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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Dec 05. 2023

126. ‘공정(公正)’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26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으로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함에 있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우를 동일한 비율로 다루는 것을 말한다(공평할 공)은 사사로운〔厶〕 것을 공평하게 나눈다〔八〕는 데서 ‘공평(公平)하다’, ‘공식적(公式的)이다’를 뜻한다. 正(바를 정)은 발을 디뎌 적의 성안으로 들어가 적을 물리치는 바른 일을 했다는 데서 ‘바르다’, ‘정직하다’, ‘한가운데’, ‘표준’ 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는 필수 조건이 공정이다.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면 각종 비리인 편법, 불법 등이 판치고 오염된 사회로 전락해 국민의 삶이 힘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반대로 후진국일수록 비리가 일상화되어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수탈하여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국민의 삶이 피폐해진다.

공정을 이야기할 때 평등하면 공평한 것이고, 공평하면 공정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현대사회에서 능력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평등은 평등의 범주 안에는 속할지 모르지만, 공평이나 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가 모는 게 완벽하고 공정할 수 없으며, 그런 사회는 없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0년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4%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런 결과는 모든 정권이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사회를 이루겠다고 선포하지만, 정부나 기업 등의 채용 비리가 터지고, 기업 오너가의 초고속 승진을 지켜보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과는 동떨어져 있다.


키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나무 상자가 주어진 왼쪽은 ‘조건의 평등(명목상 평등)’, 키 차이를 고려한 오른쪽은 ‘결과의 평등(실질적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키 차이와 같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평등은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공정은 평등과 공평을 넘어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와 우대를 우선하는 사회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공정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시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명 시험 만능주의에 따라 시험만이 독점과 공정을 보장하고 능력을 검증한다는 인식이 대단히 크다. 성적 및 선발 시험에서 학연, 지연, 혈연, 재산, 외모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의 점수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기득권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 시험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필기나 실기 외에 면접시험은 시험관에 따라 외모, 학연, 지연 등의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경우 선출직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공정을 무시한 권력의 독점이라 할 수 있다. 시험만이 부패와 기득권 독점을 예방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공정을 담보한 시험만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해야 할 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소수민족, 여성, 장애인 등의 소외집단은 똑같은 시험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가로막는 단점이 있다. 기득권의 독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험과 병행한 다양한 선발경로를 마련하고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로, 할당제 등을 통하여 보완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시험은 실적이라는 넓은 부분보다 단편적인 부분만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도 한계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모두 똑같은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저 나무 위로 올라가세요.]

공정을 이야기할 때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까마귀, 원숭이, 펭귄, 코끼리, 붕어, 물개, 개에게 나무에 올라가라는 똑같은 시험문제를 내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일까? 원숭이나 까마귀는 나무 위로 올라가는 시험이 어렵지 않겠지만, 붕어나 물개는 도대체 무슨 수로 나무에 올라갈까? 붕어나 물개는 원숭이나 까마귀보다 헤엄을 훨씬 잘 치지만, 나무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발달한 발과 다리는 없다. 이렇게 각자의 소질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시험)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풍자하고 있다. 

아무리 인간이라는 같은 종 내에서도 개체마다 유전자 조합이 다르고, 사람마다 타고난 적성, 능력, 성격 등이 다르다. 어떤 학생은 스포츠를 잘하고, 어떤 학생을 글을 잘 쓰고, 어떤 학생은 노래와 춤을 잘한다. 학생 개인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교육 현장에서 평가는 어떤 모습인가?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시험이라는 기준만으로 학생을 평가하여 줄 세우고 있다. 키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상자를 내어주는 조건이 평등한 평가에 가깝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그런데 나무 타기 능력으로 물고기를 평가한다면물고기는 평생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라는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길 일이다.

세상은 별로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 위정자들이 보기에도 공정하지 않으니, 선거 때만 되면 소리 높여 공정한 세상, ‘공정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표를 구걸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가진 자들이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의 일부분은 포기하지 못한다. 평등과 공평, 공정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는 공정은 말로는 가능하지만실천은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 불공정하니 스스로 내놓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니 가진 자들은 공정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공정’을 말하는 사람이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되지만, 실체와 감춰진 사실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정’이라는 말로 ‘불공정’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갈등을 유발하여 정치적 목적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내세워지는 공정은 보편적 가치로서의 공정, 사회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불공정이라는 외침에 느끼는 박탈감, 부당함, 억울함 등은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권력자의 공정이라는 외침에 숨어있는 갈등에 현혹되지 말길~! 

태생부터 평등하지 못한 능력주의는 공정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따른 불평등, 불공정에 편승해 지역 및 세대 갈등을 부추겨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인간은 존재 자체로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도 소중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나올 때, 신뢰하는 사회, 공정한 세상이 올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정의와 공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항상 공정하지도,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지도, 모든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는 말과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세상에는 불공정한 일이 수두룩하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따라서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늘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것은 편안하지 못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편안한 삶의 지혜다. 

세계적인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은 2023년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공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재력권력매력을 가진 자는 함부로 공정을 말하면 안 됩니다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그건 그저 공평해 지나지 않습니다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이 됩니다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켜 줍니다.” 저절로 공감되지 않나요? 늘 권력, 매력, 재력과 같은 힘을 가진 자의 입에선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그대로 실행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언제쯤 불공정한 공평이 아니라 따뜻한 공정, 치졸한 공평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 가길 기대할 수 있을까. 

 

공정한 세상은 소수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에게 맡겨서는 절대 이룰 수 없다힘은 없지만 다수가 만들어 가야 한다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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