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