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기우(杞憂)’의 의미
삶은 의미다 - 39
‘기우(杞憂)’란 말은 기인지우(杞人之憂)에서 나온 한자어로 쓸데없는 걱정을 뜻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들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옛날 중국의 기(杞) 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땅이 꺼지지 않을까?’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杞(나라이름 기)는 중국의 기(杞) 나라를, 憂(근심 우)는 ‘근심’ ‘우려’를 뜻한다. 걱정과 같은 말로 쓰이는 한자어 ‘염려(念慮)’란 단어가 있는데, ‘염(念)’은 딴생각이고, ‘려(廬)’는 생각하는 것이 너무 깊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걱정하다’는 영어로 ‘worry’인데, 여기에는 ‘괴롭히다’라는 뜻도 있다. 말 그대로 걱정을 하면 할수록 괴롭다는 것이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다. 생각은 자연 발생적이라 피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근심과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내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심연으로 빠지게 되고, 부정적인 걱정의 바다에 빠지게 되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은 불면증이다. 생각이 하나 떠오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걱정)들이 따라 줄줄이 걸려 올라온다. 이런 근심과 걱정, 불안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 22%는 아주 사소한 걱정, 4%는 우리가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기우와 불평불만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정장 오늘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있다. 걱정과 근심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당기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 줄기와 같다. 걱정은 걱정을 낳고 근심은 근심을 낳는 법이다.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울 때면 자주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개는 밥 먹을 때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잘 때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개야말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순간에 산다는 말이다.
걱정의 시점은 과거와 미래 두 가지다. 대부분의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다. 반면 과거의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도 사실은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걱정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걱정의 96%는 기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미래의 모습에 대한 염려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 염려 때문에 현재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다. 미래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을 온전히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올바른 대처 방법이다. 걱정만 한다고 다가올 미래가 바뀌지 않으며, 그 무거운 마음이 짐이 되어 지금이 행복하지 않게 된다.
티베트의 ‘해탈의 서(序)’에 나오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도 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걱정이 있는 것도 걱정, 걱정이 없는 것도 걱정, 이렇게 걱정을 하는 나도 걱정 등, 실제로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파묻혀 산다. 하지만 일상 속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해서 걱정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 무엇이 금방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고달픈 삶인가.
걱정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무력감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걱정과 두려움은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반면 적당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긴박감 넘치게 만든다. 우리를 더 멀리 가게 만드는 연료가 되어줄 수도 있다.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미래의 모습에 대한 염려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 염려 때문에 현재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얼룩지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 걱정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걱정에 대처하는 유일한 자세는 ‘쓸데없는 걱정(杞憂)’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걱정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근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처음부터 좋아하고 즐거워함이 없다면 근심과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걱정의 근원이라는 말이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걱정을 뭐 하려 하겠는가. 특히 사람에 대한 근심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커진다. 그 대상이 사랑하는 자녀이든, 배우자이든, 부모이든, 여인이든, 내 목숨보다 소중한 이 앞에선 우리는 꼼짝 없이 약자가 되고 만다.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고, 미래를 염려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근심과 걱정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삶이 피폐해질 정도로 심한 걱정이 기우인 것이다.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자꾸 하거나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성격상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걱정이 늘어난다. 걱정과 근심은 믿음이 부족하면 시작된다.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만이 쓸데없는 걱정의 최대 예방약이다. 어찌 삶에 걱정이 없겠는가? 하지만 기우(杞憂)는 우리 영혼을 갉아먹을 뿐이다.
우리는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걱정’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맑은 날이면 우산을 파는 아들 걱정, 비 오는 날에는 짚신을 파는 아들 걱정, 하루도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날이 없었다는. 어느 날 지나가는 나그네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어 맑은 날이면 짚신 장사 아들이 돈을 벌 것이고,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장사 아들이 돈을 벌 테니 매일매일 좋은 일이라 여기고 어머니는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걱정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다.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걱정거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 걱정거리를 안고 끙끙 앓으면서 자신을 못살게 구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걱정을 대하는 자세와 너무 깊은 기우가 문제일 뿐이다. 어떤 학자들은 ‘걱정을 털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걱정을 마음속에 묶어두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권장하는 것이다. 하염없이 걱정을 늘어놓는 것이 우울증 등 심신의 질병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걱정의 대부분은 바꿀 수 없는 것을 공연히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에서 빼버리면 걱정거리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걱정의 나머지 부분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서 온다. 이 두 가지의 큰 고민 덩어리를 제하고 나면 나머지는 극히 소소한 것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할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은 빠르게 결정하는 결단성을 가져야 평안한 마음을 갖고 행복할 것이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번잡함이 없는 마음의 가벼움에 있기 때문이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에 파묻혀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기를~!
Don't wo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