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70
‘평가(評價)’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평함. 또는 그 가치나 수준’을 뜻한다. 評(평할 평)은 뜻을 나타내는 言(말씀 언)과 소리를 나타내는 平(평평할 평)이 합쳐진 한자로 ‘평가(評價)하다’, ‘평론(評論)하다’, ‘비평(批評)하다’ 등을 뜻한다. 價(값 가)는 뜻을 나타내는 人(사람 인)과 소리를 나타내는 賈(성씨 가)가 합쳐진 한자로 사람(人)이 물건을 늘어놓고 사고판다(賈)는 뜻에서 확장되어 ‘값’, ‘가격(價格)’, ‘가치(價置)’ 등을 뜻한다.
어떤 호불호(好不好)를 평가하느냐에 따라 대호평은 아주 좋은 평, 호평은 좋은 평, 악평은 나쁜 평, 혹평은 가혹할 정도로 나쁜 평을 의미한다. 또한 가치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을 저평가, 높게 평가되는 것을 고평가라 하는데, 저평가를 과소평가, 고평가를 과대평가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교육이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평가는 방법에 따라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로 나눌 수 있다. 절대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으로 집단의 성취도와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성취도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상대보다 잘할 필요 없이 정해진 기준만 충족시키면 되며, 다른 상대도 그 기준을 충족시켰다면 모두 함께 통과할 수 있는 평가다. 절대평가가 적합한 분야로는 인원 선발보다는 성취 여부 체크에 목적을 두는 시험인 각종 자격증 시험, 국가 자격 고시 등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자격증의 남발을 막기 위해 상대평가와 혼용되는 자격증 시험도 많이 있다.
상대평가는 집단 안에서의 상대적인 성취도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공정한 선발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선발 시험에선 집단 속에서 상대적 순위가 필요하므로 상대평가를 활용한다. 득점은 의미가 없고 등수가 중요한 것이다. ‘얼마큼 성취했는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학생에 비해 얼마나 잘했는가’에 의해 평가되고, 다른 학생보다 1점이라도 더 득점한 학생이 유리한 것이다. 상대평가가 적합한 분야는 주로 한정된 인원을 선발하는 시험인 대학 입시, 기업 입사 등이다.
점수가 명확하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가 있다. 정량평가는 문제에 답이 명확하게 존재하고 점수가 객관적으로 매겨질 수 있는 평가이며 대부분의 객관식 시험이 여기에 들어간다. 점수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공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지만, 다양한 면을 측정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정성평가는 문제에 답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아 점수가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매겨질 수 있는 평가이며 보통 중립적이되 평가자의 종합적인 가치관과 척도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 평가이다.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는 업무 대처 능력 등을 측정하는 면접시험, 예체능 실기시험에 활용하지만, 평가자의 중립적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여러 명의 평가자를 두어 보완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너무나 많은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했기에 ‘평가’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시험’이 생각나 불편하지만, 우리는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을 평가하면서 살아간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여 자신과 성향이 맞는다고 판단되면 친하게 지내고, 그렇지 않으면 거리를 두고 지낸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뭐를 해도 좋게 평가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뭐를 해도 나쁘게 평가하기 마련이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평가하듯, 나도 그들에게서 평가받으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을 호불호로 평가하듯 그들도 나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험담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평가하든 평가를 받든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자기에 대한 평가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도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다만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못되듯 타인도 내게 모두 좋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평가’하면 생각나는 것이 학교 ‘시험’이다. 공부가 있으니 시험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의 시작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깨닫는 것이니, 여태껏 배운 것을 점검하고 실력을 평가하는 절차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지식의 기본이 되는 요소들은 배워야 할 테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형태의 시험이나 평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부분 시험이 단순히 받은 정보와 지식의 암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평가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러한 평가는 점수에 대한 집착만 가져올 뿐, 열린 생각이 자라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험이 학생들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눈에 가리어 점수에만 매달리는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지는 것이 잘못되었음에도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 더 문제이다.
평가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공정한 평가라 해서 까마귀, 원숭이, 펭귄, 코끼리, 붕어, 물개, 개에게 나무에 올라가라는 똑같은 시험문제를 내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일까? 원숭이나 까마귀는 나무 위로 올라가는 시험이 어렵지 않겠지만, 붕어나 물개는 도대체 무슨 수로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유전자 조합이 다르고 타고난 적성, 능력, 성격 등이 다르다. 이렇게 종이나 특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일인가. “모든 사람은 천재다. 그런데 나무 타기 능력으로 물고기를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나무에 오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만 평가하고 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살아가다 보면 타인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인을 나를 바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외적 조건만으로 평가하게 된다. 또한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과 같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자는 그의 내면도 훌륭할 것이라 믿고, 험한 일을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보잘것없을 것이라 믿으며, 나에게 고개 숙이는 자는 그의 내면도 나약할 것이라 믿고, 내가 고개 숙여야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강인할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은 옷, 그의 학벌, 직업, 지위, 경제력 등 외적인 면이고, 내적인 면은 전혀 볼 수 없다. 더구나 남을 무시하는 성격이 있어 타인의 가치를 정확하게 볼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한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어딘가 모자란 것은 아니다. 남이 나를 냉담하게 본다고 내가 무능력한 것도 아니다. 타인의 평가는 사실 나의 실질적인 가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인생은 내 눈으로 내가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타인의 눈에 의한 타인의 평가로 살지 말라.
내가 타인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잣대에 의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논한다. 타인이 살아온 인생을 나만의 방식으로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을 좋게 평가하기보다 나쁘게 평가하면서 헐뜯게 되고 ‘뒷담화’로 이어지게 된다. 뒷담화가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해 창의성을 키워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지만,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타인에 대한 나쁜 평가가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도 함께 추락할 뿐이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똑같은 잣대를 대 보면 ‘나도 저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공감과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손가락질하면. 남들도 내게 똑같이 손가락질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생을 평가하기 전에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내가 부족한데 누구를 더 까칠하게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게 인생의 큰 지혜다.
사실 많은 사람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해 고민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이 세상의 중심은 나다. 내 인생을 사는 사람도 나다. 정작 주변 사람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각자의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평가에 신경 쓰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남의 평가를 의식해 자신을 허허벌판으로 내모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나의 온전한 시점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열심히 나의 하루를 살면 되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고, 자신이 평가한 길을 믿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걸어가시길~!