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석연 Oct 29. 2022

38. ‘지식(知識)’의 의미(1. 전통적 지식)

삶은 의미다 - 38

지식(知識)’은 교육이나 경험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를 말한다. 知(알 지)는 무기를 뜻하는 干(방패 간), 矢(화살 시)와 구술로 전수하는 의미의 口(입 구)가 합쳐진 글자로 사냥과 싸움의 경험을 전수한다는 의미에서 ‘알다, 알리다’의 뜻을 가진 한자이다. 識(알 식/적을(기록할) 지/깃발 치)은 뜻을 나타내는 言(말씀 언)과 음을 나타내는 戠(찰흙 시)가 합쳐진 한자로 ‘말(言)을 듣고 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식 또한 비슷한 의미로 쓰이며 고유어로는 ‘앎’이라고 한다.

요즘 인공지능 시스템에서는 많이 사용되는 메타지식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지식을 어떻게 통제하고 사용하는지에 관한 지식이나, 체계의 운영 및 추론 방법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메타지식을 도입함으로써 지식을 계층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지식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식의 기원을 살펴보면, 지식은 인간이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인간은 생존 방법으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생물학적인 방법인 진화를 선택하지 않고, 문화적인 방법인 지식을 택했다. 인간은 개체마다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학습을 통해 불을 다루는 법과 걷고 달리는 법, 몸을 보호하는 법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처음부터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이 점에서 고대의 아이와 지금의 아이가 차이가 없다. 이것이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능력을 타고나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동물들보다 현저하게 긴 양육 기간을 갖게 되었고, 바로 그 결정적인 약점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자연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진화보다 학습이 더 빠르고더 유연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진화를 선택한 숱한 생물들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지만, 인간은 꿋꿋이 살아남아 그들을 지배하는 존재가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습이 진화보다 변화에 더 잘 적응하게 해서 생존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지식의 전통적인 개념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오면서 문제를 해결한 결과들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은 철학, 예술, 수학, 과학 등 모든 것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학문, 즉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은 인류가 이루어 놓은 가장 위대한 지식이다.

인간이 교육을 통하여 알거나 알아가는 것들은 크게 사실과 지식으로 나뉜다. 사실은 구체성을 띠고, 지식은 추상성을 띤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영국의 교육학자 스펜서(Spencer, D. E.)는 교육의 목적은 사람에게 완전한 생활을 준비시키는 데 있으며개인이나 사회생활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지식을 얻고이 지식을 이용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했다. 더불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으로는 직간접적으로 자기 보존에 유용한 지식, 자녀 양육에 필요한 지식, 사회나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유용한 지식, 취미나 감정의 만족에 유용한 지식을 제시했다.

사람은 태어나는 개체마다 선사시대부터 누적되어온 지식을 처음부터 따라잡는 일을 매번 반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은 누구나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자기가 사는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에 스스로 다가가야 한다. 이 일을 우리가 학습이라 하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잘 해낸 개인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배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다양한 지식으로 무장해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고, 돈과 명성,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된 이러한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보다는 공허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작은 지식으로 잘난 척하다가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알고 있는 지식에 시대적 상황과 미래의 비전과 주변의 변화를 적용하여 원하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 참된 지식인의 몫이다.

지식은 나와의 교감이다. 책을 읽었다면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읽은 책의 내용이 체화되어서 나의 내면에서 진정 우러나와야 한다. 그 지식이 나와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 소화됐느냐가 중요하다. 영롱한 아침 이슬을 먹고 우유를 만드는 젖소와 독을 만드는 뱀과 같이. 바르게 체화되지 않는 지식은 무용하고, 나아가 사회의 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똑똑하지 않은 사기꾼을 봤는가?

도플러는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에게 순종하게 하는 요소는 힘, 돈, 정신의 세 가지가 있고, 인류의 문명을 관통하는 보편적 권력이 힘()에서 돈으로, 그리고 돈에서 지식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권력의 원천은 주로 힘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돈이, 그다음에는 지식이 점차 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래의 모든 인류 조직에서 전개될 권력투쟁의 주도권은 지식이다. 지식이 과거에는 돈과 힘의 부속품이었으나 이제는 역전되어 본질이 되었다.

전통적인 세계관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자원이 원재료와 에너지 두 종류의 자원만 존재한다고 보지만, 실은 지식을 더하여 세 종류의 자원이 존재한다. 원재료와 에너지는 고갈되는 자원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반면 지식 자원은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성장 자원이다. 실제로 당신이 지식의 총량을 늘리면 그 지식은 당신에게 더 많은 원재료와 에너지를 준다. 당연히 미래의 주도권이 지식으로 이동하는 이유이다.

20세기가 전문 지식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창의적 사고의 시대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그것은 창의적인 천재들이 예전에는 가난에 시달렸던 것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고 있다는 사실로도 입증되고 있다. 

창의성은 오늘날 이미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육에서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서로 다른 사물이나 사건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다른 무엇보다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지식 폭발은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지식의 폭발은 이집트에서 발명된 파피루스가 그리스 땅에 수입되어 매체의 혁명을 일으켰다. 지식의 폭넓은 확산과 공유, 그로부터 일어난 융합의 결과였다. 또 한 번의 매체 혁명이 15세기 인쇄술의 발명으로 다시 일어났다. 이는 과학혁명과 계몽주의가 상징하는 ‘두 번째 지식의 폭발’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인터넷과 정보기기의 발달과 함께 한 번 더 맹렬하게 불붙고 있다. ‘세 번째 지식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의 정보혁명에 따라 지식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 첫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식의 폭증이다. 컴퓨터의 속도는 18개월마다 2배로, 2030년에 지식은 3일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식의 빅뱅(big bang) 시대다. 둘째로, 지식의 소재와 성격이 바뀌고 있다. 지식의 네트워크화가 이루어졌고,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육과 전수가 아닌 검색과 전송의 내용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식의 수명 단축이다. 지식, 전문가, 대학의 종말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이제 생각의 시대이다.’라는 말도 있다. 컴퓨터와 휴대용 통신기기가 보편화되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전문가들만이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을 신속하게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혁명이 불붙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획일적 사고 대신에 융합과 다각적 사고가 시대적 요구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식의 분화가 아니고 융합이라는 말이다.

요즘 엄지 세대들은 두 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손에 든 뇌(핸드폰컴퓨터 등)와 다른 하나는 머리 안에 든 뇌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학자, 전문가, 지도자들이 만들어서 도서관, 강의실, 영화관, 음악당에 쌓아놓은 정보와 지식을 손에 든 뇌 안에 넣어서 다니면서 언제든 정보와 지식을 검색하고 전송하면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든 뇌에서는 손에 든 뇌의 것을 꺼내어 새로운 전망과 거시적이고 지혜로운 판단합당한 지식을 생산하면 되는 것이다.

정보혁명의 결과 교육을 통해 자신의 시대까지 누적된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을 의존하여 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것들은 네트워크 안에 넘쳐나는 데다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수명마저 짧다. 지식이 정보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세상이 점점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갈등과 불화로 점철된 인류의 불행한 역사는 학벌과 지식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반복된다. 우리 일상에서도 사람이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이는 분명 많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 배운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이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 지혜가 된다. 검색의 대상인 지식의 언덕을 넘어 지혜의 피안(彼岸)으로 다가가시길~!



https://brunch.co.kr/@dd05cb7dd85a42c/539

이전 07화 37. ‘폭력(暴力)’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