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37
‘폭력(暴力)’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을 말한다. 暴(사나울 폭, 모질 포)은 ‘사납다’ 또는 ‘모질다’라는 뜻이고, 力은 농기구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글자이다.
폭력성이란 대개 상해나 파괴를 초래하는 심하고 격렬한 힘, 권력의 행사로 좁게는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을 말하는 단어다. ‘폭력 범죄’라는 용어는 살인, 강간이나 구타와 같이 신체적인 상해를 입히거나 위협을 주는 범죄와 관련된 법률 용어다. 또한, 철학, 정치학 등의 학문에서는 다른 사람 또는 국가나 세력을 제압하는 힘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신체적인 폭력(구타, 고문, 폭행 등)과 언어적인 폭력(모욕, 욕설, 비하, 놀림 등),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사이버 폭력(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주 폭력), 그리고 국가 주도의 폭력이다. (전쟁, 홀로코스트, 수사기관의 고문, 과잉 시위진압, 정치범 수용소 등)
이렇게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 문제는 잘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폭력도 존재한다. 현재 인간이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혜택은 자연에 대한 폭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개발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 생존을 위해 다른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약육강식 세계에서 대부분 생물 종이 그러하듯이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에게 폭력을 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성에 있어서 이러한 폭력의 발생을 본능적·생득적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폭력을 동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가진 생존을 위한 공격 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는 시위나 소동이 벌어지면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고, 그런 사람에게는 폭력을 저질러도 된다는 인식이 생긴다. 시민들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상대를 압박하는 시위를 하거나 소동이 일어나면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폭력을 막을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위나 진압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폭력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에 의존하면 시간도 노력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요구를 쉽게 관철할 수 있다. 폭력이 가장 값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폭력은 인간관계를 해치는 가장 미숙한 행위일 뿐이다. 폭력은 폭력의 진행을 막을 수 있으나 폭력을 근절시킬 수는 없다. 폭력을 통해서 폭력이 계속되는 것을 지체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를 넘어서서 폭력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폭력에 의한 순간의 복종과 같은 변화를 잘 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정당화되는 곳이 있기는 하다. 그게 바로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며 국가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다.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인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치의 과업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하는 폭력’이라는 주장이다. 아무리 국가가 행사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폭력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신중하게 잘 사용함으로써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식에게도 물려주기 싫다는 권력이 걸려 있어서 정치는 언제나 살벌한 대결과 가시 돋친 공격, 분노, 경쟁심, 질투, 굴욕 등과 같은 감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지만, 정치의 본질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기본만이라도 잘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장해 쉽게 행하는 폭력도 우리 사회에 심각하다. 이런 사랑을 빙자한 폭력은 상대에게서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자식을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주는 소유물로 간주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면 자식에게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지 않다면 자녀가 얼마든지 온전한 자기 자신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도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일 뿐이며, 결국 상처만 남기게 된다. 부모는 ‘약’이라고 주는데, 자식에게는 ‘독’이 되는 셈이다. 만약 사랑이 부모의 일방적인 행동으로만 이뤄진다면 그런 사랑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또 하나가 요즘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잘못된 사랑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한 여자에게 계속 구애를 하다 보면 그 여자의 마음을 얻게 된다는 믿음이다. 가끔 이런 남자가 남자답다고 여기고 마음을 주는 여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람을 ‘스토커’라 하고 범죄로 취급하는 사회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신념으로 이루어지는 남자의 구애는 낭만적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정신질환이고, 남자의 용감한 구애 행위라 칭찬받기는커녕 큰 죄가 되고 감옥으로 직행이다. 스토커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랑하는 여자를 쟁취해야 한다는 남자의 집요한 시도가 진정한 사랑인지 뒤돌아볼 수 있어야 멈출 수 있다. 방향이 잘못된 과한 사랑으로 ‘내가 소유하지 못하면 남도 줄 수 없다’라는 극단적 생각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정신질환자들이 자주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을 보면 쉽게 볼 일도 아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 심각한 폭력일 뿐이다.
폭력을 얘기하면서 학교폭력(學校暴力)을 빼놓을 수 없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조에 나오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학교폭력은 절도나 도박 등의 청소년 범죄와는 달리 학생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생활해야 하는 학교를 지옥으로 만든다, 또한 피해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심하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일부 유명 연예인과 체육 지도자들이 학교폭력 미투 운동으로 언급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하지만, 악성루머의 형태를 띠고 있어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일부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은퇴나 자숙의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며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경우까지 간다. 여러 면에서 학교폭력은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학교도 다수의 학생이 공동생활을 하는 작은 사회이기에 일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학교폭력 발생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최선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폭력은 영역을 지키기 위한 것과 종족 번식을 위한 두 가지다. 영역을 지키기 위한 폭력은 종과 관계없이, 종족 번식을 위한 폭력은 같은 종에서 발생한다. 수컷이 교미하는 데 암컷의 동의를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덤벼드는 폭력이거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유혹이다. 힘의 세기를 놀라움이나 울부짖음을 이용한 청각을 활용해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복종시킴으로서 짝짓기에 성공한다. 아름다움으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많은 동물의 수컷이 훨씬 아름답다. 아름다워 천적의 눈에 잘 띄면 잡혀서 먹히기 쉽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한 목숨 건 유혹이다. 한편 종이 같은 동물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수컷의 희생이 가장 컸고, 다음이 새끼가 희생된다. 패배 집단의 암컷은 승리 집단에 편입되어 종족 번식에 기여한다. 인간의 전쟁에서 전쟁에 참여한 남성은 죽고, 여성은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과 너무 비슷해 씁쓸하다.
남을 해치면 우리 자신도 다친다. 세상의 모든 폭력적인 행동은 누군가의 마음속 폭력적인 욕망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다른 누군가의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깨뜨린다. 또한 일반적으로 먼저 분노와 증오가 일어나지 않는 한,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 탐욕과 시샘,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은 우리 마음을 아주 불쾌하게 할 뿐이다. 누군가에 행한 폭력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먹 쥔 손을 내밀어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활짝 펼친 화해의 손길을 내미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