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40
‘청춘(靑春)’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靑(푸를 청)은 生(날 생)과 丹(붉을 단)이 합쳐진 글자로 ‘푸르다’, ‘젊다’, ‘고요하다’를 뜻한다. 春(봄 춘)은 사계절 중 봄을 뜻한다. 봄 이외에 ‘젊음’, ‘성욕’ 등의 의미도 있는데, 청춘(靑春), 매춘(買春)이 대표적이다.
주로 고등학교 1학년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연령대를 말하지만, 사실상 청춘의 나이 기준은 정확히 정해진 구간은 없다. 단지 어리다고 느끼는 시절을 벗어나 젊고 파릇파릇한 나이대에 들어서면, 그 나이대부터는 전부 다 청춘이라고 말한다. 청춘에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은 청소년이라 부르고 청춘을 생성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이팔청춘(二八靑春)이라 하여 16(2*8)세를 청년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의 특성상 20대 전체가 다 청춘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청춘은 젊음이라는 단어와 거의 동의어지만, 젊음 자체보다는 젊음이 가지는 속성에 더욱 주목한다. 대표적으로, 끓어오르는 피, 풋풋한 사랑, 겁 없이 뛰어드는 용기, 도전정신 등 젊음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속성과 젊은 날의 좌절과 극복, 친구와의 절교, 화해, 짝사랑, 실연 등 부정적인 속성이 합쳐진, 젊은 나이에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집약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젊음 자체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젊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의 집합을 청춘이라고 말한다.
청춘, 그 어설픔조차 아름답게 빛나는 시절이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도 세상을 향해 뛰어가던 시절이지만, 혼돈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자기 성찰, 무모한 열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경험이 없고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향해 무한 질주할 때, 청춘의 진면목이 있는 것이다. 어떤 청춘이든 성장하기 위해 많은 실패를 겪게 된다. 그 실패 속에서 교훈과 정보는 찾아내는 것은 청춘 각자의 몫이다.
민태원의 『청춘 예찬』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보자.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 위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중략)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사회의 목표와 국가의 상황이 맞아떨어질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 국가의 발전은 준비된 청춘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춘이라면 이 시대에 내가 가져야 할 꿈이 무엇인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내가 붙들고 살아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등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시대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품지 못하는 청춘,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청춘이란 말은 후일담이고 과거형이다.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청년들에게는 청춘이란 말이 실감이 나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에게 청춘이란 말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고단함과 괴로움, 미숙함과 질풍노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남아있지만, 생애 가장 푸른 시절의 환희와 기쁨, 설렘, 순수, 패기, 열정 같은 긍정적인 기억을 소환해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더해지면 청춘 시절은 그야말로 잡을 수 없는 봄날의 아지랑이가 된다. ‘그땐 그랬지’나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며 과거형의 후일담으로 소환하며 추억한다. 그래서 청춘이란 말은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비교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만다. 청춘을 다 써버린 자들이 말하는 청춘은 실제 청춘보다 오히려 아름답고 찬란하며 아련하다. 지나간 청춘보다 더 높은 긍지는 없는 것이다.
청춘의 대명사 격이 젊은이들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무모하고 어설프리만치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덤벼드는 사랑에 당할 자가 있을까? 젊은 청춘들의 사랑을 보고 “사랑이 무슨 밥 먹여주냐?”라고 충고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부질없는 사랑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청춘의 사랑은 삶의 이유이자 살아갈 힘이다. 사랑이 밥벌이 수단은 아니지만,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청춘의 사랑은 절대 미뤄둘 수 없는 지금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시절이다. 모든 사랑이 그렇지만, 특히 지금 사랑하지 못하면 평생 못하는 사랑이다.
청춘의 동전 양면에는 설렘과 고통 둘 다 있다. 처음 해보는 일, 처음 느끼는 감각이기에 떨리고 설레고, 처음 겪는 실패와 좌절이기에 더 쓰리고 아프다. 들 다 경험 부족에서 비롯되지만, 아픈 경험도 반복되면 조금씩 무뎌지면서 값진 자산으로 쌓인다. 황홀, 충격, 고통, 고민 등의 경험을 두 번, 세 번 겪으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가진 것 중에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그래도 아직은 건강한 몸, 사고의 틀에 박히지 않은 마음의 자유, 마음대로 떠나고 머무를 수 있는 몸의 자유, 가끔은 허름한 청바지와 헐렁한 셔츠 차림으로 거리를 나설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자유를 누려보라. 어떤 청춘도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시대에 청춘을 과거형의 후일담으로 추억하는 이들이여~! 청춘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not a time of life), “마음의 상태”(a state of mind)라는 말을 믿고 용기를 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