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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Dec 01. 2023

125. ‘지식(知識)’의 의미(2. 지식의 역설)

삶은 의미다 - 125

지식(知識)’의 기본적 의미는 교육이나 경험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를 뜻한다. 철학적으로는 인식에 의하여 얻어진 성과객관적으로 확증된 판단의 체계를 말한다. 지식은 고유한 우리말로 이라고 하고, ‘인식’ 또한 비슷한 의미다. 인간이 알거나 알아가는 것들은 크게 사실과 지식으로 나뉜다. 사실은 구체적이고, 지식은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인류 문명의 발달, 즉 철학, 예술, 수학, 과학 등 모든 학문은 지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의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학문 지식 역시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은 다음 세대로 교육을 통해 전달되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발전된 사회를 만들었다.

심리학자 로린 앤더슨(Lorin Anderson)이 지식을 선언적(명제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 두 가지로 정리했다. 선언적 지식은 무엇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지식으로 명제의 형태로 표현되어 명료하다. ‘알고 있다’와 관련된 지식이다. 절차적 지식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이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과정과 방법을 아는 지식으로 습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암묵적이다. 쉽게 말해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와 관련된 지식이다. 선언적 지식이 ‘지구는 둥글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등과 같이 일반적인 세계를 기술한 지식이라면, 절차적 지식은 ‘자전거 타기’, ‘사칙 연산하기’ 등과 같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지식이다. 새로운 지식을 활용할 때는 선언적 지식이, 행동이 필요할 때는 절차적 지식이 활용된다. 이 두 지식과 함께 알아두어야 할 지식으로 조건적 지식이 있다. 수영복이 어떤 용도인지 아는 것은 선언적 지식, 수영복을 어떻게 입는 것인지 아는 것을 절차적 지식, 수영복을 언제 어떤 조건에서 입어야 하는지 알고 행동하는 것은 조건적 지식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과서 중심으로 배웠던 대부분 지식은 선언적 지식이며, 자기주도적인 상황 판단이 필요한 조건적 지식을 배우는 데는 미흡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런 현상을 지식의 착각이라 하는데,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기술과 전문 지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도, 사실 생각보다 아는 게 적을 수 있다. 전문 지식의 소유자라 해도 자신이 전공이나 관심을 가진 분야에서 그런 것이지, 전 분야에서 모든 지식을 골고루 가진 사람은 드물다. 이러한 ‘지식의 착각’은 다양한 분야에서 판단력에 영향을 끼친다. 지식에 대한 과신으로 인터뷰나 발표를 앞두고 준비에 소홀히 하여 전문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심심찮고, 직무 수행 등에 부족함으로 승진 등에 문제가 된다. 또한 지식의 착각은 동료에 대한 과소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터넷 속의 지식, 주변 동료의 기술과 능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동료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을 과장하거나 지적 오만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심리학자들은 지식의 착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없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나 자신을 알기가 가장 힘든 일 아닌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지금까지 불변의 명언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지식의 착각 현상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나 일을 자신이 직접 수행해 보는 과정에서 자신이 내세우려는 지식과 실제 알고 있는 지식 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도 지식의 착각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몰랐을 때를 상상하지 못해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을 지식의 저주’, 또는 전문가의 저주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아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 넘겨짚으므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지고, 나아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특히 교육 현장의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모르거나 적게 알고 있는 학생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에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학생들은 문제를 풀기 위한 이미 배웠던 기반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가르치는 것이다. 당연히 전에 배웠던 내용을 모르는 학생은 오늘 배우는 내용을 모르게 되고, 그런 학생들이 점점 많아져 수포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기보다 지식이나 기술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가르치기 전에 우선해야 할 일이다. 

지식의 저주는 일단 무언가를 알게 되면 자신이 과거에 그걸 몰랐을 때를 생각하지 못해 지식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격이다. 당연히 자신의 지식을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지식의 저주에 사로잡혀 ‘뭐 이런 것도 모르나’, ‘넌 대화 상대가 안 돼’라며 상대방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식의 저주에 걸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리더, 상사, 보스가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 정치인들이 민심과 전혀 다른 언행을 보이는 것도 ‘지식의 저주’라고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가면을 쓰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의 교과서적 원칙에서 벗어나 민심과 동떨어진 언행을 하게 된다. 국민도 자신들과 똑같을 것이라는 지식의 착각이다. ‘자신만의 이익’에 매몰되어 아무 말 대잔치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국민의 이익’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을 보는 것은 언제쯤~? 해결하기 쉽지 않은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 현상이다. 남녀노소 잘 난 체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배우고 있는 지식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식은 한시적 유효기간이 있고, 지식 수명이 줄어든다. 지금 배우는 지식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도 지금 시점 지금 상황에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아닐 수 있는 지식이 수없이 많다. 어제 알았던 지식이 오늘 거짓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상당수는 이미 쓸모없게 폐기되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지식의 상당수는 이미 바뀌거나 폐기된 것도 많다. 어제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돌았지만, 오늘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지 않은가. 특히 학문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지식 중 절반이새로운 발견으로 대체되거나 틀린 것으로 밝혀지는 시간을 지식의 반감기라 하는데, 하버드 대학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리학의 반감기는 13년, 경제학은 9.4년, 수학은 9.2년, 심리학과 역사학은 7.1년, 종교학은 8.8년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과 기술의 유효기간과 반감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매년 지식의 총량이 두 배씩 증가한다고 한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식의 반감기가 급격하게 짧아지고, 대학의 교육이 사회의 요구에 맞추지 못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캠퍼스가 없는 대학이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평생 적어도 직업을 대여섯 번 바꿔가며 살 것이란다. 가까운 미래에 평생직장이나 정년제도의 개념은 사라질 것이고, 수명도 길어져 일하고 사는 노동 인생이 6~70년이나 될 텐데, 어떻게 한 직장에서 버티겠는가. 그동안 우리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운 한두 가지의 전문적 전공지식을 갖고 평생을 우려먹으며 일하던 시대는 지나갈 것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 세 번째, 60이 되어 직업을 구할 때는 또 다른 전문적 지식이 필요할 것이 자명하다. 한 번 배워 평생을 써먹는 시대는 절대 지속될 수 없다. 쉼 없이 배우고 일하고 또 배우고 일해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분야의 지식을 쉼 없이 업데이트하여 최신화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평생 교육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현상이 지식의 수명, 지식의 반감기와 무관치 않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매일 변한다. 지식의 유동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에서는 재학습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문맹이라고 했다. 

    

지식을 아는 것이라면지혜는 깨닫는 것이다쉼 없는 공부로 얻은 지식에 삶의 경험과 깊은 사고력을 더하여 기쁨의 지혜로 무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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